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인정받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의식하면 병이 됩니다”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인정받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의식하면 병이 됩니다”

  • 김진세 | 정신과 전문의

나도 한때 잘나가는 어부였는데…수많은 ‘악플’에 자존심이 무너져요

손에 잡히지 않는 거대한 물고기와 노인의 사투를 그린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는 많은 독자들이 가슴에 도전의 불씨를 퍼뜨리며 오래도록 읽히는 명작이 됐다. 1958년에는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손에 잡히지 않는 거대한 물고기와 노인의 사투를 그린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는 많은 독자들이 가슴에 도전의 불씨를 퍼뜨리며 오래도록 읽히는 명작이 됐다. 1958년에는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금주의 내담자(14)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한때는 잘나갔지만, 주변의 비웃음을 받던 한물간 어부 산티아고. 오랫동안 물고기 구경을 못했던 그는, 마침내 ‘무(無)어획’ 85일째 되는 날 자신의 고기잡이배보다도 더 큰 청새치를 잡게 된다. 그러나 청새치는 상어들의 잇단 공격으로 머리와 꼬리지느러미만 남고, 그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앙상한 생선뼈 덕분에 그나마 훌륭한 어부임은 입증했다 싶은 것도 잠시, 수많은 ‘악플’ 세례에 그만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산티아고 = 김 박사! 진짜 화가 나네. 요즘 사람들 너무하더라고. 글쎄, 내가 잡은 청새치가 가짜 아니냐고 난리야. 뼈만 남아서 자랑을 좀 참으려고 했는데, 가짜라고 하니까 미치겠더라고. 너무 화나고 억울하고 그래서인지 잠도 못 자고 만사가 다 귀찮아요. 심지어 내 인생과도 같은 낚시마저 포기할까 싶다니까.

김 박사 = 속상하시겠어요. 가짜뉴스라고 하나요? 이유가 무엇이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공격당하고, 그로 인해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 참으로 걱정입니다. 그런데 청새치라고 하셨죠. 주둥이가 화살같이 뾰족하고 긴?

산티아고 = 맞아요. 흔치 않은 고기라 잘 모를 텐데. 바다 좋아하쇼?

김 박사 = 그럼요. 바다만큼 편안하고 좋은 곳은 없더라고요.

산티아고 = 맞아요. 마치 엄마 품과 같죠. 때로는 무시무시하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평화로운 곳이지요. 사실, 내가 얼마나 큰 대어를 낚았는지, 굳이 자랑하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예요. 바다는 내게 안식처이자 생활의 터전이고, 그 속에서 일어난 일은 그저 일상일 뿐이니까요. 근데 요즘 낚시 프로그램에서는 서로 잡은 물고기 크기로 경쟁을 하고 ‘자랑질’을 하던데, 뭐, 서로 즐거우면 뭐라 할 일은 아니지만….

사진 올린 마놀린도 공격받아요

“어릴수록 더 큰 상처될 가능성 정신질환 되기 전 상담받아야”

김 박사 = 그런데 누가 그렇게 어르신을 비난하나요?

산티아고 = 말도 마쇼.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만나서 해명이라도 하겠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마놀린’이라고 내가 아주 사랑하는 소년이 있어요.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 녀석이 뼈다귀만 남은 청새치를 SNS에 올린 모양이에요. 올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무튼, 처음에는 반응이 긍정적이었지요.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잡느라고 고생했겠다, 어부를 만나보고 싶다는 둥 말이에요. 근데 어느 시점이 되니, 갑자기 댓글들이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흐르더라고요. 살점 하나 없는 청새치가 말이 되느냐, 인공적으로 만든 것 아니냐, ‘포샵’한 게 틀림없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이 잡은 거 아니냐는 등 밑도 끝도 없는 비난이 쏟아지더니 끝내는 나와 마놀린을 사기꾼 취급을 하고 신상까지 낱낱이 공개되더라니까요. 마녀사냥이 따로 없지요.

김 박사 = 여러 가지로 화가 많이 나셨겠어요. 물론 마놀린도 충격을 많이 받았겠고요.

산티아고 = 이게 아주 큰일이더라고요. 인터넷에 우리 둘 사진이 퍼지더니, 사는 곳을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와서 ‘그렇게 살지 말라’며 겁박하기도 하고…. 나야 살 만큼 살고, 또 산전수전 다 겪어서 무시하려고 하지만, 어린아이에게는 너무 잔인하다 싶어요. 밖에 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 욕을 하는 거 같다더군요. 발가벗고 다니는 기분이라며, 두려워하고 있어요.

