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판문점 회동 불발…비건 ‘빈손’으로 일본 출국
북, 내주 당 전원회의서 북·미 협상 중단 선언 가능성
트럼프 “무언가 진행 중이면 실망…하지만 지켜볼 것”
방한 일정 마친 비건 방한 일정을 마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오른쪽)가 17일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배웅을 받으며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측에 회동을 제안했던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박3일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17일 일본으로 출국했다. 북한은 이날까지 비건 대표의 만남 제안에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북·미 회동이 불발되면서 북한은 다음주 초 당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길’의 방향을 제시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통해 북·미 협상 중단 선언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미국이 연말 시한과 관계없이 대화 여지를 남겨둔 만큼 향후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비건 대표는 이날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 켄트 해슈테트 스웨덴 외교부 한반도특사와 회동한 뒤 연세대에서 비공개 강연을 했다. 이후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함께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차량에서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했다. 두 사람은 중국과 러시아가 16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 등에 대해 평가하고 향후 대응을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비건 대표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여기에 있고, 당신들은 우리를 어떻게 접촉할지를 안다”며 북한에 회동을 공개 제안했다. 하지만 비건 대표는 출국 전까지 북측으로부터 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북한이 미국의 제안에 전격 호응할 경우 국면 전환의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비건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철회하기 전에는 비핵화 협상은 꿈도 꾸지 말라”(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장)며 태도 변화를 촉구해왔다. 비건 대표는 “타당성 있는 단계와 유연한 조치를 통해 균형 잡힌 합의에 이를 준비가 돼 있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제안은 내놓지 않았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비건 대표가 단계적 조건을 수용할 듯한 이야기를 했지만, ‘하노이 트라우마’가 있는 북한 입장에선 확실한 언질을 받지 않고는 회담에 나가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국무위원장,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앞줄 가운데)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8주기를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조선중앙TV가 17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지목하는 대조선 적대시정책 가운데 북·미가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방안으로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이 꼽힌다. 동맹관계를 비용으로 인식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스타일로 볼 때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킬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비건 대표가 언급한 ‘타당성 있는 단계와 유연한 조치’가 이를 의미하고, 북·미 간 ‘물밑 접촉’이 이뤄진다면 극적 반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정부 소식통은 “미국이 비핵화 협상에 관한 데드라인은 없다고 밝혔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대화 제안은 앞으로도 유효한 것”이라며 “북한이 대화 제의에 호응해온다면 연말이든 연초든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북한 상황에 대한 취재진 질문에 “무언가 진행 중이라면 나는 실망할 것”이라며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지켜보자. 우리는 북한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강경행보에 나설 경우 모종의 대응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면서도, 미국의 대화 제의에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를 주목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도 “그들(북한)의 수사(레토릭)는 우려스럽다. 그들이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것(시험)을 할 것 같다”면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정치적 합의에 대해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앉아서 논의해야 한다”며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이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8주기를 맞아 김정은 위원장은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노광철 인민무력상, 김수길 총정치국장 등 군 지휘부도 대거 참석했다. 북·미 대화와 관련한 별도 메시지는 내놓지 않았다. 통일부는 “북·미 협상 전망은 불투명하며, 북한이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강화 등 ‘새로운 길’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