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부터 국내에서 6개월 이상 머무는 외국인은 건강보험 당연가입 대상자가 됐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회보험제도인 건강보험 가입에 국적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도 가입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보편적 건강권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올바른 방향이다. 시민단체와 유엔인권기구에서도 장기체류 외국인에 대한 차별 없는 건강보험적용을 여러 차례 권고한 바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작년 7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하면서 “적정 부담능력 있는 곳에 적정 부과 원칙”이라는 사회보험 원칙을 강조한 바 있었기에 외국인의 건강보험제도와 관련한 제대로 된 정책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정부의 장밋빛 정책방향이 실제 현장에는 전혀 다른 기형적인 제도로 이어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되지만, 단언컨대 이번 외국인 건강보험 당연가입 제도가 그중 가장 최악이다.
![[시선]외국인 ‘건보 차별’ 왜 문제인가](https://img.khan.co.kr/news/2019/09/01/l_2019090201000053600006751.jpg)
도입 과정부터 성급했다. 정책 적용대상이자 보험료 납부 당사자인 체류 외국인에 대한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실태조사가 없었다. 외국인의 보험료 체납을 체류자격과 연결시켜 건강보험료를 3회 초과 미납하면 한국에서 쫓아내겠다는 초강수를 두면서(외국인이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했다고 체류자격을 취소하는 것이 정당한지도 의문이다. 내국인이 건강보험료를 미납했다고 해서 학교나 직장을 그만두게 하거나, 거주지를 제한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의 체류자격별 평균소득에 대한 기초조사도 없었다. ‘적정 부담능력 있는 곳에 적정 부과 원칙’이라는 보편적 기준은 사라지고, 근거를 알 수 없는 자의적 기준들로 제도가 설계되었다. 지역가입자 보험료 산정기준이 대표적이다.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과 재산을 기초로 보험료를 산정하지만, 산정된 보험료가 전체 가입자의 평균보험료(2018년 기준 월 11만3050원)보다 적으면 무조건 평균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통계자료는 이러한 기준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2018년 말 국세청이 발간한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연말정산을 신고한 외국인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2510만원으로 전체 직장인 평균 연봉(3519만원)의 70% 수준에 불과했다.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피부양자 범위도 내국인보다 엄격해서 부모와 성년인 자녀가 함께 거주하는 경우에는 각각 가입대상자가 된다. 그러다보니 가족단위로 체류하게 되는 난민이나 동포들의 경우에는 한 달 소득은 최저임금 수준임에도 매월 30만~40만원의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보험료가 사실상 체류를 위협하는 수준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농어촌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사업장에 고용되어 일하고 있지만, 사업장이 직장의료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라 지역가입을 해야 한다. 내국인의 경우 의료 환경이 충분하지 못한 농어촌 및 도서지역의 경우 보험료가 감면되지만 외국인은 그 지역에 살더라도 감면 대상에서 제외된다. 외국인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품질도 문제다. 충분한 의료통역이 제공되는 의료기관은 턱없이 부족하고,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이 일상화된 외국인 노동자들은 몸이 아파도 평일에 병원을 가서 진료를 받기란 상상하기 어렵다. 외국인의 의료 접근권에 대한 진지한 성찰보다 고액의 건강보험료 징수와 체납에 대한 징벌적 처벌을 강조하는 것은 보편적 인권보장의 책임이 있는 정부의 역할이 아니다.
문제가 되자 보건복지부는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준이 정당한 이유 없이 특정 집단에 적용되지 않거나 반대로 엄격하게 적용될 때 우리는 그것을 차별이라고 부른다. 우리 헌법은 부당한 차별은 금지한다. 차별은 점차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인종차별적인 건강보험제도의 시행을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