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일(현지시간) 르완다 서부 키보고라 인근 부셰켈리 마을에 살고 있는 베스티네 우위제이마나(오른쪽)에게 액상 모르핀을 제공하기 위해 방문한 간호사 마들렌 무칸타가라가 우위제이마나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있다. 키보고라|AP연합뉴스
르완다 서부 키보고라 인근 부셰켈리 마을에 살고 있는 스물 두 살의 베스티네 우위제이마나는 척추 질환으로 15년 동안 누워 지냈다. 흙바닥에 놓인 작은 침대에 몸을 의지한 채, 간신히 몸을 뒤집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무엇보다 때때로 찾아오는 극도의 통증은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1년 전쯤이었을까. 그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간호사 마들렌 무칸타가라(56)가 들고오는 진통제 액상 모르핀이었다. 우위제이마나는 “이제 모든 게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무칸타가라가 돌보는 환자 70명 중에는 암환자도 있고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환자도 있다. 그들이 겪는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것이 무칸타가라의 임무다. 르완다는 2014년 액상 모르핀을 개발해 지역 단위에서 무료로 보급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2020년 통증 환자의 모르핀 접근권을 100%로 높이는 게 목표다.
미국과 같은 부유한 나라들이 오피오이드(아편계 마약성 진통제) 남용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반면,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에선 많은 환자들이 여전히 진통제를 얻지 못해 고통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르완다의 생산·공급 실험이 ‘아프리카의 새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고 AP통신이 지난 26일(현지시간) 전했다.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B)에 따르면 오피오이드의 90%는 미국, 캐나다, 서유럽, 호주 등 부자 나라들에서 소비되고 있다. 미 약물 남용 연구소는 만성 통증으로 오피오이드를 처방받은 환자의 최대 29%는 오용 처방, 최대 12%는 중독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한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진통제인 모르핀의 제조·판매에 소극적이다. ‘가난한 시한부 환자’들은 말그대로 ‘시한부 고객’일 뿐이기 때문이다. 2013년 ‘세계 호스피스 완화 케어 연합’은 빈민국에 모르핀을 공급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100여개 제약회사들을 초대했지만, 5개 회사만 참여했다. 이중 미국 회사는 1곳도 없었다. 약물 통제·관리 능력, 수입 협상력이 부족한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상업용 모르핀을 구매하는 비용은 부자 나라들에 비해 평균 6배 가량 비싸다. 일부 국가에선 모르핀 30일치를 처방받으려면 최저임금 기준으로 40일을 일해야 한다.
르완다에서 생산·공급되는 액상 모르핀. |AP연합뉴스
사실 우간다가 더 빨랐다. 1993년부터 완화 케어 센터를 만들고 액상 모르핀을 만드는 등 선제적으로 나섰지만 외부 지원에 의존하다보니 크게 성공하진 못했다. 르완다는 2014년부터 모르핀 생산·유통을 정부 통제하에 두고 지역 병원·약국으로 1차 공급한 후 간호사·사회복지사가 직접 환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비용은 정부가 부담한다. 르완다도 아직 ‘실험 중’이긴 하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이 참고할 만하다.
케냐, 말라위도 최근 자체 모르핀을 개발했다. 다만 분말 모르핀을 물에 희석한 형태의 액상 모르핀 역시 남용·중독의 위험이 있다.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선 통증을 ‘신의 형벌’이라고 여기는 관습도 남아 있어 진통제 자체를 꺼려한다.
지난 10월 의학저널 <란셋>에 발표된 연구 보고서는 부유한 국가와 빈곤국 사이의 ‘진통제 접근 불평등’이 “넓고 깊은 구렁에 빠졌다”고 했다. 미국이 오피오이드 남용으로 고민할 때, 아이티에선 진통제를 필요로 하는 환자의 0.2%만 약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세계적으로 시한부 환자들에게 모르핀을 공급하는 비용은 연간 1억4500만달러(약 1676억원)에 불과한데도 제약회사들이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약회사들은 에이즈, 신종플루, 에볼라 등의 신약을 개발할 때마다 아프리카에서 임상실험을 해왔음에도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르완다 완화 케어 국가 코디네이터인 다이앤 무카사하하는 AP통신에 “고통은 고문이다. (통증이 심하면) 미국인처럼 약을 먹어야 한다. 인간의 몸은 모두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