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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완벽한 커플은 없어…우선 현재의 문제를 서로 인정하세요”

  • 김진세 | 정신과 전문의

처음엔 사랑했던 그 사람, 큰 갈등 없지만 지금은 저를 가장 힘들게 해요

당차고 긍정적인 성격의 안나는 결혼 생활에서도 고유의 캐릭터를 잘 살릴 수 있을까? 전편보다 더욱 강력해진 여성 캐릭터의 ‘자기주도력’을 보여주는 <겨울왕국2>가 개봉 3주 만에 1000만 관객을 넘어서며 흥행 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당차고 긍정적인 성격의 안나는 결혼 생활에서도 고유의 캐릭터를 잘 살릴 수 있을까? 전편보다 더욱 강력해진 여성 캐릭터의 ‘자기주도력’을 보여주는 <겨울왕국2>가 개봉 3주 만에 1000만 관객을 넘어서며 흥행 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금주의 내담자(15) 영화 ‘겨울왕국’의 안나

*<겨울왕국2>의 스포일러성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안나 = 결혼이란 게 이런 건가요? 저를 가장 기쁘게 했던 사람이 저를 가장 힘들게 하네요. 그런데 문제는 딱히 아주 나쁜 점을 꼬집기는 어렵다는 점이에요. 다른 부부처럼 작은 문제로 다투기는 해도, 감당 못할 만큼은 아니거든요. 흔한 시댁 문제나 경제적인 문제도 없어요. 그냥 서로 안 맞는 거 같아요. 아시겠지만, 이건 정말 예민하고 미묘한 문제예요. 무엇보다 남편은 제가 이렇게 복잡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니, 더 답답한 노릇이네요.

김 박사 = 부부간에 큰 갈등이 없지만, 서로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 같네요. 남편은 어떤 분인가요?

안나 = 제가 사랑했던 사람이죠. 비록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혼자가 되었지만, 반듯하게 잘 자라서 동료들과 잘 어울리고 자연과 동물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박사님도 잘 아시겠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잖아요. 물론 덜렁대기는 하지만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강직하고 정의로워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죠. 외형적으로도 남성미가 넘치고 강인해요. 저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걸 사람인걸요.

김 박사 = 사랑했던, 과거형을 쓰시네요?

안나 = 처음에는 너무 사랑했지요. 지금도 그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아요. 제가 아주 힘들 때 만났어요. 언니와 문제가 좀 있어서,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었는데… 언제나 제 편이었던 그가 없었다면 그 고통을 극복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근데 문제는 그 사람이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수동적이라는 데에 있어요. 결정을 내리질 못해요. 집안 대소사를 비롯해서 모든 문제를 제가 판단해야 하니까요. 제가 워낙 능동적이고 결단도 빠른 성격이긴 하지만, 때로는 남편에게 기대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김 박사 = 결혼 전에는 그런 분인 줄 모르셨나요?

안나 = 이제 와 생각해보니, 결혼 전에도 의존적인 면이 있었네요. 항상 저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지요. 제가 먼 길을 떠나도 찾아 나서기보다는 돌아오길 기다렸어요. 그 당시에는 눈물 나도록 고마웠는데 말이죠. 참, 프러포즈를 받기까지도 한참 걸렸어요. 그때는 둔한 면이 있어서 타이밍을 못 잡는 줄 알았는데, 지나치게 수동적인 사람이라 그랬을 수 있었겠어요.

김 박사 = 그러니까 남편은 착하고 강인하고 순정적이어서 좋았으나,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면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상황이라고 이해하면 되나요?

안나 = 네, 맞아요.

김 박사 = 당연한 것을 묻는 것 같지만, 왜 착하고 강인하지만 의존적인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나요?

안나 = (당황해하며)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닌가요? 제 생각에는요, 제 아버지를 닮아서 아닐까요? 아버지는 정말 강인한 분이셨거든요. 여러 가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집안과 나라를 잘 지키고 이끌어 오셨어요. 또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셨다고요. 사실 엄마는 우리나라 분이 아니셨어요. 다문화가정인 셈이지요. 가장 이상적인 사랑을 보여주셨던 부모님은 저희 자매가 아주 어릴 때 돌아가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남편에게 빠진 이유 중에는 우리 둘 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었다는 공통점이 있을 수 있겠네요.

