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잃어버렸다. 지하철 선반 위에 둔 것을 잊고는 그냥 내렸다. 10분쯤 걷다가 무언가 허전해서 돌아보니 항상 메고 다니던 가방이 없었다. 그러나 별로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상수역에서 나의 가방을 싣고 응암역 방면으로 출발한 6호선 지하철은 은평구를 순환하고 다시 상수역으로 돌아올 것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하철에 이것저것을 많이 두고 내렸지만 순환선인 2호선을 주로 탄 덕분에 한 바퀴를 돌아온 지하철을 다시 타고 분실물을 찾곤 했다. 이게 뭐가 자랑이라고 적고 있는지 민망하지만, 순환선에서 잃어버린 물건은 열차가 돌아나오는 시점만 잘 맞춘다면 대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직설]지하철에서 가방을 잃어버렸다](https://img.khan.co.kr/news/2019/10/30/l_2019103101003677900297071.jpg)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마포구청역쯤을 지나고 있을 지하철의 위치를 감안해 새절역으로 전화를 걸었다. 11시57분에 상수역을 지난 지하철에 가방을 놓고 내렸다고 하자 역무원은 나에게 “몇 다시 몇 번에서 내리셨나요. 그걸 모르면 찾을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는 나에게 인력이 부족해서 지하철이 멈추었을 때 그 자리만 빠르게 찾아보고 나올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그래서 나는 대략 7-4번쯤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몇 분 후, 역무원에게서 “가방이 없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역마다 전화해서 찾아달라기도 미안해서 나는 그 지하철이 다시 상수역을 통과하는 시간을 물었다.
상수역에 도착한 나는 내가 2-1번에서 내렸다는 것을 알았다. 과연 새절역의 역무원이 가방을 찾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가방을 찾을 것을 자신하며 지하철에 올라 선반을 살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8칸을 모두 돌아다녀도 나의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서야 가방을 찾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무엇보다도 가방의 노트북에는 몇 달간 쓴 단행본 원고가 들어 있었다. 온라인에 문서 저장이 되는 클라우드 같은 것을 사용하다가 구독료가 아까워 갱신하지 않았는데, 그 몇 달치가 모두 날아간 것이다.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지하철에 물건을 놓고 내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다했다. 6호선 유실물센터에 분실물 등록을 했고, 합정역부터 응암역까지 10여개의 역 사무실에 검은색 가방이 들어온 것이 있는지 물었고, 경찰서에 역플랫폼의 CCTV를 확인할 수 있을지를 물었고, 지하철경찰대의 일이라고 해서 다시 거기에도 전화했다. 여러 역의 CCTV를 확인할 방법은 없고 각 역에 경찰관과 함께 동행해 요청해야 한다고 해서, 여러 사람을 고생시킬 그 방법은 그만두었다.
하루가 지나고, 가방을 찾는 일은 거의 포기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분실물이 모두 모인다는 ‘LOST112’에 접속해선, 가방 같은 것이야 아무래도 괜찮아졌다. 거기엔 분 단위로 누군가가 잃어버린 가방, 지갑, 휴대폰 같은 것들이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심지어 “노상에서 주운 현금, ○○경찰서” 하는 것도 있었다. 잃은 사람의 마음도, 주운 사람의 마음도 그 한 줄에 모두 들어있는 것이다. 물건은 사면 그만이고 원고는 다시 쓰면 그만이지만 이처럼 서로가 연결돼 있음을 일상에서 감각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가방의 비용은 그것으로 정말이지 충분히 보상받았다. 여기에 접속하고 나면 모두가 같은 마음이 될 것이다. 다시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다짐보다도 당신의 무엇을 반드시 찾아주겠다는 심정이 되고 만다.
상수역의 역무원을 비롯해 가방을 찾는 동안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준 경찰, 공익근무요원, 분실물센터 직원 등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가방은 잃었지만 덕분에 그보다 소중한 무엇을 얻었다. 그에 더해, 몇 달 동안 쓴 원고가 정말 별로여서 가방이 스스로 도망갔다고 믿기로 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김민섭의 가방을 발견한다면 언제라도 연락주었으면 한다. 응원하는 야구팀의 민트색 배지가 달린 검은색 백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