김 박사 = 나이가 어리니 더 크게 상처받을 가능성이 많아요. 너무 힘들어하기 전에 상담을 받아보게 하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자칫 심리적 성장이나 인격 발달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고,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정신적 질환으로 발전될 수 있으니까요. 어르신은 괜찮으세요?

사자가 나오는 꿈, 무슨 의미죠

“젊음·힘·용기·자부심을 상징… 목숨보다 중한 자부심 아닐까요”

산티아고 = 나도 심란해서 그런지, 꿈자리가 뒤숭숭해요. 평소에도 꿈이 많기는 해요. 근데 내 꿈이 좀 희한해요. 늘 사자 꿈을 꾼단 말이에요. 정신과에서도 해몽(解夢)을 한다면서요? 내 꿈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김 박사 = 하하하. 일반적으로 해몽이라고 하지만, 저희는 ‘꿈분석’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상담치료 기법인데요. 꿈은 무의식의 여러 가지 욕구나 갈등을 표현하죠. 프로이트가 꿈을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王道)라고 할 정도로요. 그런데 꿈의 의미를 언뜻 알아차리기 힘들어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형되어 나타나기 때문이죠. 수용하기 힘든 무의식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면, 자아가 감당 못할 수도 있어서 변형이 필요한 거죠. 상징이나 대치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요. 아무튼 꿈의 의미는 꿈을 꾼 사람이 제일 잘 알지요. 다만, 무의식 속에 숨어 있으니 알아차리지 못할 뿐입니다.

산티아고 = 복잡하네요. 좀 쉽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김 박사 = 예를 들어, 회사에서 상사가 지나치게 못되게 굴어서 제발 그가 사라져줬으면 하는 무의식적 욕망이 있는 사람 A가 있다고 치죠. A가 상사를 죽이는 꿈을 꾼다면, 얼마나 놀라고 당황스러울까요? 도덕관념이 강한 사람이라면 죄책감마저 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상사가 A를 죽이는 꿈이라면 어떨까요? ‘상사 때문에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는구나!’ 하고 받아들일 만하죠. 근데 실은 꿈의 의미를 찾다 보면, 상사와 A가 뒤바뀐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A는 상사를 죽이고 싶을 만큼 싫은 거죠. 또는 A가 연약하고 작은 쥐떼가 커다랗고 무서운 괴물을 공격해 잡아먹는 꿈을 꾼다고 칩시다. 꿈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저 ‘개꿈’이라고 생각하겠지만요.

산티아고 = 실은 쥐떼가 A고, 괴물이 상사가 될 수도 있겠네요? 일종의 상징과도 같은 거네요.

김 박사 = 맞습니다. 너무 단순화시켜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뜻인지는 대충 감을 잡으셨을 거예요.

산티아고 = 그렇다면 내 꿈도 어떤 상징일 것이다? 혹시 내가 젊었을 때 아프리카로 항해를 했던 것과 연관이 있을까요? 그때 처음 사자를 봤거든요.

김 박사 = 그럴 수 있지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산티아고 = 아무렴요. 젊었을 때는 힘 좀 쓴다는 얘기를 들었죠. 그러고 보니 사자는 힘의 상징일 수도 있겠네요.

김 박사 = 네. 맞아요. 가능한 해석입니다. 또 사자는 용기와 자부심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청새치를 잡는 과정을 들으면서 저는 ‘왜 그렇게까지 하셨을까’를 고민했어요. 정말 돈을 벌 요량이라면, 다른 방법도 많았을 텐데. 또 굳이 3일 밤낮으로 청새치와 씨름을 하고 달려드는 상어를 쫓아내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우셨다는데, 과연 그럴 가치가 있을까. 목숨이 더 소중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자부심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산티아고 = 자부심이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나는 어부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훌륭한 어부 말이오. 무려 84일간이나 물고기를 못 잡았죠. 낚시로 벌어 먹고사는 사람에게는 아주 힘든 시간이지 않았겠소? 한물간 거 아니냐고 사람들이 수군거렸지요. 더구나 꼬맹이인 마놀린이 없으면 정말이지 굶어 죽을 지경이니, 주위에서 얼마나 비웃었겠소. 그런 나를 버티게 해주는 것은 내가 훌륭한 어부라는 믿음이지요. 과거에는 꽤 잘나가는 낚시꾼이었다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누구에게 인정받으려는 것은 절대 아니오. 남들이 아닌, 나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어야 했어요.

김 박사 = 훌륭한 말씀입니다. 인정받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게 지나치면 병이 되죠. 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니까요. 충분히 훌륭한 일을 해놓고도 주변의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실망이 크답니다. 요즘 사람들은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죠. 그래서 SNS에 열광합니다. 반응이 즉각적이고, 한번 물살을 타면 모두가 환호하죠. 게다가 소위 ‘인플루언서’가 되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잖아요.