김 박사 = 성장하면서 겪은 경험이 비슷할 테니까요. 힘든 배경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더 끌리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안나씨는 남편에게서 아버지의 그림자를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많이들 그렇게 사랑에 빠지지요. 마음속에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아무래도 이성 부모에게서 찾기 쉬워요. 물론 부모·자식 간 사이가 나쁘면 전혀 반대되는 배우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이 또한 부모와의 관계가 영향을 주는 것은 같은 맥락이지요. 그런데 안나씨는 왜 수동적인 남자와 결혼을 했을까요? 그 시절 다문화가정이었으면 여러 가지 편견에 휩싸이기 쉬웠을 거예요. 꿋꿋하게 결혼을 강행한 아버지는 아주 적극적인 분이었을 거 같은데요?

제 ‘콩깍지’ 좀 설명해주실래요?

“남편에게서 아버지를 찾았군요 떠나지 못할 사람을 원했던거죠”

안나 = 아, 그러네요. 남편의 수동적인 면은 아버지와는 정반대네요. 그때는 제 눈에 콩깍지가 씌었나봅니다.

김 박사 =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은 심리학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어요. 남들이 보기에, 심지어 스스로가 생각해도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인데도 사랑에 빠진 경우 흔히 콩깍지가 씌었다고 비유하죠. 이는 무의식의 커다란 힘이 선택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입니다. 이유 없이 확 빠져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아주 큰 이유가 있습니다.

안나 = 과연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김 박사 = 어릴 적 이야기를 좀 더 해봅시다. 인간의 행동 패턴은 어릴 적 경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아요. 혹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기억이 나세요? 많이 힘들었죠?

안나 =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해져요. 언니에게 생긴 일 때문에 먼 길을 나섰다가 참변을 당하셨어요. 너무 경황이 없었죠. 게다가 저는 언니와도 떨어져 지내야 했어요. 언니와 저는 정말 특별한 사이였거든요. 언니는 저의 유일한 놀이친구이자, 우상이었어요. 그런 언니와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게 엄청난 상처였죠. 우릴 갈라놓은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들 잘못이 아닌데도 말이에요. 제가 철이 없었죠.

김 박사 = 자책할 필요 없어요. 자연스러운 반응이에요. 어릴 적 부모와 헤어지면 자녀에게는 상실의 상처가 남아요. 작고하시든, 이혼하시든 말이에요. 오래 떨어져 지내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아프니까 원망하게 되지요. 그런 상실감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힘든데, 어떻게 감정적으로 잘 처리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 미운 감정이 드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안나 = 그런데 부모님의 죽음과 미움이라는 감정, 이것이 어떻게 제 콩깍지와 연관이 있다는 건가요?

김 박사 = 남편을 사랑했던 이유가 아버지의 모습 때문이라면, 수동적인 남자를 만난 것도 같은 원인적 배경을 갖고 있지 않을까요? 상대가 수동적이면 내 마음대로 하기 쉽잖아요.

안나 = 그렇죠, 내 곁에 붙들어 맬 수 있겠죠. 박사님, 저는 아빠처럼 강인하고 나를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을 원하는 동시에 결코 나를 떠나지 못할 사람을 찾았던 거네요. 그래서 콩깍지가 씌었던 거고요.

김 박사 = 모든 배우자 선택에는 심리적 이유가 존재합니다. 특히나 처음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면, 더더욱 신경증적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다고 서로에게 의존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사랑에 있어서 조금은 의존적인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너무 많이, 지나치게 의지하는 거죠.

안나 = 의존하는 것에 지나치게 큰 가치를 두지 말라는 말씀인가요?

의존적인 남편, ‘손절’ 할까요

“배우자 선택은 중요한 문제예요 이별에 대한 불안 두려워마세요”

김 박사 = 그렇습니다. 배우자 선택은 인생에 매우 중요한 문제예요. 그래서 선택에 신중을 기하고 이성적이어야 하죠. 사랑은 기본이고, 가장으로서 책임감과 능력, 건강,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가치관 등을 두루 봐야겠죠. 다시 말해서, 종합적인 측면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부모님 문제로 인해 수동적인 사람에게 더 호감을 느꼈다는 것은 이성적인 측면보다는 감정적인 측면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거겠죠. 그런 장점에만 점수를 몰아주고 나면, 다른 중요한 가치는 평가절하되고 말아요.

