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승효상 지음
돌베개 | 520쪽 | 2만8000원
![[책과 삶]‘나 홀로’ 수도사가 남긴 흔적 찾기](https://img.khan.co.kr/news/2019/06/14/l_2019061501001480500131161.jpg)
큰 제목만 보면 종교서나 철학서인가 싶지만 부제로 눈을 돌리면 이 두꺼운 책의 정체가 드러난다.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 언뜻 봐도 알 수 있듯 <묵상>엔 종교도 있고, 여행도 있고, 건축도 있다.
저자가 만든 ‘동숭학당’의 2018년 배움의 주제는 ‘공간’이었다. 여러 사람들과 ‘스스로 추방당한 자들의 공간, 그 순례’라는 제목으로 기행을 기획했고, 그렇게 로마에서 파리까지 2500㎞의 여정이 시작됐다. 여행이 끝나면 수도원 순례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 말한 것이 이 책이 됐다.
수도원을 칭하는 말은 클로이스터와 모나스터리 두 가지가 있다. 전자가 ‘함께하는 수도’라면 후자는 ‘나 홀로’라고 이해하면 쉽다. 저자는 모나스터리에 방점을 찍고 독실 형태의 수도공방인 ‘셀’에 자신을 한평생 가둔 수도사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 이동하는 버스에서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의 경계 밖으로 떠나는 것이 그 모든 소유와 욕망에서 자유 하는 길이었을 겁니다. 베네딕토가 수비아코의 절벽을 찾고, 귀족과 명망가가 험준한 계곡과 거친 광야를 찾은 까닭입니다.”
책 속의 방대한 사진들은 14일의 여정을 눈으로 좇게 한다. 그중 절벽 위에 세워진 메테오라의 발람 수도원은 가히 압도적이다. 14세기 무렵 비잔틴제국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 패퇴를 거듭할 당시 위협을 느낀 수도사들이 세상과 결별하려 그 높은 곳에 지었다고 한다. 책에 실린 그림과 평면도는 그의 설명이 곁들여져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