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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작가’들이 온다

2017년 겨울에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 <회색인간> 출간에 관여하고서부터, 나를 기획자라고 불러주는 분들이 생겼다. 그렇게 거창하게 기획이라고까지 할 게 없는 일이어서 민망했다. 김동식 작가가 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집 출간 이후 출판사 대표는 나에게 단행본 매출의 2%를 기획인세로 지급하겠다는 계약서를 건네면서 “당신이 작가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요다출판사로 데려와 달라”고 했다. 작가의 인세 10%를 건드리지 않고 온전히 출판사의 이익을 나와 나누는 것이었다. 그렇게 출판사로부터 1년간 받은 기획인세는 내가 3년 동안 글을 써서 번 것보다도 더 많았다. 김동식이라는 작가와 그의 글은 그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고, 나도 덩달아 새로운 업을 하나 추가하게 되었다.

[직설]‘손가락 작가’들이 온다

나는 그 이후 새로운 작가를 찾기 위해 여러 플랫폼의 글들을 계속 읽어 나갔다. 그러다가 2018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날에 ‘문화류씨’라는 필명을 가진 작가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여우스님’이라는 글을 읽고는 그에게 e메일을 보냈다. <회색인간>이 출간된 지 정확히 1년이 된 시점이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각색했다는 그의 글에서, 나는 1년 전과 비슷한, 한 작가와 그의 글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문화류씨 작가에게서는 아주 빠르게 긍정적인 답신이 왔고 우리는 곧 만났다. 그는 30대 초반의 앳된 청년이었다. 그는 약간 큰 덩치에 잘 어울리지 않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동식 작가님이 잘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부러웠고, 언젠가 그 기획자인 김민섭 작가님이 연락을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정말 1년 만에 연락을 주신 거예요.”

김동식 작가의 사례는 무척 예외적이고 특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작가가 다시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를 희망의 증거로 삼아 계속 글을 써 나간 젊은 작가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를 바라보면서 1년 전의 내가 정말로 기획이라는 것을 했고 그것이 한 개인과 출판사에만 의미 있는 일로 남은 것이 아니구나, 하여,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2019년 6월에, 문화류씨의 소설집 두 권이 출간되었다. 그의 책을 기획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가 휴대폰 자판으로만 단행본 두 권 분량의 글을 썼다고 하는 것이었다. 휴대폰 자판이 더욱 편해서 글을 퇴고할 때만 컴퓨터 자판을 이용한다고 했고, 심지어 누워서 주로 글을 쓴다고 했다. 문자나 톡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무언가 답답해 컴퓨터를 반드시 이용하는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자책이 처음 등장했을 때 ‘모니터로 어떻게 책을 읽나’ 하는 거부감과 불편함을 모두가 가졌지만, 이제는 대부분이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수용하고 있는 듯하다. 킨들과 같은 전용기기가 보편화되었고 휴대폰으로 어디에서나 전자책을 읽는다. 그에 따라 손안에 들어올 만한 6인치 내외의 화면에 어울리는 글쓰기 방식이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모바일을 기반으로 노출되는 플랫폼의 경우에는 그 담당자들이 노골적으로 “단락은 문장 2~3개마다 꼭 구분해 주시고요, 이미지도 화면마다 하나씩은 삽입되게 해 주세요”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제도권의 글쓰기 교육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읽는 방식의 변화가 쓰는 방식의 변화를 추동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들뿐 아니라 기자 등 글을 쓰는 모두는 자신의 글이 6인치의 모바일 화면에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를 의식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이중번역과 같은 방식으로 써 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휴대폰에 익숙해진 어느 세대는, 혹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모바일 화면으로 글을 보는 데서 나아가 쓰는 세대로 조금씩 진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문화류씨 작가는 마치 동시번역을 하는 것처럼, 쓰는 동시에 독자들의 언어로 자신의 세계를 구현해냈다. 이제 우리는 그와 같은 ‘손가락 작가’들의 탄생을 계속해서 목도하게 될 것이다.

김동식 작가만큼이나, 문화류씨라는 새로운 작가도 잘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그를 희망의 증거로 삼은 새로운 손가락 작가들이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우리 앞에 계속 나타나게 될 것이다. 나로서도 누구 하나 잘되고 끝나지 않는 그런 연속된 기획을 계속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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