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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일의 계급

입력 2019.07.11 20:37

수정 2019.07.11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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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먹는 일의 계급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라면이 화제다. 이른바 ‘투뿔등심 짜파구리’다. 두어 해 전에 유행했던 음식이다. 라면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이 아닌, 일종의 번외의 ‘오덕’ 레시피였다. 좀 뜬금없이 등장하는 음식 같기도 한데 감독은 ‘부자들은 같은 걸 먹어도 다르게 해석한다’는 여지를 부여했던 것 같다. 짜파구리 같은 인스턴트 라면에 어울리지 않게 ‘투뿔등심’을 얹어 먹는 설정을 만든 것을 보면. 그 라면이 그다지 맛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빈대떡에 캐비어 얹은 것 같다. 서로 별 상성이 없다. 그것조차 감독의 의도였을까.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먹는 일의 계급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실, 계급적으로 음식 문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도 짜파구리를 먹는다. 영화 속의 설정이 아니라 대체로 가능한 일이다. 6000원짜리 저가 냉면집 앞에 고급 외제 승용차가 즐비하고, 한때 어떤 재벌은 짜장면 보통을 찬양했다. 그들이 산해진미를 먹긴 하겠지만, 대개는 접대나 잔치에서나 먹는 것이며 일상의 음식은 아니다. 콩나물국에 김치며 장아찌와 제육볶음이 서민이나 우리나라 최고 부자, 권력자의 식탁에도 오른다(물론 재료의 질은 차이가 나겠지만). 이건 내 추정이 아니라 어느 정도 수집된 자료를 기초로 쓰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더러 간식으로 일본 청국장인 ‘낫토’를 먹는 어떤 전직 대통령이 좀 유별났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이 역시 당시 주방장의 증언에 의하면 대체로 평범한 음식으로 식탁을 차렸다고 한다.

먹는 것은 원래 계급을 상징한다. 진부한 표현으로 “먹는 음식을 알면 당사자의 계급과 출신을 맞힐 수 있다”는 동서고금의 해석이 뒤따랐다. 심지어 내가 군복무하던 30년 전에는 간부식당에서 영관급 장교의 식탁이 놓인 단의 높이가 달랐다. 물론 대령이나 장군의 식탁은 더 높았다. 같이 밥은 먹되, 식탁이라도 높임으로써 권력을 명확하게 나누었다. 내가 복무하던 중대의 당번병은 훈련을 나가면 하다못해 인스턴트 김 한 봉지라도 중대장의 식판에 더 놓아 올렸다. 대단한 반찬은 아니었지만, 그 김 몇 장으로 중대장의 식판은 권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런 형국은 당대에 와서 흔히 보기 힘들다. 농업 생산력이 증가하고, 가공식품이 발달하고, 어지간하면 누구나 웬만한 음식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언감생심이던 불고기가 가장 싼 밥집의 메뉴가 된 시대다. 음식으로 계급을 나누는 일이 쉽지 않다.

현대에 와서 한국의 음식은 대체로 평준해졌다. 누구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 권력자라고 해도 매일 프랑스 희귀 와인을 곁들인 스테이크를 먹지는 않는다. 흥미롭게도 한국 최고급 미식의 성지라고 하는 청담동에서 포장마차 음식이나 삼겹살, 치킨이 아주 잘 팔린다. 그곳에서는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이 아니라 허름한 밥집이 더 장수한다. 스테이크에 와인을 먹고는 이차로 냉난방도 시원찮은 실내 포장마차에서 막소주를 마신다. 우리는 음식으로나마 평등을 쟁취한 것일까.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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