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해 11월 워싱턴 백악관 정례 브리핑에 참석해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경질 사실을 발표하면서 “나는 그의 여러 제안에 대해 의견이 크게 달랐다”고 했다. 볼턴과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이슈에서 부딪쳤지만 특히 최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을 대통령 별장 ‘캠프데이비드’로 불러 협상하는 문제를 놓고 충돌한 것이 경질의 결정타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와 볼턴이 충돌한 5대 이슈로 아프간,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러시아 관련 외교정책을 꼽았다. 사실상 미국의 주요 외교이슈에서 모두 부딪친 셈이다. 2000년대 초반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이란·이라크·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간 네오콘 출신인 볼턴은 제재와 선제공격을 고집해 외교적 해결과 실리를 추구하는 트럼프와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볼턴은 지난 5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트럼프는 “즐겁지 않다”면서도 비핵화 회담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지난해 5월 미국이 이란 핵합의(JCPOA)를 파기하고 제재를 재개하기로 할 때에는 두 사람의 의견이 같았다. 그러나 올 6월 이란이 미군 무인기를 격추했을 때에는 입장이 갈렸다. 볼턴은 보복공격을 주장했지만 트럼프는 마지막 순간에 공격을 취소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 ‘축출’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자 볼턴에게 실망감을 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볼턴은 친러시아 반군과 싸우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원조를 약속했지만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부패했다”며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경질의 직접적 도화선은 아프간 문제를 둘러싼 ‘언론 플레이’였다는 얘기가 많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에 따르면 트럼프는 측근들이 볼턴 경질을 수차례 건의했는데도 그동안 받아들이지 않았다. 볼턴의 ‘호전성’이 이란 같은 국가를 상대할 때 유용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백악관 분위기가 바뀐 것은 탈레반 지도부를 캠프데이비드에 초청할 지를 둘러싼 백악관 내부 논의가 지난 주말 언론에 공개되면서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의 탈레반 초청계획에 볼턴이 거세게 반발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는 자신이 스스로 회담을 취소하고 협상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결정에 볼턴이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보도되자 격분했다”고 전했다. CNN도 트럼프가 당시 볼턴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몹시 화를 냈다고 전했다.
반면 트럼프가 외교성과로 내세우려던 아프간 평화협상이 깨진 뒤 볼턴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분석도 있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차관을 지낸 도브 자카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자문위원은 의회전문매체 더힐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는 어떤 일에서든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라며 “볼턴은 (백악관을) 나가야만 했다”고 썼다.
볼턴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불화설도 많았다. 폼페이오 장관은 10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언제든 원하는 사람들을 쓸 권리가 있다. 참모는 직접적으로 대통령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고, 대통령은 자신이 신뢰하며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둬야 한다”고 했다. 결국 볼턴이 대통령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뜻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탈레반과의 비밀회동이 취소됨으로써 볼턴이 폼페이오에게 한번 승리를 거뒀지만, 이어진 주도권 싸움에선 결국 밀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볼턴은 물러나는 순간까지 트럼프와 마찰을 빚었다. 트럼프는 트위터에 자신이 볼턴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고 적었지만, 볼턴은 곧바로 트위터에 “내가 물러나겠다고 말했다”고 적어 ‘해임’이 아닌 ‘사임’이었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