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장 용혜인
“노동이 상식인 시대는 끝났다”
11월 30일 ‘기본소득당’ 서울시당, 12월 1일 경기도당 창당대회가 잇따라 열렸다.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들은 “오늘 우리는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공화국 적극적 시민으로서 기본소득당 설립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딘다. 국가는 개별적 모든 시민에게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 정당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부터 이제 갓 태어난 순돌이(가명)까지 소득이나 노동능력 등 일체의 자격심사 없이 매달 60만원씩 주는 것이 목표다. 지금까지 복지개념과 전혀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준다. 기본소득당은 12월 중 부산·광주·인천 지역 창당대회를 갖고 내년 1월 19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할 예정이다. 용혜인 창당준비위원장(30)을 11월 29일 동교동 당사에서 만났다.
모든 국민에게 매달 60만원씩 지급
-경기 주요 지역에 창당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1000명 이상 당원이 있는 시·도지부 5개 이상을 확보해야 중앙당을 창당할 수 있는 법적 기준에 얼마나 충족했나. 당원은 어떤 사람들이고, 몇 명이나 확보했나.
“당원이 1000명이 넘었다. 우리당 당원은 10~20대가 전체의 80%, 30대까지 합하면 85%다. 당원 평균연령은 27세지만 온라인을 통해 입당하는 당원은 훨씬 젊어 평균 22세다. 청년이 많아 정당생활을 처음 해본 사람이 많다. 우리 당원은 대학생·취준생·알바생이나 그냥 백수도 많다.”
-기본소득이 소개된 것은 10여 년 된 것 같다. 과거 통합진보당에서 논의됐고 이후 녹색당·미래당은 현재 당론이고, 민중당·정의당도 주요 의제로 꼽고 있다. 농민기본소득은 지방자치 차원에서 도입된 곳도 있다. 진보정당은 물론 보수정당도 당의 주요 의제다. 그 ‘원 이슈’를 빼서 독자 정당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에서 기본소득 논의는 대략 10여 년 됐지만 본격화된 것은 2016년부터다. 이른바 ‘알파고 쇼크’(이세돌이 인공지능과 바둑대결에서 패한 사건)로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급격한 변화를 맞는 이 순간, 한국 사회가 어떠해야 하나를 고민했다. 기존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전면적으로 논의하지 못해 새로운 당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옛날에는 근로소득이 상식이었다면, 일자리 자체가 줄어드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사회계약, 그것이 기본소득이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최고 부자 삼성 이건희 회장에게도 조건없이 월 60만원씩 주면 엄청난 재원이 투입된다.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
“우선 토지배당이다. 우리 토지는 전체 면적의 56%를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데, 이중 50%를 상위 3%가 가지고 있다. 이 경제 자산의 불평등은 심각한 빈부격차의 원인이다. 그러나 우리 부동산 보유세 비율은 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분의 1에 불과하다. 최소 1.5%만 올려도 월 20만원을 줄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맞물려 탄소세를 도입해 1톤당 10만원을 부과하고, 시민세로 30만원을 확보하면 매월 40만원을 줄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현재 탄소세와 비슷한 환경개발부담금이나 환경분담금 등이 있다. 또 시민세와 현재 주민세와 뭐가 다른가. 세금을 내는 국민의 입장에서 국세든, 지방세든 차이가 없다. 당 정책실이나 정책자문교수단이 있나.
“현 주민세는 지방세이고, 시민세는 국세다. 중앙당에 정책팀장이 한 사람 있고, 아직 정책자문교수단이라는 공식 기구는 없다. 그때마다 기본소득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한다.”
조금 아쉬운 점이다. 어떤 정책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재원 마련이다. 그것이 공평하거나 정교하지 못하면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기본소득당은 원내 진출에 국고보조금까지 받으려는 공당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당은 아직 당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정강·정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용 준비위원장은 “초안을 계속 준비하고 있는데 쉽게 풀어 설명하려다 보니 시간이 걸린다”면서 “발기 취지문을 발전시켜 5대 핵심정책을 만들었고, 총선 전까지 5대 비전까지 완성하려 한다”고 말했다. 일단 기본소득당은 핵심 5대 정책으로 △모두에게 월 60만원 기본소득 △기본소득과 함께 주 30시간 노동 △디지털 공유부 배당과 데이터 주권 △탄소 배당을 시작으로 전면적 생태적 전환 △1인 가구 600만 시대 개인이 중심이 된 새로운 사회 등을 제시했다.
