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 전문가란 무엇인가

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최근 민변과 참여연대가 함께 ISD(투자자-국가 분쟁) 제도의 개선 및 폐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ISD라는 제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추진되던 시작부터 끝없는 논란을 불러왔던 제도였다. 민간의 투자자들이 협정 상대국 국가의 정책과 조치가 자신들에게 불이익을 초래한다고 판단할 경우 국제 중재를 걸어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로서, 국가의 경제 주권을 무너뜨리고 국제 투자자들과 법률 집단의 잇속만 채우는 것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세상읽기]ISD, 전문가란 무엇인가

나도 여기에 얽힌 기억이 있다. 논쟁이 촉발되었던 2006년 ISD 제도의 문제점을 경고하는 책을 낸 적이 있었다. 나는 관료, 학자, 법률가들에 의해 공석과 사석에서 조리돌림을 당하였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어처구니없는 괴담을 퍼뜨려 불안을 조성하는’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제도는 완벽하게 안전할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의 이익을 위해서 꼭 필요한 제도이며, 이 제도를 비판하는 것은 국제법도 국제 경제도 모르는 문외한들의 무지의 소치라는 것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정부는 ISD 제도 때문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국제 중재에 휘말린 신세가 되었으며, 한·미 FTA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ISD 중재를 많이 야기시키는 문제의 협정으로 지목되었다(프레시안, “한국은 ISD 제도 3번째 피해국…유엔에 개선안 제출해야”, 2019년 6월26일). 수조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요구하는 중재가 이미 줄을 잇고 있으며, 앞으로 분쟁 건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10년 전 ISD 비판론을 ‘괴담’으로 몰던 ‘전문가’들은 지금 무어라고 할까?

놀랍게도 이들 중 다수는 정반대 입장으로 선회하여 ISD 제도가 독소 조항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정부의 입장이 ISD 비판론으로 선회했던 것과 시점도 비슷하다. 10년 전에도 오늘날에도 우리의 통상 협상을 이끌고 있는 김현종씨는 ‘ISD로 인해 국제 중재가 남발되어 한국 정부의 정책 권한이 제한’받고 있으니 한·미 FTA 재협상을 통해 이를 바꾸어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06년 당시 ‘제대로 된 율사라면 ISD 제도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를 리 없다’고 일갈했던 이화여대 최원목 교수는 최근 관세청의 한 발행물에서 이 제도가 ‘투자 유치국 정부의 정당한 규제기능을 제한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제도’이니 그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제도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오마이뉴스, “김현종의 ISD 개정 카드는 패착이다”, 2018년 2월10일). 실로 극적인 입장 전환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법률가들이다. 나는 당시에도 이 법률가라는 이들이 가장 큰 이해당사자들이기 때문에 공론장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ISD 국제 중재는 엄청난 거액이 걸려 있으며 로펌의 국제 변호사들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판돈이 걸린 새 시장이 열리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들은 무조건 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밖에 없으므로 공론을 호도할 수 있는 잠재적 이해상충 집단이라는 게 내 주장이었다(여러 국제기구들에서 나온 보고서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내게 더 많은 조롱과 사석에서의 욕설까지 초래했을 뿐 귀 기울이는 이들을 찾지는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제도가 도입되자 곧 법조계에선 ‘새로운 블루오션이 열렸다’는 환성이 터져 나왔다(중앙일보, “FTA·WTO·ISD…국가 소송이 법률시장 블루오션 될 것”, 2015년 10월19일). 실제로 2016년 초 국제로펌 평가기관인 체임버스앤드파트너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법률계의 국제 중재 시장은 가장 급성장한 분야였다고 한다. 수조원짜리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는 데다가 이 제도의 속성상 양쪽 모두 한국 쪽 로펌을 거칠 수밖에 없으니 이 시장은 이제 그야말로 잔치판이 된 셈이다(한국경제, “론스타 이후 가장 큰 ISD 등장에 로펌 간 수임 경쟁 후끈”, 2019년 6월16일).

이 황당한 ‘전문가’들의 변신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세금을 뜯길 위험에 처했는지를 알고 싶으면 국내 포털 사이트에 ISD를 한 번 검색해 보시라. 그리고 구글에서도 한 번 검색해 보시라. 이 제도가 오늘날이 아니라 이미 2006년 이전부터 얼마나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뜨거운 감자였는지를 알려주는 막대한 양의 자료가 쏟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현대사회에서의 ‘전문가’라는 이들의 정체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그들은 누구인가. 우선 보통사람들에 비해 정말 더 많이 알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우며, 그게 분명할 경우엔 그 분야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그 분야의 기득권 세력과 하나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나의 2006년 책자는 지식공유지대(ecommons.or.kr)에서 다음주에 무료로 개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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