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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특사 “한번에 북 비핵화하려는 미국, ‘스텝 바이 스텝’ 필요”

입력 2019.06.13 21:39

수정 2019.06.13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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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로,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미국 워싱턴DC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워싱턴 |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로,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미국 워싱턴DC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워싱턴 |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경향포럼]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특사 “한번에 북 비핵화하려는 미국, ‘스텝 바이 스텝’ 필요”

북, 핵 관련시설 파괴했지만
미국은 제재 완화 조치 없어
일괄 아닌 단계적 대응해야

“(도널드 트럼프식) 정상회담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북한이 영변 핵발전소를 포기한다면 제재 완화나 종전선언, 관계 정상화 등 단계별·행동별로 상응한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 미국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모든 걸 하길 바란다. ‘스텝 바이 스텝’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로버트 갈루치 미국 조지타운대 석좌교수(73)는 지난달 워싱턴DC 자신의 연구실에서 진행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1994년 미 국무부 북핵특사를 지낸 갈루치 석좌교수는 첫 번째 북핵 위기를 봉합한 인물이다.

갈루치 석좌교수는 일괄 타결 및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대신 장기 전략을 놓고 단계적으로 풀어가야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최종회(end game)’부터 시작했고, 실무자들 간 사전 합의도 따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갈루치 석좌교수와의 일문일답.

-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북한은 하노이에서 매우 실망했을 것이다. 북한은 핵 관련 시설 파괴로 미국이 제재를 일부 해제할 것이라 기대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진전이 없다 보니 북한이 ‘더 이상의 기다림은 힘들다’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은 정치적인 행동이었다고 본다.”

- 제네바 합의는 북핵과 관련해 하나의 교본이 된 것 같다.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가장 큰 차이는 협상 기간이다. 1994년 10월 합의는 정말 오랜 시간 진행한 협상의 결과물이다. 지금은 너무 빨리 진행하려는 게 문제다. 지금 제대로 된 일이 없지 않은가.”

- 하노이 회담 결렬 이유는.

“정상회담은 실무자들 간 진행 과정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하노이 회담은 최종회에서 먼저 시작했다. 게다가 몇개월의 협상 실무 합의 내용을 트럼프 대통령이 따르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나도 궁금하다. 작년 싱가포르 회담 때를 보면, 미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모든 걸 하길 바랐다. 트럼프는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어떤 것을 하기 전에 북한의 비핵화를 원한다’고 했다. ‘스텝 바이 스텝’이 아닌 ‘투 스텝(한 번에 두 계단 이상 오르기)’으로 진행하려 한다. 그건 전략적인 방법이 아니다.”

CVID는 현실적으로 불가능
트럼프식 회담 계속된다면
북한이 어떤 행동 할지 몰라

-CVID가 ‘정치적인 난센스’라고 했는데.

“북한이 핵 관련 시설을 폐기하더라도 다른 어떤 방법으로든 재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나 엔지니어들은 여전히 다 있다.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이란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또 만일 북한이 ‘우리 핵무기는 30개인데 다 폐기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또한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양도 실제보다 적게 폐기해놓고 다 했다고 하고, 북한 어디엔가 나머지를 숨긴다면 찾을 방법이 없다. 분명 검증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미국은 이후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요구로 수위를 낮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리더십을 평가한다면.

“많은 미국인들은 젊은 새로운 리더가 나왔을 때 이것이 새로운 경제 성장과 정치적 개방으로 이어질 것으로 낙관했다. 그러나 젊은 리더가 일부 시민이나 가족들에게 (숙청 등)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다고 본다. 북핵 협상의 성공 조건 중 하나는 북·미관계 정상화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조정이 내부적으로 있지 않는 한 힘들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당시 김정은 내부 결속 집중
대북 접촉 어려운 시기였다

- 버락 오바마 정부가 북한의 힘을 키웠다는 시각도 있다.

“전략적 인내로 불리는데 나는 다소 유감스러운 용어라고 본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유지’였다. 그러던 중 북한은 군사력을 향상시켰고, 미사일 개발과 핵실험을 했다. 오바마 정부 정책이 북한의 문제를 해결했느냐고? 물론 아니다. 오바마 정부 때 여러 조치를 하고, 대북 접촉도 했어야 하는데 당시 북한은 내부적으로 바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사망과 새로운 리더(김정은)의 등장 등으로 내부적으로 힘을 구축해야 하는 시기였다.”

-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차라리 미치광이 트럼프가 낫다’고 했는데.

“경험이 있는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 정부의 접근 방식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지와 핵실험 중지,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 작은 몇 가지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2017년에 비해 지난해, 올해 큰 변화가 없다. 북한은 올해 안으로 무언가 다른 행동을 할 것이라고 했다. 무엇일지 걱정된다.”

- 내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재집권하면 제네바 합의를 넘어설까.

“민주당이 집권한다 해도 누가 당선될지도 모르고, 한국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 다만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동북아 이슈는 중요하다. 어쨌든 민주당은 무력이 아닌 외교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할 것이다.”

- 제네바 모델이 유효한가.

“돌아보면 1994년 ‘협상’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후속 정책이 북한의 핵을 없애지 못했다. ‘정책’이 실패한 것이다. 우리가 다시 25년 전과 같은 구조로 돌아갈 것인가? 모르겠다. 그때 북한이 원했던 시설들(경수형 원자로 등)을 지금도 필요로 할까 싶다.”

- 2017년에 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다.

“나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때 북한이 제한적인 행동이라도 했다면 2차 한국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고 본다. 지난 싱가포르와 하노이 회담 결과, 대화가 싸움보다는 낫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계속 대화한다면 군사적 행동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로버트 갈루치는

1차 북핵 위기 막은 ‘제네바 합의’ 주역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를 지낸 로버트 갈루치 교수(73)는 1994년 전쟁 직전까지 간 1차 북핵 위기를 봉합한 ‘북·미 제네바 합의’의 주역이다. 제네바 합의는 1994년 10월 양국이 서명한 기본 합의문으로, 이후 북핵 협상에 교본이 된 2005년 ‘9·19 공동성명’ 등 동시행동 원칙에 지침이 됐다.

제네바 합의에서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동결 대가로 경수형 원자로(경수로) 2기와 매년 중유 50만t씩 제공키로 하고,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완전 복귀와 모든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허용·핵 활동의 전면 동결 등을 약속했다. 북·미 수도에 연락사무소 설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이행, 남북 대화 재개 등도 합의문에 담았다. 그러나 미국이 원유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의무이행에 차질을 빚자 북한이 핵동결 파기를 선언했다. 2001년 9·11테러 사건을 계기로 조지 부시 행정부가 테러국가로 지목하자 북한은 원자로 가동을 선언하며 제네바 합의는 파기됐다.


민주당 소속 갈루치는 미국 내에서 대북 협상과 대화를 강조하는 대표적 온건파로 꼽힌다.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산하 한미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한 그는 현재도 석좌교수로 조지타운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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