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한·미 현안,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굴러가고 있다. 극적 반전이 없을 경우 오늘 자정 종료되는 GSOMIA에는 미국의 동북아 안보 구상이 결부돼 있다. 방위비 분담금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익 우선’ 동맹관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 두 사안이 고약하게 얽히고 있다.
![[편집국에서]살얼음판을 걷게 될 한·미](https://img.khan.co.kr/news/2019/11/21/l_2019112201002659500207981.jpg)
우선 이번 한·미 당국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 상황은 유례가 없다. 미국이 1년 만에 5배인 50억달러(약 5조8000억원)를 늘려달라는데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40~50%를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0억달러는 주한미군이 다 쓰지도 못할 비용이다. 미국의 태도는 맡겨놓은 돈 찾아가겠다는 듯 고압적이고 무례하다.
‘50억달러’ 요구의 시작은 트럼프 대통령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4월 “우리가 50억달러를 잃고 있는 한 나라”라며 “부자 나라”를 지목했다. 누가 봐도 한국이었다. 어떤 근거로, 누구 말을 듣고 50억달러가 그의 뇌리에 입력됐는지 알 수 없지만 ‘설마’했던 그 액수가 ‘현실’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에는 “대형 폭격기가 괌에서 날아오는데 수억달러가 든다” “미국이 한국을 지켜주면 한국도 기여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 미국 당국자들의 방위비 증액 논리 그대로다. 실제로 미국은 50억달러의 명분으로 ‘역외 비용’을 추가했는데 괌이나 오키나와에서 발진하는 전략폭격기의 전개 비용, 주한미군 순환배치 등에 대한 비용도 한국이 대라는 것이다. 이는 현행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틀에 있는 미군의 한국인 고용원 임금,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 등 3가지 명목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는 수준이 아니라 틀을 확 바꾸겠다는 뜻이다.
한국은 올해 1년짜리 SMA 협상을 체결하면서 처음으로 물가인상률이 아니라 한국의 국방비 인상률을 기준으로 8.2%를 올렸다. 한국 정부가 이번 협상에서도 이 기준을 적용하려 할 경우 미국의 성에 찰 수준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년 21대 총선이 다섯 달도 남지 않아, 정부가 여론이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합의문에 서명해줄 상황도 아니다.
미국의 역외 비용 부담론도 마찬가지다. 역외 비용은 주한미군 범위인 한반도 방위를 넘어 미국의 세계 패권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의미한다. 핵심은 중국 견제이다. 한국이 미국의 논리를 받아들이면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끌려들어가게 된다.
턱없이 높은 방위비 요구라는 점에서 보면, 일본의 처지도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이 일본에 제시한 방위비 분담금이 지금보다 4배 많은 80억달러로 알려진다. 미국이 동맹국의 부담을 늘리는 만큼 자체 국방 예산을 절약할 수 있겠지만 미 의회 관계자, 외교·군사 전문가들의 우려와 비판에도 오불관언식으로 밀어붙이는 행태를 보면 다른 절박한 사연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를 테면, 미국 남부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때문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캠페인의 핵심 정책인 장벽 건설을 위해 의회에 83억달러 예산을 요청했는데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의 반대로 예산 1달러도 얻어내지 못했다. 그러자 내년 국방 군사시설 프로젝트 예산 36억달러를 끌어다 쓰겠다고 발표했다. 500마일 중 175마일 건설 비용이다. 장벽 건설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동맹국들에 방위비 분담액을 대폭 늘리려 한다는 것이다.
한·일 GSOMIA 문제는 엄밀하게는 한·일 갈등의 파장 때문에 불거진 것이라 방위비 분담금과는 원래 결이 다른 사안이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몰아치듯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미국의 GSOMIA 유지 명분이다. 미국이 2016년 한·일 GSOMIA 체결을 압박할 때만 해도 ‘북한 핵·미사일 정보 공유’ 필요성 때문이지 중국과는 관계없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종료 시한이 다가오자 “이득을 보는 것은 북한과 중국”이라고 거침없이 얘기한다. GSOMIA로 한·미·일을 연결시켜 중국 견제에 활용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인도·태평양전략에 한국을 편입시키고 싶어하는 미국은 종료 이후 더 큰 목소리로 재체결을 압박할 것이다. 한국을 향해 미·중 패권경쟁에서 미국 편을 들라는 주문이니, 중국은 중국대로 한국의 대응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한국이 GSOMIA 종료 원인인 일본 수출규제 문제가 풀리더라도 GSOMIA를 재가동하기가 만만치 않은 일임을 예감케 한다.
아무런 상황 변화 없어 GSOMIA가 끝나면 한국 정부는 중국 변수까지 더해진 복잡한 숙제에 직면하게 된다. 한동안 한·미관계는 살얼음판을 걷겠지만, 66년 한·미동맹에도 부침은 많았다. 슬기롭게 극복할 정부의 외교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