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베를린의 ‘마음 장벽’

서의동 논설위원

엘베 강변에 형성된 독일 작센주의 주도(州都) 드레스덴은 옛 동독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힌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츠빙거 궁전을 비롯해 오페라극장인 젬퍼오퍼, 호프 교회와 레지덴츠 궁전 등 다양한 건축물이 황홀한 자태를 뽐낸다. 드레스덴은 이런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극우운동 조직 ‘페기다(서방의 이슬람화에 저항하는 애국적 유럽인들)’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페기다의 시위가 젬퍼오퍼 앞 광장에서 열리는 것도 아이러니다.

극우세력들의 발호가 심상치 않자 급기야 드레스덴 의회가 지난달 말 극우주의를 배격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작센주와 튀링겐주를 비롯한 동독 지역에서는 극우성향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부상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이 지났지만 독일의 동서 간에는 여전히 ‘마음의 장벽’이 건재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통일 이후 동독 지역의 각종 지표들은 현저히 개선됐지만, 동서 간 격차는 여전하다. 동독의 고학력층과 젊은이들은 서독으로 이탈했고, 동독에 남은 이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잃은 채 ‘2등 국민’으로 강등됐다. 서독인 3만~4만명이 동독으로 건너와 은행장, 법원장, 병원장 등 주요 지위를 차지하면서 동독의 엘리트를 밀어냈다. 대학 총장 중 동독 출신은 한명도 없고, 정교수 중에서도 동독 출신은 5%에 불과하다고 한다. 통독 이후 동독체제는 나치 수준으로 ‘악마화’됐고, 동독인들의 삶의 방식은 부정됐다. ‘극우 포퓰리즘’은 이런 상실감과 좌절감을 먹고 자란다.

서독은 1970년대부터 동방정책을 수립해 동독과의 화해·협력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은 1989년 11월9일 여행자유화에 관한 포고령을 발표하던 동독 공산당 간부의 실언으로 촉발됐지만, 동방정책의 결실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30년이 지나도록 후유증이 남은 것은 통일의 완성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웅변한다.

한국 사회의 ‘북한 악마화’는 독일과는 비교불가의 경지다. 탈북민들이 겪는 차별을 생각한다면, 남북의 통일은 독일과는 차원이 다른 후유증을 몰고올 우려가 크다. 올해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그저 ‘그날의 감격’을 되새기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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