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올여름에 나온 그의 새 저작 <대변동>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다이아몬드는 지식과 지식인의 사회학을 공부해온 내게 매우 이채로운 학자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첫째, 그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공적 지식인’이다. 전문적 지식인이 지식사회 안에서 학술 연구로 주목받는 이들이라면, 공적 지식인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지적 담론을 펼쳐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을 말한다. 다이아몬드는 2005년 미국 ‘포린 폴리시’와 영국 ‘프로스펙트’가 선정한 세계 100대 공적 지식인 가운데 아홉 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둘째, 그는 생리학·지리학·인류학·역사학 등을 포괄하는 이른바 ‘빅 히스토리’의 문명학자다. 학문의 전문성을 중시하는 오늘날의 지식사회에서 그는 매우 특별한 존재였고, 그의 저작들은 대학생과 시민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누려 왔다. 예를 들어,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총, 균, 쇠>는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는 필독서 가운데 하나다.
<대변동>은 국가의 위기를 살펴보고 그 해법을 찾으려는 저작이다. 다이아몬드는 개인의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이 국가의 위기를 대처하는 데 유용하다는 아이디어로 분석을 시작한다. 그가 주목하는 세 쌍의 국가 위기는 다음과 같다. 다른 국가가 야기한 충격에 격변을 맞은 ‘핀란드와 일본’, 내적 갈등으로 갑자기 위기가 폭발한 ‘칠레와 인도네시아’,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점진적으로 확대된 위기에 시달린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가 그 사례들이다.
내 시선을 끈 것은 일본과 미국, 그리고 세계사회를 중심으로 한 현재진행형인 위기에 대한 분석과 그 위기를 극복할 방법에 대한 제언이다. 이에 대해 다이아몬드는 특히 여섯 가지 사항을 강조한다.
첫째, 국가가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변화를 주도할 책임을 수용해야 한다. 둘째,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서 그에 대한 선택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셋째, 당면한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는, 표본으로 삼을 만한 국가를 찾아야 한다. 넷째, 문제 해결을 위한 첫 시도는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연속적인 시도에 대해 인내해야 한다. 다섯째, 국가에 어떤 핵심가치가 유효한지를 숙고해야 한다. 여섯째, 자신의 능력을 정직하게 평가해야 한다.
<대변동>은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를 잇는 다이아몬드 문명 연구의 미래 버전이다. 앞선 저작들에서 펼쳐진 방대한 문명 탐구들을 주목할 때 <대변동>의 미래를 향한 제언은 ‘당연한’, 다소 진부한 결론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자신이 지적하듯, 이 당연한 충고는 많은 경우 과거에도 무시됐고, 현재에도 무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진지하게 재고돼야 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법이다.
다이아몬드의 미래 전망에서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미래의 세계사회에서 인류를 위협할 네 가지 문제인 핵무기, 기후변화, 세계적 자원 고갈, 세계적 차원의 불평등에 대한 진단과 해법이다. 이 위기들을 대처하는 데 그는 국가 간, 다자 간, 지역 간, 세계적 수준의 협정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이 역시 새로운 제안은 아니지만, 기후위기와 불평등에서 볼 수 있듯 이 문제들 자체에 대한 지구적 계몽을 촉구하는 의미를 가진다. 다이아몬드가 전망하듯, 파괴라는 말과 희망이라는 말이 벌이는 경마에서 우리 인류는 희망이라는 말의 승리에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위기에 대한 정직한 인식이다. <대변동>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국가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위기를 담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솔직하게 ‘위기’를 인정하고 지혜로운 ‘선택’을 통해 적극적 ‘변화’를 모색할 때 더 나은 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대변동>의 부제가 ‘위기, 선택, 변화’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내가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 2019년 현재 대한민국은 위기인가? 1945년 광복 이후 우리 사회가 걸어온 산업화 30년과 민주화 30년은 분명 자랑스러운 과거였다. 그런데 국민 다수가 제4차산업혁명, 고령사회, 경제적·정치적 양극화라는 현재와 미래의 대한민국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면, 우리 사회는 위기의 입구에 서 있는 것은 아닌가? 다이아몬드는 위기에 대응하는 데 정부와 의회의 정치적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당연한 주장이 우리 사회에 함의하는 바 역시 간단하다. 문제의 핵심은 미래다. 미래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총선의 제1의제가 되길 바라는 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