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고민 없는 ‘2045 비전’

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지난 12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위원장 정해구)는 ‘혁신적 포용 국가 미래 비전 2045’를 발표하였다. 광복 100주년이 되는 시점에서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어 놓을 것인가에 대한 장기 비전으로서 경제·정치·사회에 걸친 포괄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내용이었다. 이를 보고 내가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것은,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이른바 ‘녹색체제 전환’에 대한 계획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2년 남짓 남은 정권 후반기의 정책 비전도 아니다. 자그마치 사반세기에 해당하는 25년의 긴 시간 지평에서 사회의 앞날을 이야기하면서 지금 지구 생태계 전체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는 이 문제를 이렇게 다룬다는 것은 실로 믿기 힘든 일이었다.

[세상읽기]기후위기 고민 없는 ‘2045 비전’

먼저 이 연구 발표의 논리를 구성하는 여러 예측 모델을 어느 만큼이나 믿을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다. 인간 세상도, 지구 생태계도 무수한 시스템들이 엮여서 구성되는 복잡계이다. 여기에서 기후위기처럼 모든 시스템을 포괄하는 거대한 환경의 변화가 벌어질 경우 영향을 받지 않을 시스템은 있기 힘들며, 또 각 시스템들의 변화는 그와 연관된 다른 시스템들의 변화를 초래하면서 전방위적인 ‘되먹임’ 고리를 형성한다. 따라서 기후위기가 가져올 변화가 명백한 상황에서 25년이라는 시간 지평을 놓게 되면 어떤 예측 모델에든 따라오게 되어 있는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이라는 전제가 성립할 수 없게 된다. 기후위기와 이에 따라 자의든 타의든 취할 수밖에 없는 각종 조치와 변화가 사회·정치·경제 전반에 걸쳐 가져올 충격과 비용을 감안하지 않는 예측이란 그 의미가 격감될 수밖에 없다.

보다 큰 문제는 한국 사회 전체가 기후위기에 대해 얼마나 심각한 불감증에 걸려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해프닝이라는 점이다. 이미 한국은 탄소 배출량은 아주 높으면서도 배출 감소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고 방기하는 국가로 악명을 날리고 있다. 그런데 향후 25년간의 목표로 이러한 상태를 전환하여 녹색 전환의 선진국으로 나서겠다는 비전을 제시해도 부족할 판에 ‘1인당 국민소득을 6만5000달러’로 올리겠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전면에 내걸고 있다. 지금 기후위기의 국면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 하나는 과연 기후위기를 초래하지 않는 경제성장이라는 것 자체가 가능한가의 문제이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주장하는 쪽이든, ‘성장 축소’를 주장하는 쪽이든 무작정 경제성장을 추구할 경우 이것이 탄소배출과 기후위기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으며, 경제성장이라는 것의 질과 양 모두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성장 맹신에 빠져 살아온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이야기가 너무나 낯설고 황당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지 않는 한 이 ‘1인당 6만5000달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향후 25년간 지금 이상으로 경제성장의 엔진을 가동시키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대한민국은 이미 전 세계 10위권에 드는 경제대국이다. 우리가 인류 아니 지구 생태계에 대해 갖는 책임은 이렇게 내팽개쳐도 되는 것인가?

기후위기에 맞선 녹색전환이란 결코 재생에너지로의 대체와 같은 기능적인 과제들로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경제와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은 물론 정치와 문화, 나아가 인류 전체의 의식의 변화까지 포함하는 실로 총체적인 변화로서, ‘산업문명의 근본적 재구성’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거대한 전환’이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 진보 정치인들이 들고나온 이른바 ‘그린 뉴딜’ 논의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식량을 조달하는 방식, 마을 공동체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방식, 금융 시스템을 규제하는 방식 등등 그 범위는 무한히 넓고 다루어야 할 쟁점은 노아가 방주에 실었던 동식물의 종류보다 숫자가 많다.

대한민국을 지구의 생명권을 소중히 하면서 인간 사회에 자유와 평등이 극대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조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25년간 우리가 진력해야 할 일이며, 광복 100주년인 2045년에 우리가 세워야 할 나라가 바로 그러한 나라이다.

이번에 발표된 ‘2045비전’에는 물론 높게 평가해야 할 중요한 내용이 많이 있다. 특히 복지를 강화하여 배제되는 이가 없는 포용적인 산업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강조점은 우리가 반드시 경청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지금 지구에 덮쳐 오는 기후위기에 대한 고려를 최우선으로 가장 근본에 놓고 그 비전의 틀을 전면적으로 다시 마련하지 않는 한 그 모든 혜안과 건설적인 제안들은 안타깝게도 한순간에 무색해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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