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최인훈을 기억하며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최인훈을 기억하며

입력 2019.07.23 20:54

수정 2019.07.23 20:55

펼치기/접기

얼마 전 뜻밖의 모임에 초대 받았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최인훈 선생의 1주기 모임에 와서 추모사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최인훈 전집>을 펴낸 문학과지성사의 부탁이었다. 청소년 때부터 존경해온 선생을 추모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뜻깊은 일이었지만 문학을 잘 모르는 사회학 연구자이기에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선생의 가족이 추모사를 요청했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내게 됐다.

[김호기 칼럼]최인훈을 기억하며

“아내가 물컵을 찾아 내게 주면서 말했다. / ‘저더러 애들 데리고 왔다 가라시는군요.’ /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신다. / ‘응 그러시는군. 일부러 내가 올 건 없고, 오겠거든 애들 데리고 당신을 보내라는군.’ ”

소설 <화두>의 마지막 장면이다. 미국에 계신 선생의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통화를 마친 다음 선생과 아내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선생의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라 손주들을 보고 싶어 하신다. 이 장면을 소설의 마지막에 놓아둔 까닭은 뭘까. 그 답변은 <화두>의 2002년판 서문 ‘21세기의 독자에게’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재심’도 ‘부활’도 없다.” 그런데 “기억은 생명이고 부활이고 윤회다.” 선생의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아들보다 손주들을 찾은 것은 ‘기억의 전승’을 상징한다. 조부모의 기억이 부모의 기억을 통해 아이들의 기억으로 이어지는 게 개인의 역사이지 않을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의 어머니를 나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딸아이가 기억하듯 말이다. 하버마스가 이성의 중요성을, 라캉이 욕망의 의미를, 바우만이 변화하는 현대성을 알려줬다면, 이렇듯 선생은 내게 ‘기억의 힘’을 가르쳐줬다.

돌아보면 선생을 직접 뵌 적은 없다. 두 가지 일이 기억에 남아 있다. 하나는 ‘문학사상’에 발표했던 내 글을 전집 <화두> 1권의 말미에 싣고 싶다고 하셔서 보내드렸던 일이었다. 나는 <화두>에 나타난 선생의 내면의식을 관념의 세계시민과 현실의 세계시민이라는 문제틀로 살펴봤다. 현실의 민족주의와 이상의 코즈모폴리타니즘 간의 긴장은 비서구 지식인이 견뎌내야 할 사유의 숙명임을 선생은 일찍이 통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2005년 한국방송공사(KBS)의 교양 프로그램 <한국 지성사> 진행을 맡았을 때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선생께 전화를 드렸던 일이었다. 선생은 끝내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1시간 가까이 전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과 <회색인>의 주인공 독고준과 <화두>의 주인공 최인훈이 전화선 너머 저쪽에서 내게 직접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뜻밖의 감동이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선생은 삶과 작품이 완전히 일치한 드문 작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선생의 한 정체성인 <광장>의 주인공이 남과 북을 관찰했다면, 또 다른 정체성인 <화두>의 주인공은 미국과 소련을 여행한다. 선생의 소설들이 지나치게 관념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지적에 나 역시 동의한다. 그럼에도 선생이 탁월한 작가인 까닭은 광복 이후 우리 현대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남과 북의 분단시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를 모두 깊이 있게 성찰한다는 데 있다.

분단과 냉전은 지난 20세기 후반 우리 사회를 규정한 두 겹의 시대적 구속이다. 선생을 문학평론가 김우창은 ‘남북조 시대 예술가’, 문학평론가 김병익 역시 ‘남북조 시대 작가’라고 부른 바 있다. 남북조 시대의 다른 이름은 분단 시대와 냉전 시대다. 냉전분단체제를 제대로 넘어서기 위해선 이 체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고, <광장>과 <화두>가 이 이해에 대한 최고의 인문사회과학 텍스트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추모사를 위해 선생의 따님인 최윤경이 최근 내놓은 산문집 <회색인의 자장가>를 읽어봤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딸의 기억들은 잔잔했고 또 감동적이었다. 딸은 아버지가 추천했던 책의 하나인 지드의 <좁은 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좁은 문>을 권한 아버지는 내가 잘 모르는 아버지다. <좁은 문>은 내가 아직 모르는 일이다. 그 좁다란 문을 열면 책 안에서 아버지의 음성을 만날 수 있을지. 만나게 된대도 가슴이 철렁하고, 못 만나게 된다면 한없이 허전할 것이다. (…) 좁은 문을 열면 아버지가 서 있을까.”

이 구절을 읽은 사회학 연구자인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다. 작가 최인훈의 문학 세계는 광복 이후 절망과 희망, 고뇌와 영광으로 점철된 우리 현대성을 이해하는 좁은 문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지식인이라면, 아니 시민들이라면 이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삼가 선생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 AD
  • AD
  • AD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