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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갯벌의 저주

새만금 방조제는 세계 최장을 자랑한다. 무려 33.9㎞에 이른다. 하지만 생각을 뒤집어보면 갯벌과 그 속의 생명을 죽였던 세계에서 가장 긴 ‘학살의 둑’이다. 또 서울시 면적의 3분의 2(여의도의 140배)만큼 국토를 넓혔다고 자랑한다. 이 또한 죽임의 현장이 이리도 넓다는 뜻이다. 그래서 새만금 방조제에 서면 그저 슬프다. 직선으로 뻗은 방조제가 요새처럼 견고해서 더욱 그렇다.

[김택근의 묵언]새만금 갯벌의 저주

물막이 공사가 한창일 때 새만금 갯벌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먼 남쪽나라에서 날아온 새들이 찰진 갯벌에 주둥이를 박고 날아갈 힘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새들에게 새만금 갯벌은 에너지 공급기지였다. 생명평화순례단원들은 갯벌과 그 속의 생명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들은 새들의 울음이 떨어지는 갯벌에서 바다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뭍과 물이 몸을 섞는 갯벌은 육지의 더러운 것들까지 깊숙이 들이마셔 또 다른 생명을 피워 올렸다. ‘인자한 자궁’이었다. 바다의 생각과 육지의 꿈이 서로를 안아주면 그 안의 온갖 생물들이 노래했다. 새만금 갯벌은 어림 7000년 동안 그렇게 벌떡거렸다. 인간들은 하늘의 별보다 많은 숨구멍을 막았다. 우리는 갯벌을 잃었고 바다는 말이 없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를 끝낸 지 10년이 되었다. 그동안 새만금사업은 어떻게 되었는가. 물을 막은 자들이 주장했던 대로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비상하고 있는가. ‘녹색성장과 청정생태환경의 글로벌 거점’으로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만, 주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할 때만 새만금은 솟아올랐다. 그리고 이내 가라앉았다. 설익었거나 잔뜩 부풀린 청사진과 투자의향서만 쌓여 있을 뿐이다. 이제 국민들은 질렸고 주민들은 지쳤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관심도 없다.

새만금 간척지 중 2만8300㏊는 산업단지로, 1만1800㏊는 호수로 조성할 예정이다. 산업단지를 조성하려면 갯벌을 덮어야 하고, 호수를 만들려면 소금물을 희석해야 한다. 넓디넓은 간척지를 돋우려면 엄청난 양의 흙이 필요하다. 몇 개의 산을 허물어도 모자랄 것이다. 또 맑은 호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거대한 강줄기를 끌어와야 한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이미 예견된 일들이다. 단군 이래 최대 간척사업이라 떠들었지만 실은 최대의 바보 공사였다. 새만금 간척지가 ‘인간의 땅’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할지 가늠하기도 힘들다. 이는 갯벌의 저주와 다름없다. 물막이 공사가 시민단체의 반발로 한때 중단된 적이 있었다. 그때 멈췄더라면……. 부질없지만 거의 20년 전에 쓴 글을 옮겨 본다.

“생명의 눈으로 갯벌을 바라보라. 지혜가 모자라고 경험이 없어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이러한 개발은 우리보다 뛰어난 후손에게 맡길 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우리 것이라는 생각은 죄악이다. 사라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생명을 지키는 일, 1조1000억원의 수장(水葬)이 오히려 아름다울 수 있다.”(2001년 4월4일자 경향신문 칼럼)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했다는 나라에서 요즘도 국책사업으로 산하를 짓이기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녹조에 덮여 헐떡이는 강물을 보면서도 동계올림픽을 치른다며 원시림을 밀어버렸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각박해진 것은 이런 야만의 삽질이 우리 심성까지 파헤쳤기 때문일 것이다. 내장이 튀어나온, 저 죽어가는 강들을 놔두고 무슨 진보와 보수를 논하고 민주주의를 외치는가.

당국이 새만금사업을 새롭게 추진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살펴보니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새만금 사업성과 내년부터 가시화’라는 기사 제목이 참으로 초라하다. 지난 10년 동안 새만금에서는 제대로 이룬 것이 없음을 시인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다를까. 역시 적당히 시늉만 내다가 말 것이라고 예단하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새만금을 계획대로 개발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야 한다. 또 그대로 방치하면 주민들과 여론의 매를 맞을 것이다. 그러하니 다시 적당히 시늉만 낼 것이다. 새만금 소금밭에는 재앙이 썩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다.

정직하게 말할 때가 되었다. 새만금사업은 무지했다고, 또 무모하고 무엄했다고 고백해야 한다. 자연에 대한 무지는 용서 받을 수 없다. 갯벌을 죽인 자들이 받아야 할 벌은 따로 있을 것이다. 새만금 방조제에서 바다만을 바라보지 마라. 돌아서서 간척지도 보라. 새만금 갯벌은 죽어서도 죽지 못하고 있다. 이는 보이는 것일 뿐이다. 보이지 않는 재앙은 언젠가 벼락처럼 닥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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