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밤나무 채식주의자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직설]너도밤나무 채식주의자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아 항공권을 양도한 ‘김민섭씨 찾기 프로젝트’도 벌써 2년이 지났다. 나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와 연결된 여러 재미있는 일들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다른 김민섭씨들에게서 종종 연락이 온다는 것이다. “저도 밤나무입니다” “너도 밤나무로구나” 하는 전래동화가 떠오를 만큼 “저도 김민섭입니다” 하는 여러 김민섭들과 만났다.

93년생 김민섭씨가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72년생 김민섭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저의 이름을 이렇게 널리 좋은 이미지로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김민섭님께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요” 하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왔다. 자신이 만든 파스타를 들고 웃으면서 찍은 사진도 함께였다. 93년생 김민섭씨는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고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사진 속의 72년생 김민섭씨는 정말로 선하게 웃고 있었다.

[직설]너도밤나무 채식주의자

세 김민섭이 모여 식사를 했다. “남들이 똑같은 사람 셋이 모였다고 하겠는데요”라 할 만큼, 셋은 뭔가 닮은 데가 있었다. 김민섭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대개 이렇게 생겼을 것인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 만큼 그랬다. 72년생 김민섭씨의 명함을 받은 93년생 김민섭씨는 “여긴 저의 꿈의 직장이네요” 하고 말했다. 나도 알고 모두가 알 만한 외국계 기업이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회사에 우리 둘을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한 달에 2명씩 외부인을 초대해 회사를 견학하고 회사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타인의 회사에 가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으나 93년생 김민섭씨에게는 선물일 것이어서 흔쾌히 응했다.

강남에서도 지하철역과 가장 가깝고 높은 빌딩의 이십 몇 층에 그의 회사가 있었다. 검은색 정장을 잘 갖추어 입은 여러 사람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빨갛고 파란 외투를 입은 것은 두 김민섭뿐이어서 뭔가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차림새에 대한 민망함은 곧 우리를 마중 나온 72년생 김민섭씨를 보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편안한 후드티 차림이었다.

회사의 식당은 내가 상상한 구내식당과는 많이 달랐다. 식판에 배식을 받고 국그릇을 하나 들고 가면 되겠지 했는데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고르면 되는 뷔페 방식이었다. 프랜차이즈 뷔페들보다도 오히려 음식이 나았다. 먹고 싶은 것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나는 상상하기 어려운 어느 지점에 다다랐다. 거기엔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따로 있었다. 단순히 고기가 아닌 것을 모아둔 게 아니라 누구라도 먹어보고 싶을 만한 맛있는 요리들이 있었다. 회사에 채식주의자가 몇 명이나 된다고 이렇게 메뉴를 따로 마련해 두었을까, 역시 돈이 많은 회사라서 가능한 일이구나, 하는 심정이 된 나에게 72년생 김민섭씨는 후식으로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에도 채식주의자를 위한 것이 따로 있다고, 이것은 몹시 당연한 일이라는 듯 말했다.

이 외국계 기업에선 채식주의자란 이유로 동료직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다. 배려나 보살핌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해야 할 타인의 개성으로 인식될 뿐이었다. 옷차림에 대해서도 72년생 김민섭씨는 “안 그래도 다른 회사들에서 항의가 들어왔어요. 품위를 지키기 위해 이 회사 직원들도 정장 입고 출근하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말 안되는 소리를 한다고 그냥 다 웃고 말았죠” 하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말을 하며,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생각을 할 때, 비로소 ‘닮은 사람’이라고 여기기 쉽다. 한국의 많은 회사들이, 학교와 군대 등 여러 조직들이 그렇다. 너도밤나무가 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회다. 그러나 그 닮음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소수의 자리를 구조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비용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러한 다양성을 모두가 감각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얼마 전 한국의 군대에서 채식주의자 장병을 위한 식단이 없음이 작은 화제가 됐다. 그때 두 김민섭씨와의 점심식사가 먼저 떠올랐다. 국가를 위해 징병된 그들이, 일개 외국계 기업의 회사원들보다 못한 처우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적어도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고 자신의 식성에 따라 더 많은 음식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서로의 이름이 다른 것처럼 모두는 다른 객체다. 그 다름을 감각하고 자리를 마련할 때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한 개인과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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