“3% 이상 정당 득표로 원내진출이 목표”
미숙한 창당작업이지만 부족한 것은 점차 보완할 수 있다. 미숙하다고 청년들의 정치의욕이나 활동이 폄훼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상적인 미래를 위해 몸을 던지는 청년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 용 준비위원장은 “내년 총선에 적게는 3곳, 많게는 10곳에 후보를 낼 계획”이라며 “3% 이상 정당 득표로 원내 진출이 목표”라고 말했다. 매우 야무진 목표다. 오래 정착한 녹색당이나, 심지어 국회 원내 의석을 가진 민중당도 정당득표율이 1%가 채 안 된다. 하지만 그 패기는 높이 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용 준비위원장은 될 수 있으면 지역에 많은 후보를 내야 당을 알릴 수 있지만, 선거기탁금 1500만원은 솔직히 부담이라고 고백했다. 특히 낸 기탁금은 유효투표 10% 이상 득표하지 못하면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다. 적잖은 후원금을 내는 사람도 있지만 당원 대부분이 학생·알바생·무직으로 많은 당비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용 준비위원장은 결혼 때 아낀 혼수자금을 지금 창당작업에 쏟아붓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모든 국민에게 돈을 주는 기본소득이 본격 논의된 것은 10여 년부터다. 테슬라모터스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인공지능으로 대폭 일자리가 줄어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기본소득이라고 예상해 주목을 끌었다. 한편으로 과다한 행정·관리비용이 들어가는 기존 선별적 복지를 단순화하는 제도로 기본소득이 꼽히기도 한다. 2016년 스위스가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제 도입을 위해 국민투표를 했지만 부결됐고, 핀란드가 중앙정부 차원에서 2017년 1월부터 시행했다. 현재 북유럽 국가 일부가 부분적으로 시험하고 있고, 독일에는 2017년 기본소득당이 출현해 총선에 나서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기본소득이 더 이상 진보정당의 전유물도 아니다. 민주당 소속 이재명 경기지사는 성남시장 시절 ‘청년배당’을 도입했으며, 현재 경기도는 만 24세가 되면 연 100만원을 청년수당으로 지급한다. 서울시도 소득 수준에 차등을 두지만 기본소득과 유사한 청년수당을 도입하고 있다. 농민에게 농민수당을 주는 자치단체는 이미 여러 곳이고, 경기도는 내년부터 기본소득과 유사한 전 농민에게 농민수당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용 준비위원장은 1990년 경기 부천에서 태어나 2009년 경희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그 역시 다른 대학생과 비슷하게 아르바이트도 하고 한때 행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는 “집안에서도 보수신문만 봤고, 정외과를 다녔지만 현실문제에는 둔감한 편으로 노동자들의 과격한 파업을 좋지 않게 여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2011년 고공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는 한진중공업의 여성 노동자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내가 알던 세상과 달랐다”고 말했다.
올 7월까지 노동당 대표 역임
2013년 그는 알바노조에 가입하고, 2014년 ‘가만히 있으라’라는 세월호 침묵행진을 제안하면서 본격 사회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 침묵행진으로 경찰에 연행됐고, 검찰은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이 사건은 고법에서 벌금 200만원 선고를 받고 현재 대법원 계류 중이다. 그는 2014년 기본소득과 최저시급 1만원, 탈핵·반전 평화를 주장하는 청년정치공동체 ‘청년좌파’에 가입해 대표가 됐다. 그는 청년좌파에 대해 “기존 정치로 묶어낼 수 없는 청년들의 새로운 정치세대 구성”이라고 말했다. 청년좌파는 2015년 11월 민주노총이 주도하고 민중세력이 가세한 민중총궐기에 가담해 촛불혁명의 기폭제를 만들었다. 그 역시 백남기 농민 시신 사수대로 촛불혁명의 최일선에서 활동했다. 그는 2015년 제도권 정당에 들어가 노동당 전국위원, 2016년 청년학생위원장으로 선출됐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노동당 비례대표로 출마했고, 올 1월 노동당 공동대표에 선출돼 최근 7월까지 당 대표를 지냈다.
-기존 진보정당의 주요 의제인 기본소득 중 한 부문만 떼어 새로운 당을 창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당 대표까지 지냈는데 왜 탈당했나.
“지금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에서 큰 차이를 느꼈다. 7월 당대회에서 사회 변화에 대해 노동당이 어떻게 부응하느냐는 논의가 있었다. 나는 당명을 기본소득당으로 바꾸자고 주장했고, 그 안이 부결됐다. 고민 끝에 탈당해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기로 했다. 한국 사회에서 당적을 바꾸는 것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아 사실 부담스러웠다. 노동당 당원에게 죄송한 마음이 있다.”
-창당한 지 오래된 녹색당도 정당득표율이 1%가 안 된다. 기본소득 의제는 미래당·노동당·정의당·민중당과 중첩되고, 결국 진보·이념정당의 표가 분산되지 않을까.
“나는 기존 진보정당과 우리는 지지기반이 다르다고 본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기존 임금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복지국가시스템과 다르다. 노동에 기반을 둔 4대 보험이나 선별적 복지는 기존 진보나 보수정당 모두 비슷하다. 우리는 노동에 기반을 둔 복지국가가 아닌 새로운 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당 정책과 인터뷰를 보면 일자리와 기본소득 등 주로 경제·복지정책만 있다. 다른 의제, 이를테면 정치개혁이나 분단문제에 대한 정책은 무엇인가.
“우리 당원들은 조직된 시민이 아니라 개별화된 청년이다. 다른 정책에 대해선 당내에서 충분히 숙의해야 한다. 원론적으로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체제 구축을 분명히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통일 로드맵과 같은 문제는 내부적으로 충분히 논의해봐야 한다.”
용 준비위원장은 2017년 결혼했다. 남편도 기본소득당 일을 같이 하고 있다. 기자가 “귀하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그는 “모든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내가 바라는 삶을 만들어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4차 산업혁명은 소득과 일자리 연결을 끊고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소득 원천을 마련하는 기회”라고 말했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나오는 세계다. 그러나 충분히 성취 가능한 세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