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 382명 설문조사…“중단된 적 있다” 22% 불과
‘35도 이상’ 권고 유명무실…“일당 삭감 뻔한데 비현실적”

연이은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9일, 건설노동자 ㄱ씨(65)는 서울 송파구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을 받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온몸에서 힘이 빠지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주저앉은 곳이 추락 위험이 있거나 철근 등 위험물이 있는 곳이었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건설현장에서 일한 지 30년이 넘은 그는 “여름철 작업 중 구토를 하는 동료도 많지만 제대로 쉴 곳은 마련돼 있지 않다”며 “건설현장은 금속으로 된 시설물이 많아 실제 현장 온도는 50도가 넘는다”고 말했다. 그가 일하는 작업장에서는 지금도 300명 넘는 건설노동자가 일하고 있지만 고작 10명 정도만 쉴 수 있는 그늘막이 쳐져 있는 게 전부다.
고용노동부의 ‘업종별 온열질환 산업재해 발생 현황’을 보면 지난해 건설노동자 3명이 폭염 속 작업 도중 숨졌다. 올해도 지난 12일까지 발생한 온열질환자 1483명 중 23%에 해당하는 349명이 건설 등 옥외노동자였다. 잇따른 인명사고에 정부는 “35도 이상 폭염 시 실외작업을 중단해달라”고 권고 중이지만 현장에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현장 건설노동자 3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3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폭염으로 작업이 중단된 적이 있다’고 밝힌 응답자는 22%에 불과했다. 이번 설문은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 9~12일간 진행됐다. 응답자의 16.4%는 ‘폭염으로 작업중단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고 답했다. ‘본인이나 동료가 실신하는 등 이상징후를 보인 적이 있다’는 답변은 절반을 넘었다.
정부 권고안을 보면 33도 이상 폭염특보 발령 시에는 1시간마다 10~15분 이상 규칙적으로 쉴 수 있어야 하지만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23.1%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쉴 공간이 충분히 마련돼 있다’는 응답은 10%도 되지 않았다. 또 응답자의 14.8%는 시원한 물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땀을 씻어낼 세면장도 85.8%가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현장에서는 정부의 작업중단 권고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자에게 작업중단은 곧 일당 삭감을 뜻하기 때문이다. 폭염 사고를 당할 뻔한 ㄱ씨 역시 “쉬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 폭염에 목숨 걸고 일을 해도, 폭염 때문에 일을 못해도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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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작업중단에 따른 임금 감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시의 경우 폭염경보가 발령되면 시·자치구·투자출연기관이 발주한 공사현장의 실외작업을 중지하되 임금은 온전히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건설노조는 “수년간 폭염 대책은 7~8월 반짝 언급되다가 금세 사라졌다”며 “노동부가 시행령 등을 개정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