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조작은 과연 업무방해죄일까? 드루킹 항소심 쟁점 총정리

이혜리 기자

남의 아이디(ID)를 모아 포털사이트 네이버 댓글의 공감·비공감 클릭을 한 게 업무방해죄에 해당할까. 이른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항소심 쟁점이다. 댓글 조작 자체를 몰랐다는 김경수 경남지사와 달리 드루킹 김동원씨 측은 댓글 조작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네이버의 어떤 업무를 어떻게 방해했는지가 모호하다며 형사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댓글 조작은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가 없어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드루킹에 대한 유죄 판결이 자칫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어긋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1심은 유죄로 보고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14일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쟁점을 짚어봤다.

■“허위의 정보 전송 아니다”

드루킹 일당에게 적용된 죄명은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다. 형법 314조 2항은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정보처리에 장애를 발생하게 해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드루킹 일당이 매크로 프로그램인 ‘킹크랩’을 이용해 특정 기사에 허위의 공감·비공감 클릭을 했다며 네이버의 댓글 산정 업무를 방해했다고 보고 있다.

‘드루킹’ 김동원씨가 지난 1월30일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드루킹’ 김동원씨가 지난 1월30일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드루킹 측은 이들의 공감·비공감 클릭이 허위의 정보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첫번째 근거로는 킹크랩 운용에 사용된 ID는 남의 것을 도용한 게 아니라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회원들의 동의를 받아 수집했다는 점을 댄다. 즉 경공모 회원들의 공감·비공감 클릭 의사를 양도받아 대신 클릭을 해준 것이기 때문에 허위의 정보 전송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특검 측은 드루킹 일당이 IP 주소를 여러 차례 인위적으로 변경하고 캐쉬 정보를 삭제한 것을 문제삼는다. 드루킹 측은 네이버가 이를 특별히 금지하지 않고, 다른 사용자들도 할 수 있어 위법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킹크랩을 이용했더라도 댓글 1개당 1번 클릭했을 뿐, 2번 이상 클릭한 게 아니라는 항변도 한다.

주목할 대목은 포털사이트 댓글은 근본적으로 조작을 막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드루킹 측의 주장이다. 네이버는 본인인증을 하지 않아도 회원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애초에 공감·비공감 숫자를 1명이 1번 클릭해 만들어진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고법 형사4부의 조용현 재판장은 킹크랩을 직접 개발·운용한 ‘둘리’ 우모씨와 지난 6월19일 법정에서 직접 문답을 했다.

“이용자 각자의 의사에 따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의견을 표출했는지를 보여주는 게 포털사이트의 의도인데 1명이 자신의 ID를 여러개 만들어 공감·비공감 클릭하는 것과, 다른 사람의 ID를 여러 개 갖고 클릭하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까?”(조 재판장)

“제가 휴대폰을 사서 네이버 ID를 만든다면 300개도 만들 수 있습니다. 네이버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아무거나 입력해도 ID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제가 ID를 스스로 만들어) 300번 클릭하는 것과, 지인에게 부탁해서 ID 300개를 받아서 클릭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에서는 휴대폰 1대당 가격이 300원, 500원 합니다.”(우씨)

댓글 조작으로 네이버에 대체 무슨 장애가 발생했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다만 장애가 현실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장애가 초래될 위험만 있으면 업무방해죄는 성립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댓글 조작 유죄는 위헌적”

우씨는 증인신문 과정에서 네이버가 댓글 조작을 방치했다고 말했다. 우씨는 “네이버 뉴스 정치면 댓글난에는 일베·오늘의유머·뽐뿌 등 네티즌들이 와서 싸운다”며 “진보 네티즌들이 댓글을 올려놓으면 다시 보수 네티즌들이 좌표를 찍고 와서 댓글을 내리고 자기들 성향에 맞는 댓글을 올리는 등 싸움이 일어난다. 네이버는 사람이 (사이트에) 무조건 많이 유입되는 게 이익이기 때문에 방치한 것 같다”고 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해 네이버가 대책을 발표한 지난해 4월25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모습. 연합뉴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해 네이버가 대책을 발표한 지난해 4월25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모습. 연합뉴스

지난 4월22일 시민단체 오픈넷은 드루킹 댓글 조작에 대한 1심 유죄 판결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픈넷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분석했다. 기자회견에 나온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드루킹 댓글 조작이 위법하다고 특검이 드는 사유들은 모두 위헌적”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드루킹이 (조작에) 쓴 ID는 ID 이용자의 암묵적인 합의에 의해 이용된 것”이라며 “잘못이 있었다면 다른 사람의 로그인 정보를 쓰지 말라는 네이버의 이용약관을 어긴 것 뿐인데, 그게 범죄라면 이 세상의 수많은 단순 계약 위반을 다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이어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어떤 사람의 주장이 허위라는 이유만으로 처벌될 수도 없다”며 “여론의 바로미터인 네이버를 건드렸다는 주장이 있지만, 아무리 국내 1등 포털사이트라고 할지라도 특정 댓글이 많아보이게 한다거나 적어보이게 하는 게 과연 범죄에 해당되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댓글 조작이 아니라 네이버 연관검색어 조작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는 종종 나온다. 네티즌들이 특정 업체 홍보글을 클릭한 것처럼 네이버에 정보를 보내 검색순위 상위에 노출되게 한 혐의로 기소된 이들은 1심에서 징역 10월~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정혜원 서울동부지법 판사는 “네이버 사용자가 직접 네이버 사이트를 방문해 키워드를 입력·검색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직접 클릭한 것처럼 신호가 전송됐다면 이는 허위의 정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네이버에서 특정 검색어가 반복 조회되도록 해 연관검색어 상위 순위에 나타나게 했다가 기소된 사건도 있다. 그러나 이 사건들은 연관검색어 조작을 ‘영업’으로 하는 등 드루킹 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

■같은 댓글 조작인데 업무방해죄 피해간 원세훈

드루킹 사건과 유사한 형태인 국가정보원의 댓글 조작 사건에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정작 업무방해죄에 대해 검찰로부터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원 전 원장 지시를 받아 댓글 조작을 수행한 직원들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는 범죄는 성립하지만 재판에 넘겨 처벌하지는 않는 결정이다.

경향신문이 확보한 당시 불기소처분서를 보면, 검찰은 “(국정원이) 오늘의유머에서 조직적으로 다수의 아이디를 사용해 특정 글에 대한 집중적인 찬반 클릭 활동을 함으로써 이 사이트의 평판시스템이 정상적인 작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등 정보처리에 장애를 발생하게 했다”며 댓글 조작이 업무방해죄는 맞다고 했다. 그러나 원 전 원장에 대해서는 검찰은 “원 전 원장은 사이버 활동의 일환으로 찬반클릭 부분이 시행되고 있다는 통상적인 사정을 넘어서 오늘의유머 사이트의 평판시스템의 내용이나 그 평판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고, 업무방해의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원 전 원장은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만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최근 법원에서는 오늘의유머가 국정원 댓글로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오늘의유머 측이 국가와 원 전 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기각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04단독 조지환 판사는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국정원의) 사이버활동으로 인해 오늘의유머 게시물 시스템이 붕괴되는 등의 장애가 발생했다거나, 그로 인해 이씨에게 재산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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