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아프리카 구가들이 사용해온 CFA프랑 화폐. AFP연합뉴스
옛 프랑스 식민지 서아프리카 8개국이 식민 통치의 상징인 화폐 ‘세파(CFA)프랑’의 사용을 중단하고 내년부터 지역 내 공용화폐인 ‘에코(Eco)’를 도입한다. 세파프랑은 그동안 서아프리카 식민 역사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다. 세파프랑의 사용중단은 75년 전 뿌려진 식민 통치 잔재를 거둬내고 경제적 독립을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아프리카타임스 등 현지 언론을 보면 알라산 와타라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경제중심 도시 아비장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화폐개혁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기니바사우, 니제르, 말리, 베냉, 부르키나파소,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토고 등 8개국은 내년부터 세파프랑 대신 에코를 사용한다. 또 보유 외환의 절반을 프랑스에 보관해야 하는 의무 조항도 종결된다.
와타라 대통령은 “서아프리카에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의 식민주의는 중대한 과실이었으며 과거로부터의 페이지를 넘기자. 아프리카 청년 세대가 화폐개혁을 식민주의 탈피의 위업으로 여길 것”이라고 했다.
세파프랑은 1945년 프랑스가 이 일대 통치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만든 아프리카 금융공동체 ‘프랑존’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도 서·중앙아프리카 14개국에서 통용되고 있다. 2002년 유로화가 도입된 이후로는 ‘1유로=655세파프랑’ 고정환율을 유지, 프랑스를 통해 화폐 안정성을 보증 받았다. 하지만 개별 국가들이 환율정책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서아프리카 국가들은 역내 무역 및 투자 활성화를 위해 자체 통화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사실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조폐 능력이 제한적이라는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다. 세파프랑은 프랑스 남부 도시인 샤말리에르의 프랑스은행 시설에서 주조되고 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이들 국가의 외환을 예치하면서 매년 0.75%의 이자를 지급하는 반면 별다른 수익은 내지 못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반영됐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서아프리카 8개국의 에코 도입은 이들 국가들을 포함해 나이지리아, 가나 등 15개국이 속해 있는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에코와스)의 화폐 통합 사전 단계로 풀이된다. 에코와스는 2020년 에코와 같은 역내 공용화폐 도입을 추진해왔다. 다만 국내총생산, 물가상승률 등 개별 국가들별로 경제 상황이 차이가 많이 나는 만큼 15개국의 화폐 통합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프랑스가 물러나는 대신 나이지리아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에코와스 지역 경제 생산량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나이지리아의 일방 지배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사적인 측면에서 이 지역 내 프랑스의 영향력도 여전하다. 프랑스는 2013년부터 4500명의 병력을 가동해 이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이슬람 무장단체들과의 전쟁인 ‘바르칸 작전’을 벌이고 있다. 역내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의식한 듯 마크롱 대통령은 회견에서 프랑스군이 전날 밤 서부 말리에서 33명의 무장단체 조직원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