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창비 | 344쪽 | 1만5000원
소설가 박상영(31)은 지금 한국 문학에서 가장 ‘뜨거운’ 작가 가운데 하나다. 중편소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으로 2019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고, 수상작이 수록된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은 출간도 전에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의 눈에 띄어 영국에 판권이 팔렸다.
문단뿐 아니라 대중의 반응 또한 뜨겁다. 지난해 9월 출간된 그의 첫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현재까지 1만3000부가 팔리며 인기를 끌고 있으며, <대도시의 사랑법>은 출간 일주일 만에 4쇄에 들어가 1만5000부를 찍었다.
무엇이 박상영을 그토록 뜨겁게 하는가. 그는 ‘퀴어서사’의 대표주자로 불리고 있지만 다종다양한 퀴어서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퀴어’로만 그의 소설을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그가 선보이는 사랑은 노골적이지만 아름답고, 슬프지만 웃기고, 인생 막장에 다다른 듯 실패하지만 결코 절망적이진 않다. 이 모든 것들이 박상영 소설의 온도를 한껏 달궜을 것이다. 박상영을 지난 3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이번 소설집은 저한테 한없이 끌어당겨 쓴 소설이에요. 화자가 작가이고, 이름도 ‘영’이죠. 모든 화자가 저와 같은 인물이기도 하고 다른 인물이기도 합니다. 제가 겪었거나 고민했던 관계의 양상들을 다 보여주고 싶었어요.”
연작소설로 구성된 수록작 네 편은 2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의 우정과 사랑, 가족과의 갈등 등 관계와 사랑의 모습을 섬세하게 다룬다.
‘재희’는 게이인 주인공과 ‘정조 의식이 희박한’ 재희의 특별한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둘은 함께 술을 먹고, 남자 이야기를 하고, 골치 아픈 남자와의 이별을 도와준다. 재희 집에 찾아온 스토커를 쫓아낸 이후 둘은 아예 동거를 시작한다. 재희는 낙태를 해줄 산부인과를 찾다가 비난을 듣고, 주인공은 요도가 감염돼 비뇨기과에 갔다가 혐오발언을 듣는다. 둘은 “게이로 사는 건 때론 참 좆같다는 것”과 “여자로 사는 것도 만만찮게 거지 같다”며 소수자성을 공감한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은 소설집에서 가장 많은 분량과 존재감을 드러내는 소설이다. ‘50대 중도우파 여성, 40년차 기독교인’이자 남편의 외도로 어렵게 삶을 꾸려왔지만 이제는 암투병으로 쇠약해진 엄마, ‘30대 중도좌파 게이’인 화자, ‘운동권 마지막 세대’인 그의 연인 형을 중심으로 사랑과 증오, 보수와 진보, 종교와 세대 등의 문제를 두루 다룬다.
엄마는 고등학교 시절 ‘나’의 동성애를 치료한다며 정신병원에 보내고, 형은 동성애가 ‘질병’이나 ‘미제의 악습’이라는 편견에서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다. 주인공은 “사랑은 한껏 달아올라 제어할 수 없이 사로잡혔다가 비로소 대상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추악하게 변질되어버리고야 마는 찰나의 상태”라며 절망하는 동시에 “그를 안고 있는 동안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았는데”라고 말한다. ‘나’는 엄마를 완전히 증오하지도, 화해하지도 못한 채 엄마의 남은 생을 담담히 지켜본다.
‘대도시의 사랑법’과 ‘늦은 우기의 바캉스’는 하나로 이어지는 소설이다. ‘나’와 규호라는 오랜 기간의 사랑과 이별하는 이야기다. ‘카일리’라는 예쁜 이름의 질병을 받아들이는 ‘나’와 규호의 담담한 태도,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회제도적 조건의 불협화음과 둘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름답고도 슬프게 그려진다.
20대의 삶과 사랑이란 불안하고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성소수자의 사랑이란 더욱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소설의 인물들은 취업난과 사회적 장벽, 가족과의 갈등 속에서 사랑과 이별, 좌절과 실패를 거듭하지만 비관의 포즈를 거부하고 크게 웃어넘기는 쪽을 택한다. 슬픈데도 웃긴 ‘웃픈’ 문장들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박상영은 “울거나 마냥 엎어져 있기보다 크게 웃어버리는 게 저의 방식”이라며 “N4세대라 불리는 우리 세대가 세상을 살아가는 감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단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미국 문예지 ‘WWB(World Without Borders)’에 연재돼 주목받았다. 박상영은 “번역자 안톤 허가 퀴어 당사자로서 제 소설을 미국에 잘 전달되도록 번역했다. 기존 한국 문학과 다른 서사와 에너지를 보여준다는 평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군에서 성소수자를 색출해 구속한 ‘A대위 사건’을 계기로 쓰였다. 박상영은 “미국 독자들이 한국에서 그런 반인권적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낙태죄가 폐지되는 등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아직도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크다는 게 슬프다”고 말했다.
<대도시의 사랑법>의 동네서점용 한정판 표지는 두 남자가 포옹하고 있는 그림으로, 전나환 작가가 2016년 올란도 게이클럽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그린 ‘Pray for Orlando’라는 작품이다.
직장을 다니며 새벽에 소설을 쓰던 박상영은 지난 1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책에 수록된 작품들 중 ‘대도시의 사랑법’을 제외한 세 편이 직장을 다니며 쓴 작품들이다. 그는 “당시엔 굉장히 힘들었는데 글을 썼던 시간들이 나를 살게 했던 것 같다. 글을 쓰지 않을 땐 죽어 있는 느낌이었다. 글을 쓰면서 자기 객관화가 되고 치유가 된다”고 말했다.
책을 덮고 나면 “해가 뜨지도 않은 시간, 회사 앞 카페에 정장을 입고 앉아 잔뜩 웅크려진 어깨로 뭔가를 정신없이 쓰고 고치는 남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몇번이고 나에게 있어서 규호가, 우리의 관계가…순도 100%의 진짜라고 증명하고 싶었”지만 “공허하고 의미 없는 낱말들이 다 흩어져 오직 글을 쓰고 있는 자신만이 남”은 남자가. 하지만 소설은 흩어진 사랑의 여운을 우리 곁에 진하게 남겨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