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인 차원의 윤리 도덕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다. 좋아하는 주제도 아니거니와, 나라는 사람이 직업상으로나 인품으로나 도저히 그런 이야기를 입에 올릴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한 번만 예외로 용서해 주시길 빈다.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는 식자들에게 걸려들면 시장에 대한 맹신, 국가의 후퇴, 지구화 등등의 온갖 현란한 사회과학 용어로 범벅이 된 추상적 개념으로 변해 버린다. 틀렸다. 신자유주의는 그렇게 유령 같은 존재가 아니다. 누구나 매일매일 일상에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확고한 개인의 행동 윤리이며, 그 내용도 너무나 명쾌하여 토악질이 날 정도이다. ‘법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이웃과 윤리와 공동체에 대한 모든 고려를 제쳐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너의 잇속을 챙겨라.’ 이러한 개인들이 늘어나면, 과학적으로나 사회 정의의 차원에서나 황당하기 그지없는 신자유주의의 여러 제도와 정책들도 얼마든지 현실에서 용납되고 지속될 근거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제도와 정책이 정착되면 또 그러한 개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순환 고리가 형성된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내면화한 주체의 형성’이다.
내가 이번 조국 사태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점은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집단에서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방금 말한 신자유주의 윤리의 신봉자라는 점이었다. 조국 교수 일가의 행태는 바로 위에서 말한 신자유주의 행동 윤리를 알뜰하게 실천한 것임이 명백하다. 지면이 좁아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는 그 일가의 변칙적 행동들은 분명코 개인의 잇속을 채우는 행동이었을 뿐, 공동체와 윤리를 고려한 행동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른바 진보 진영에 속한다고 간주되는 지식인, 정치가, 심지어 유력 매체까지 일제히 나서서 한목소리로 외친다. “입시 시스템이 이런데 어쩌란 말인가?” “공직자는 물질적 욕심을 추구하면 안된단 말인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한에서 가장 유리한 상속 방식을 취한 것이 뭐가 문제인가” “조국처럼 살지 않은 자부터 돌을 던져라” 등등. 그 모든 이야기는 다음의 한마디로 뭉쳐진다. “그래서 조국 교수가 불법이라도 저질렀단 말인가?”
신자유주의는 무슨 쌈박한 정책 제도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단순한 정책과 제도의 조합이 아니라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행동 윤리인 것처럼,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단순한 정책과 제도의 시행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그에 걸맞은 대안적인 행동 윤리로 바꾸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라는 제도를 확립하려면 세금 징수를 놓고 계층으로 갈라져 서로 더 내라는 싸움 대신 ‘함께 내어 함께 돌보고 함께 즐기자’라는 전혀 다른 원칙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 내야 한다.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을 당연히 여기는 생각을 넘어서서 ‘우리 모두 일해서 살아가는 똑같은 이웃’이라는 원칙을 사람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살인적 경쟁과 배제의 수단이 되어 버린 교육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내 새끼’가 아닌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먼저라는 원리를 사람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이러한 “지적 도덕적 개혁”(그람시)이 없다면 설령 천사들의 정책과 제도를 베껴온다고 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며, 금방 이기적 개인들에 의해 점령당하여 변형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경제학자 루카스의 끔찍한 주장처럼, 신자유주의적 개개인들이 존재하는 한 모든 정책과 제도는 다 무용지물이 되어 버릴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가 드러낸 가장 근본적이고 심각한 위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진보’를 자임하는 집권 세력과 그 주변의 인물들의 다수가 이러한 철저한 신자유주의 윤리관을 가진 개인들이라는 게 드러난 것이다. 이제 ‘진보’는 무슨 논리로 또 무슨 낯짝으로 복지국가와 연대를, 노동과 소수자를, 평화와 통일을, 조세 정의와 인간적 교육을 외치며 사람들을 설득할 것인가? 왜 나더러 조국 교수 일가와 다르게 살라고 하느냐고 되묻는 사람들에게 무어라고 할 것인가? 그냥저냥 비슷하게 대충 살아가는 당신들이 굳이 권력을 잡아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
그렇다. ‘진보’ 세력이란 항간의 신자유주의적 윤리와는 다른 윤리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집합이다. ‘진보’라는 힙한 배지는 달고 싶지만 이 너무나 당연한 명제는 부담스러운 이들이 너무나 많다. 흥미롭게도 이런 이들이 특히 즐겨 뇌까리는 문장이 있다.
‘우리 인간은 못 되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라던가. 인간과 괴물 사이에 중간은 없다. 인간도 아니고 괴물도 아니라면 그게 바로 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