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 동안 한국 사회를 들끓게 했던 한·일 관계에 대한 논쟁을 보면서 나는 두 가지 점에 놀랐다. 첫째는 숨은 일본 전문가가 이렇게나 많았다는 점이며, 둘째는 소수를 제외하면 그들 대다수의 주장과 견해라는 것이 그렇게나 천편일률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일본 전문가가 아니며, 이 소중한 지면에 이미 나왔던 말을 또 얹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단지 평범한 시민으로서 정말로 의아스럽게 여겨지는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다. 왜 아무도 ‘9조 개헌’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이가 없는가?
이 ‘9조 개헌’이야말로 일본 보수 지배층의 해묵은 숙원이며, 아베 정권의 거의 모든 행보의 근저에 도사린 동기이며, 이번 한·일 갈등에서도 어쩌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근원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현행 일본 헌법의 9조는 일본이 스스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평화국가’라고 못 박은 조항이다. 이는 2차 대전 직후 일본을 점령한 미국이 세계 평화에 도발을 일으켰던 파시즘 국가들의 전쟁 능력을 해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마련한 것이었고, 이후 동아시아 군사 질서 및 세력 균형의 중요한 전제가 되었다. 이 헌법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일본은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영구적으로 전쟁을 포기한 ‘평화국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보수 지배층 일부는 이미 50년대부터 이러한 ‘평화헌법’을 치욕으로 여기면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개헌을 통하여 일본을 임의로 군사력을 행사하고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정상국가’로 되돌리겠다고 공언해왔다. 냉전 격화를 틈타 미국과의 협조를 통해 개헌을 꾀하다가 전 국민적인 반대에 부닥쳐 좌절했던 60년대 초의 기시 노부스케 내각에서도 그러했고, 북한의 핵 개발과 중국의 대두를 명분 삼아 6년째 의회의 개헌 가능선 확보를 꾀해 온 현재의 아베 내각에서도 그러하다.
이는 결코 일본 국내 정치의 문제로 치부하여 수수방관하고 있을 성격의 것이 아니다. 일본이 개헌을 통해 ‘정상국가’가 되겠다는 말은 기실 ‘전쟁국가’가 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아베 세력이 그러한 전환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내거는 ‘세계 평화에 대한 적극적 기여’란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자기들 뜻대로 능동적으로 재편해 나가는 능력을 회복하겠다는 의미이며 필요할 경우에는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선언이다. 일본 국민들이 이에 대해 무어라고 합의하건, 이는 지난 70년간 존재해 온 동북아 세력균형의 기존 상태(status quo)에 있어서 근본적 지각 변동이다. 다음의 질문 하나면 이를 이해하는 데에 충분하다. ‘정상국가’ 일본은 도대체 누구를 상대로 어디에서 군사 행동을 벌이겠다는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여기에서 곧바로 영향을 받게 되는 곳은 한반도와 동북삼성이다. 17세기 초에도 19세기 말에도 20세기 중반에도 어김없이 반복되었던 바이다. 지난 몇 년간 북한의 핵미사일과 미·중 관계의 변화를 둘러싸고 촉발된 일련의 극적인 사건들은 기존 질서의 근본적 변화가 임박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지난 며칠간 독도라는 작은 돌섬과 그 근처의 바다를 놓고서 중국, 러시아, 한국, 일본의 전투기들이 날아다니고 북한의 미사일이 떨어지고 미국의 볼턴이라는 ‘경보기/전폭기’가 한국과 일본을 순방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던 것은 그래서 우연도 아니며 범범하게 넘길 일도 아니다. 지금 어떤 방향으로건 큰 변화가 벌어지고 있으며, 그 무대가 될 곳은 한반도가 될 수밖에 없다.
과문해서인지 국내에서 이 문제를 놓고 한국이 적극 개입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논의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한·미·일 군사동맹은 물론 그 밖에 일본과 맺어왔던 우리의 모든 관계와 논의는 일본이 ‘평화헌법’을 준수하는 국가라는 것을 전제로 이루어져 온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벌써 오랫동안 이 ‘평화헌법’의 폐기를 공언해 왔으며, 만약 이번 선거에서 아슬아슬하게 개헌 가능선에 미달하지 않았다면 필시 아베 임기 내에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 이제는 과거사라는 도덕적인 명분을 이유로(사실 이조차 분명치 않다) 우리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겠다고 즉 안보 동맹국에서 제외하겠다고 한다. 바로 인접한 나라는 동맹국이 되거나 잠재적 적성 국가가 되거나 두 가지 경우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데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인접국으로서 또 전통적 군사 우방국으로서 일본에 ‘9조 개헌’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강력하게 표명할 때가 되었다. 일본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2차 대전의 전범국이며 현재의 헌법은 그 보속의 대가로서 주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동일한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씌워놓은 굴레이기에, 그들이 임의로 벗어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시켜야 한다. 반도체도 또 기업들의 타격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더욱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9조 개헌’임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