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재판서 무슨 일이
검찰의 임종헌 진술조서 증거능력 문제 삼던 박병대 측
유리한 진술만 빼내 반박…검, 허용한 법원에 “공평한가”
사법농단 재판에서 피고인들의 ‘증거 싸움’이 점차 교묘해진다.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측이 공범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검찰 조서를 증거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중 자신들에게 유리한 일부 진술만 빼내 쓰자 검찰이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18일 밤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재판장 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재판에서는 검찰이 피고인 측과 재판부에 항의하며 공방이 벌어졌다.
당초 박 전 처장 측은 임 전 차장의 피의자신문조서와 곽병훈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진술조서를 증거로 사용하면 안된다는 입장이었다. 검찰이 조사 내용을 기록한 ‘조서’는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진술자를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 자신이 진술한 게 맞다고 확인해야 한다. 그때까지는 조서를 법정에 꺼내 함께 보면서 확인하는 절차인 서증조사도 못한다. 그동안 검찰은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은 조서 등을 의견서에 인용하지 못했다.
그런데 박 전 처장 측이 임 전 차장과 곽 전 비서관의 조서 중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관련 혐의에 대한 진술 일부를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의견서에 인용했다. 이 부분에 한해서만 증거로 사용하는 데 동의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일반 재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박남천 재판장은 이를 허용했다.
박 재판장은 “검사의 증거는 범죄사실 증명을 위한 것이지만, 피고인 측의 증거는 그렇지 않다”며 “범죄사실을 증명하는 증거가 아니면 엄격한 증거능력이 없고 증거조사를 거치지 않더라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검찰은 이의를 제기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검찰은 인용조차 못하는데, 피고인들은 유리한 부분을 먼저 사용하는 게 부당하다는 취지의 이의다.
검찰은 “검사가 입증하겠다면서 증거로 신청했는데 증거에 대해 설명할 기회도 안 주면서 변호인들이 그 증거들을 의견서에 반영해 검찰에 대한 반박 자료를 쓰는 게 과연 공평한 재판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검찰은 또 “검사가 낸 수백, 수천개의 증거가 있는데 피고인들이 조서 중 유리한 문구만 따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냐”며 “다른 재판에서도 이렇게 진행되느냐”고 따졌다. 형사소송법은 ‘법원은 검사가 신청한 증거를 조사한 후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신청한 증거를 조사한다’고 규정한다. 임 전 차장이 올해 안에 증인으로 나올지는 미지수다.
사법농단 피고인들은 검찰의 증거를 문제 삼았다가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또 다른 트집을 잡는다. 기소된 직후인 지난 3~5월에는 임 전 차장의 이동식저장장치(USB) 압수수색 과정이 위법하다고 주장했고, 6~7월에는 USB에 들어 있던 법원행정처 문건의 한글파일과 이를 출력해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한 자료가 동일한지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운호 게이트’ 수사기밀 유출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판사 재판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최근 피고인들은 검찰의 범죄인지서 ‘출력 날짜’가 법원행정처 문건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청구 전인 지난해 7월2일로 표기된 것을 문제 삼고 있다.
검찰은 “단순 시스템 오류”라고 해명했다. 피고인들은 “출력 일자를 정확히 기재하라는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촉진법이 시행된 지 10년 됐는데 서울중앙지검에서는 다 무시했다.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다음달 14일이면 임 전 차장이 기소된 지 1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