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본이다. 폭염보다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들의 외침이 더 뜨겁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과 광복절을 지나며 함성은 더 커졌다. 직접적인 발단은 일제의 강제징용 피해 보상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이었다. 아베 정부는 수출규제로 보복을 감행했고, 우리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정면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건 일본 정부만이 아니었다. 2010년과 2015년, 대법원은 현대차의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판결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끄떡도 없다. 기업이 법 위에 군림한다? 2004년, 고용노동부는 현대기아차의 공정을 불법파견으로 판정해놓고도, 여태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기업의 눈치를 본다? ‘재벌’이란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더 많은 이익을 내려고 노동자들을 제멋대로 고용하고 해고하는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는 현대기아차 재벌,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징용으로 사람들을 마구 동원하고 착취했던 일본 제국, 이 둘은 그 본질에서 서로 얼마나 다른가? 문재인 정부가 아베 정부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현대기아차부터 제대로 다룰 일이다.
광복. 일제에서의 해방은 암흑 속에서 빛을 되찾은 기쁨과 감격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벅찬 기쁨과 감격도 일상의 변화로 녹아들지 않으면, 결국 의미 없는 문자만 남게 된다. 해방 후 74년,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왔는가? 성경의 ‘출애굽’은 노예였던 히브리인들이 이집트 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는 해방의 사건, 아니, 해방의 시작이었다. 해방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사회 건설로 완성될 터였다. 이스라엘 율법의 핵심인 안식일, 안식년, 희년 규정에는 모든 인간의 평등과 존엄, 땅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 전망이 담겨 있다. 이 전망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현실로 만들어가지 않으면, 해방은 잠시뿐 억압과 수탈의 역사가 반복된다.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 왕정 이후에는 줄곧 부패한 왕들의 폭정과 실정에 시달렸고, 결국 아시리아와 바빌론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해방을 가로막는 세력은 안팎에 모두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내부 세력이 더 위험하다.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의 아베 정권만 위험한 게 아니다. 이 땅의 자본은 기회만 있으면 노동자의 삶을 담보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해왔다. 정부는 그런 자본의 요구에 화답해왔다. 일본 경제보복이라는 비상한 상황이니 ‘화학물질등록평가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을 완화하라고 요구한다. 이 법규들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불화수소 누출사고 이후 국민 안전을 위해 마련되었다. 얼마나 되었다고, ‘주 52시간 근무제’를 유예하라고 채근한다. 작년 기준,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세 번째로 긴 나라다. 우리나라 토건 세력은 4대강을 16개 보로 찢어놓고도 여전히 목마르고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생태하천이라며 전국의 지천에 보 건설을 계속하고, 양수발전이라며 댐 건설로 지역주민의 삶과 환경을 파괴하기 일쑤다. 지역경제 활성화라며 설악산을 비롯한 전국의 산지에 케이블카를 놓으려 한다. 그 집요함에 소름이 돋는다. 개인과 자연이 자본의 편리한 먹잇감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오늘, 자본이야말로 제국이다.
우리 사회에서 제국 노릇하려는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몰아내야 한다. 사람의 존엄과 생명의 신성함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만큼 우리의 해방은 완성된다. 딱 그만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징용 피해자의 한이 덜어지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해 부당한 대우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삶이 나아지고, 개발의 발톱에 찢긴 자연이 회복될 것이다.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다짐을 실현하려면 적어도 우리나라 안에서는 제국의 횡포가 발붙이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잊지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