안나 = 수학만 100점이고 다른 과목 점수가 안 좋으면, 결국 성적이 안 좋은 것과도 같은 거네요.

김 박사 = 좋은 비유네요. 국어나 물리도 성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죠. 성적은 그렇다고 치지만, 만약 우리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라면? 섣불리 콩깍지에 넘어가서는 안 되겠지요.

안나 = 머리로는 이제 이해가 되네요.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 사정을 잘 아는 친구는 ‘손절’하라고 하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 애초 결단이 쉬웠으면 상담실을 찾지도 않았을 거예요. 이별을 생각하면 마음이 뻥 뚫린 것처럼 공허하고 아파요. 하지만 박사님, 저 아시잖아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매사 긍정적인 아렌델왕의 자랑스러운 둘째 딸! 저를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제 결정이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 우려가 생깁니다.

김 박사 = 누구에게나 헤어짐은 힘들어요. 더구나 안나씨는 부모님과의 이별로 분리불안이 남보다 강할 수 있으니, 더욱 그럴 수 있어요. ‘혹시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엄습할 거예요. 하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한 선택이니까요. 비록 잘못한 선택이라도 나의 선택이라면 수습할 길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남의 선택을 좇는다면, 더욱 후회가 쌓이겠지요.

안나 = 맞아요, 제 결혼이고, 제 인생이잖아요. 두려움에 뒷걸음치지 말고 나아가야죠. ‘The next right thing(더 넥스트 라이트 싱)’이라는 노래도 있잖아요!

김 박사 = 안나씨, 정말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분이셨군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처럼 모든 커플이 갖고 있는 문제는 다 다릅니다. 해법도 다를 수밖에요. 하지만 원칙은 있어요. 첫 번째는 현재의 문제를 서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정하면 답이 보입니다. 안나씨의 남편이 문제를 직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선일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과 배우자에게 문제가 없기를 바라고, 그렇게 믿기까지 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아예 부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지만 세상에 문제없는 커플이 어디 있겠어요.

저흰 정말 괜찮아질 수 있을까요

“계속 함께 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남편도 문제를 직시하게 해야죠”

안나 = 그러고 나면요. 어떻게 풀어나가죠? 그 사람 성격이 바뀔 것도 아닌데요.

김 박사 = 제가 하루에도 수십 명씩 변화하고 싶어 하는 분들을 돕습니다. 성공하는 분들은 정말이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습니다. 그런데 변화의 의지도 없는 사람이 변하겠어요?

안나 = 제가 변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김 박사 = 부부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안나씨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변해야 하죠. 인간관계는 톱니바퀴와 같아서 상대가 완전히 일탈하지만 않는다면 꽉 잡고 돌아갈 수 있어요.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예요. 남편을 상담에 참여시켜야 해요. 문제가 있음을 서로 인정하고 계속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설득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이왕 같이 살려면 행복하게 살아야겠죠. 종종 불행히도 두 사람이 헤어져야 더 잘 살 수 있다는 결론을 얻기도 합니다만, 낙담할 이유는 없어요. 결혼도 인생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결혼과 인생을 동일시하던 시대는 더 이상 아니잖아요.

안나 = 명심할게요. 제 선택이었으니 제가 잘 마무리해야죠. 일단은 크리스토프와 잘 지내보려 노력할 거예요.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제 스스로를 믿고 let it go 하겠어요.

코스튬 드레스 분야에서의 인기는 언니 엘사에게 밀렸지만, 사실 크레디트에는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겨울왕국>의 주인공이다. 매사 긍정적이며 쾌활해서 ‘성격 좋은 둘째 딸’ 소리를 듣는 아렌델 왕국의 최고권력자. 하지만 결혼 생활에 있어서는 내내 약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적극적이고 책임감 강한 본인의 캐릭터에 충실하다보니, 인생에 있어 큰 ‘결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아 남모를 고민이 쌓여만 간다.

▶필자 김진세
[김진세 박사의 K상담실]“세상에 완벽한 커플은 없어…우선 현재의 문제를 서로 인정하세요”

정신과 전문의 김진세 박사는 슬럼프 극복을 위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길 위의 카운슬러’로 나섰던 천생 상담가다. 고려제일정신건강의학과 원장으로 20년 이상 진료실에서 상담을 하고, 정신 건강과 관련된 수백편의 글을 써왔다. 저서로 <심리학 초콜릿> <행복을 인터뷰하다> <태도의 힘>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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