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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워크맨의 시대’가 아니다

입력 2019.08.08 20:41

수정 2019.08.0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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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이라면 ‘마이마이’를 기억할 것이다. 삼성에서 만든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였다. 금성 ‘아하’, 대우 ‘요요’ 등도 있었는데, 다들 그냥 ‘워크맨’이라고 불렀다. 주머니에 쏙 넣거나, 허리춤에 찰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대부분 007가방 크기였던 카세트 플레이어를 손바닥만 하게 줄여놨으니 가히 혁명적이었다.

[편집국에서]지금은 ‘워크맨의 시대’가 아니다

워크맨은 소니가 생산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이름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소니뿐 아니라 아이와, 파나소닉 같은 일본 회사들은 한국에 앞서 이미 워크맨을 만들고 있었다. 생김새나 음질, 내구성 모두 한 차원 위였다. 국산이 얼마나 허접한지 깨달았다. 일제의 품질 경쟁력을 실감한 첫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일본은 전자강국이었다. 있는 집이라면 일제 TV 한 대쯤 갖춰놓고 있었다. 코끼리 밥솥은 일본여행의 필수 구매품이었다. 반도체와 휴대전화, 노트북 등 첨단기술 제품도 한국보다 한참 앞서 내놨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생산한 스마트폰과 TV가 나란히 놓여 있다면, 세계인은 어떤 걸 선택할까? 지금은 한국산이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밖에도 한국이 일본을 앞선 분야는 많다. 일본과 한국의 경제규모 격차도 크게 줄었다. 일본은 1981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달러를 넘어섰다. 마이마이가 출시됐던 그해 한국은 1871달러로 5분의 1에도 못미쳤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1346달러로 일본의 80%까지 근접했다.

일본이 지난 7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에서 제외하는 시행세칙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달 1일에는 한국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플루오린 폴리이미드·레지스트·불화수소)을 개별허가 품목으로 지정했다. 그들은 “수출절차를 개선했을 뿐”이라고 변명한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한국 기업을 옥죌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한국 경제에 이미 전쟁을 선포했고, 언제 칼을 휘두를지 시기만 저울질하고 있다.

수출규제는 강제징용 노동자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의 무역보복이다. 국제 규범상 정당화할 수 없는 불법적인 조치이다. 식민지배의 불법행위에 대해 사죄하기는커녕 적반하장 격이다. 헌법을 개정해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가겠다는 아베 정권은 ‘한국 때리기’가 여론을 결집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을 이용하고 있다. 턱밑까지 추격해온 한국 경제에 대한 두려움도 깔려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연일 달아오르고 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일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규탄하는 집회도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하자, 경제 관련 부처에서는 연일 대책을 쏟아냈다. 여당은 ‘우리가 이깁니다’라는 걸개막을 내걸었다. “버티면 이긴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도 있다.

일본과 맞짱을 떠 이길 수 있다고 호언할 수 있을까. 감정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일본과 한국의 기술 격차가 크게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17~2018 세계경쟁력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전반적인 경쟁력은 26위로 일본(5위)보다 한참 뒤처진다. 기술 분야별로도 한국은 인터넷 환경에서 앞설 뿐 대부분 열위에 놓여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몇 년 전 업종별 단체 및 협회를 대상으로 ‘한·일 경쟁력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5%가 기술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우위는 10%에 그쳤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수출규제로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들은 말을 아낀다. 일본 영향에서 벗어나 소재·부품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국산화하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일본과의 협력 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정치권에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정치권은 “이길 수 있다”면서 기업에 규제완화라는 무기를 쥐여주고 전장으로 내몬다. 반면 등 떠밀린 기업들은 “우리도 다칠 텐데…”라며 미적거린다. 이는 한·일 양국 사정이 비슷하다. 수출규제는 양측이 모두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승패가 갈리기보다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싸움이다. 일본이 개별허가 품목을 추가하지 않자, 한국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맞대응을 유보한 것은 현명했다. 일본은 이제라도 부당한 수출규제를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세계를 평정했던 일본 워크맨의 시대는 과거이다. 한국의 스마트폰 세계시장 점유율 1위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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