산티아고 = 그런가 봅디다. 마놀린도 주위 친구들이 SNS를 하니까 엉겁결에 그랬던 거 같아요. 할아버지 일을 자랑하고 싶었겠지. 그런데 100% 이해는 안 돼요. 그 나이에는 야구가 훨씬 신날 터인데, 뭐가 그리 재미있다고 SNS에 파묻혀 사는지.

김 박사 = 꼭 비판만 할 일은 아니에요. 어르신께서도 직접 해보면 참 재미나는구나 하실 겁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도 보고, 쉽게 친구도 되고, 신기한 볼거리가 가득하니까요. 그러나 문제는 팩트를 인지하고 진위를 파악하는 데 자신의 기준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취향과 기준을 좇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때는 세상 최고처럼 받들어 모시고 칭송하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트리기 일쑤지요. 그런 롤러코스터 같은 반응에 가짜뉴스가 한몫하는 것이고요.

가짜뉴스에 화가 납니다

“때론 놔두는 게 현명한 법이지만 못 참겠다면 신고라도 하셔야죠”

산티아고 = 그래서 내가 온 것 아니오! 썩을….

김 박사 = 너무 노여워 마세요. 분노는 늘 ‘나’부터 망치게 합니다. 이런 때는 그냥 가만히 놔두는 것도 현명한 방법입니다. 오히려 민감하게 반응하면, 더 시끄러워지거든요. 그래도 영 못 참으시겠다면, 신고라도 해야지요.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어르신, 정말 의지가 대단하세요. 정말 위험한 순간도 많았는데, 어떻게 버티셨어요?

산티아고 = 사람들이 내가 해서 유명해진 말이 있다고 하대요. ‘인간은 패배하려고 태어나지 않았다. 비록 파멸에 이를지라도 말이다.’

김 박사 = 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문구입니다.

산티아고 = 나는 어부예요. 늘 바다와 함께하죠. 인생 자체입니다. 84일간 나를 힘들게 하던 바다가 85일 만에 나에게 준 선물이 청새치입니다. 그냥 공짜로 얻은 선물이 아니랍니다. 죽을 고생을 하고 얻어낸 것이지요. 그렇게 삶의 보람과도 같은 청새치를 상어 떼가 공격합디다. 물론 이 또한 바다의 이치니,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 청새치를 지켜야 했어요. 물론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운 이유는, 말 그대로 상어 떼에게는 지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내 소중한 것은 내가 지켜야지요.

김 박사 = 옳습니다. 바다에 나가면 이겨내야 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죠. 요즘은 사회가 험해지다 보니, 바다보다 더 위험한 곳이 되었어요. 젊은 친구들은 스스로를 지켜내기가 역부족인 환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나 기득권층과의 갈등은 넘기 힘든 파도와도 같습니다. 태극기와 촛불로 대변되는 두 세대의 갈등 말입니다. 어떻게든 우리 사회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인데, 이런 고민 속에서 마놀린과 어르신의 관계는 참 좋아 보이는군요.

산티아고 = 사람과 사람이 함께 잘 지내려면 서로에게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이란 것이 있어요. 마놀린과 나의 관계에는 사랑과 존중이 중심이지요. 비록 어리지만 나는 그 녀석을 동등한 어부로 대합니다. 힘들 때면 반드시 내 편이 되어줄 것이고 나를 위해서 울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상대죠. 내가 훌륭한 어부라는 것을 끝까지 믿어주었던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반대로 나 또한 마놀린 일이라면 모든 것을 다 바칠 각오가 되어 있어요. 사랑과 존중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더 강하게 해주죠. 뻔한 이야기라 하겠지만, 요즘처럼 힘든 세상에는 삶의 기본적인 가치가 더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망망대해에서 태풍을 만난 작은 배와도 같은, 이 혼란 속에서 패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서로가 사랑하고 존중하고 믿는 수밖에는 없지 않겠어요?

▶필자 김진세

[김진세 박사의 K상담실]“인정받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의식하면 병이 됩니다”

정신과 전문의 김진세 박사는 슬럼프 극복을 위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길 위의 카운슬러’로 나섰던 천생 상담가다. 고려제일정신건강의학과 원장으로 20년 이상 진료실에서 상담을 하고, 정신 건강과 관련된 수백편의 글을 써왔다. 저서로 <심리학 초콜릿> <행복을 인터뷰하다> <태도의 힘>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 등이 있다.


  • AD
  • AD
  • AD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