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진단 - ③ 김현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인터뷰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지난 7일 세종시 KDI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광연 기자
“성장률 하락이라는 전 세계적인 추세 속에 기술 개발 등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것만이 한국 경제가 살길입니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지난 7일 세종시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2019년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위기를 이같이 평가했다.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저물가·저금리와 더불어 대세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과거의 ‘고도성장’을 기대하기보단 성장률 하락에 적응하며 이를 둔화시킬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한국은행 출신으로 KDI 경제전망실장을 지낸 김 교수는 인터뷰 내내 정부가 단기적인 대책 위주의 경기대응에서 벗어나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인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현재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지난 2~3년간 성장을 이끈 전 세계 반도체 경기가 위축되며 한국 경제 부진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2%대 중반으로 예상된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경제성장률)은 미·중 무역갈등 등 대외적 불안요인의 여파로 1%대 후반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 교수는 “길게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저성장 기조에 한국 경제가 수렴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5년 한국 수출 증가율
세계 교역량 증가율 밑돌아
한국 산업경쟁력에 ‘적신호’
김 교수는 2014년부터 한국의 수출 증가율이 세계 교역량 증가율을 밑도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는 데 주목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4년(한국 수출 증가율 2.0%·세계 교역량 증가율 3.9%)과 2015년(-0.1%·2.8%), 2017년(1.9%·5.7%)이 이에 해당했다. 올해 한국 수출 증가율은 지난달까지 11개월 연속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어 IMF가 전망한 세계 교역량 증가율(1.1%)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김 교수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의 산업구조와 산업경쟁력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호”라며 “반도체 이외의 자동차·디스플레이 등 주력 산업에서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부, 산업구조 개혁에 소홀
자금 지원 등 단기적 대책뿐
기초과학에 장기적 투자로
산업구조 청사진 만들어야
대외적 불확실성 대응 가능
김 교수는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과제로 ‘산업경쟁력 강화’를 꼽았다. 그는 “지난 4~5년 전부터 제기된 과제라 새롭지 않다”면서도 지금 시점에서 이를 강조하는 이유로 중국의 추격을 들었다. 김 교수는 “그동안 한국 경제는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중국이 만든 ‘글로벌 가치사슬(GVC)’에 편입돼 혜택을 봤다”며 “그러나 중국이 기술 발전으로 GVC를 자국 내 가치사슬로 대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이 한국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는 산업이 반도체 말고는 없어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산업경쟁력을 높이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을까. 김 교수는 “수출 부진과 같은 증상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대증적인 경기보완에 그쳤다”고 비판한다. 분기별·연간 성장률 등락에 대응하는 단기적인 대책만 내세울 뿐 장기적인 산업구조 개혁 등에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가 불거지고 나서야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늘리고 관련 기업들에 한시적인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 내부에서조차 이러한 단기 대책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김 교수는 정부가 단기적 관점에서 벗어나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장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정부 경제정책의 목표 시점을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2년으로 잡을 것이 아니라 2030년 혹은 2040년까지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산업구조를 개혁해 미래에 어떠한 경제환경을 만들어나갈지 청사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청사진의 초점은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늘려 기술 진보를 촉진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한국이 미래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기초과학 기술을 갖고 있다고 확신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기초과학을 기반으로 한 기술 혁신으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산업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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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미·중 무역갈등과 일본 수출규제 등으로 상징되는 보호무역주의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봤다. 그는 이에 따른 무역분쟁이 언제 어느 곳에서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대외여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경쟁력 강화는 필수적이라는 것이 김 교수 설명이다. 그는 “산업경쟁력을 갖추고 있을 때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외부의 공격에 의연해질 수 있다”며 “무역분쟁이 가져올 가장 큰 위험요인인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이 선진국형 경제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성장률 하락 자체보다는 하락 속도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어느 정도의 성장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라며 “더 빨리 떨어질 수 있는 성장률을 조금 더 천천히 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특히 기술의 대외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