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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사랑하기엔 멀고, 미워하기엔 가까운

입력 2019.12.03 16:44

수정 2019.12.0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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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근 논설고문

장외집회, 농성, 삭발로 이어진 투쟁의 끝이 단식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국회 마비. 하기야 일년 내내 굶주린 말이 이제 와서 힘차게 달리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조국의 법무장관 사퇴도 끝은 아니었다. 유재수 의혹, 하명 수사의혹이 꼬리를 문다. 한국은 2020년이라는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을까? 2019년이 출구를 잃고 제자리를 맴돌 것만 같다.

[이대근 칼럼]사랑하기엔 멀고, 미워하기엔 가까운

한국 정치로부터 좋은 소식을 듣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느 새 사람에 대한 투자는 SOC 투자 증가로, 재벌개혁은 재벌 중심 성장으로, 양극화 해소는 경제활력 제고로 대체됐다. 평화에 정성을 쏟는데 국방비는 보수집권기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제는 불평등을 얼마나 해소했는지, 보통 사람의 삶이 나아졌는지 따지는 일도 별로 없다. 2019년 경제성장률 2% 달성이 모든 정책의 최종 목표치가 된 마당에 삶의 개선 운운하는 자체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국회를 마비시킨 보수야당의 행태가 말해주는 것처럼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골키퍼가 있어서 골을 넣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야는 총선에서 시민의 지지를 받겠다고 공천 물갈이 경쟁을 한다. 절반 물갈이를 자랑하기도 한다. 절반을 포기해야 할 만큼 정치에 실패한 정당이라면 간판 내리고 퇴장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국 정당은 그러는 대신 절반을 먹잇감으로 내주고 나머지 절반을 두 배로 늘리는 자가 증식을 한다. 물갈이가 변화로 보이도록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주체의 혁신 없이도 기성 정치를 재생산할 수 있다.

저물어가는 2019년의 끄트머리에서 한 해를, 아니 문재인 정부 집권기 전체를 돌아보면 ‘정치는 도대체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가’ 하는 생각에 비관주의자가 되기 쉽다. 하지만 비관론에 빠지기 전에 앤서니 다운스의 <경제이론으로 본 민주주의>를 펼쳐봤으면 한다. “정당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 선거에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 이기기 위해 정책을 만든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정책은 득표 혹은 지지율 제고의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정당은 오직 공직 획득을 통해 얻게 되는, 소득·명성·권력을 위해 행동한다’는 그의 가설은 현실 정치를 둘러싼 많은 의문을 풀어준다.

가령, 개별 현안에 대한 평가가 낮은데도 국정 전반의 지지율은 높은, 불일치 문제를 보자. 정당은 물론 지지자도 권력 획득과 유지를 더 중시한다. 정책은 부차적이다. 열성 지지자는 더욱 그렇다. 이들은 정책 때문에 집권자를 지지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책과 다른 국정을 편다는 이유로 지지를 철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차이는 없다.

다운스의 경험. 대학 2학년 때 학생회장에 출마, 10개 정책을 공약했다.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정책을 실현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나의 동기는 특정한 정책을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보다는 오로지 당선되고자 하는 욕심이었다. 이런 행동은 내가 나중에 발전시킨 이론과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당선된 이후 나는 10개 목표를 거의 완수했다. 그러나 대다수 학생들은 무관심했다.”

현실 정치가 본래 그런 것이라면, 한국 정치를 특별히 비관할 이유가 없다. 어떤 이들은 헌법을 개정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없애지 않는 한 미래가 없다고 한다. 3권 분립 체제에서 권력의 크기는 상대적이다. 국회가 저 모양이라면 대통령 권력은 계속 커 보이겠지만, 제 역할을 하면 작아보인다. 1987년 이후 지금까지 헌법은 그대로지만, 대통령 권력은 점차 분산되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당 총재를 겸하면서 공천권을 독점하고, 사법부·언론을 통제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양당제는 다당제로 변하고, 당내 민주화는 진척됐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찰리 채플린이 말했다. 한국 정치를 일상의 눈으로 보면, 변화를 느낄 수 없다. 하지만 30년 전체를 보면, 정치발전을 목격할 수 있다. 정치가, 우리가 매일 불평하는 것의 단순 반복이었다면 한국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낙관은 근거가 있다.

낙관주의자가 되기에는 현실이 어둡고 멀리 내다볼 여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 이 방법을 권한다. 신영복 선생이 제안한 층간 소음 해법이다. 위층 아이를 만날 때마다 사탕을 주고 친해지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소음에도 짜증이 덜 난다고 한다. 정치와 친해보자. 고대 이집트인도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했다. 낙관주의자가 될 수 없으면, 낙관적 비관주의자 혹은 비관적 낙관주의자라도 돼 보자. 그러면, 2019년 12월도 그럭저럭 넘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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