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평당 1억원’ 초래한 죄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평당 1억원’ 초래한 죄

시중은행 재테크팀장의 개인적인 재테크 요령을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대부분 40대 초반이었던 그들은 또래에 비해 자산이 많은 편이었다. 공통적으로 자산의 상당 부분은 집이었다. 사고팔기를 반복하며 많게는 세 채까지 보유한 이도 있었다. 한국인에게 집은 사는 곳이라기보다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더 크다. 하지만 그들은 “개인의 구체적인 주테크는 소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편집국에서]‘평당 1억원’ 초래한 죄

서울 강남 아파트는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다. 네이버 부동산 통계를 보면, 2012년 말 7억2000만원이었던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전용면적 76.79㎡)는 지난달 20억원 안팎으로 올랐다. 7년 새 178% 뛰었는데, 지난해에만 5억원 폭등해 “미쳤다”는 소리가 나왔다. 누군가는 노후준비 잘했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을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월평균 가구 근로소득은 2012년(393만8267원)에 비해 25% 늘어난 493만6859원이었다. 7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월급을 모아도 4억원이 채 안된다. 일하지 않고도 아파트를 보유한 데 따른 차익은 근로소득의 세 배가 넘는 12억8000만원이다. 명백한 불로소득이다. 재테크 팀장들이 집으로 자산을 늘린 사실을 감추고 싶어한 것은 ‘주테크’가 떳떳하지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불로소득을 노리고 뛰어드는 주테크 광풍에는 고위공직자도 예외가 없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 1급 이상 전·현직 고위공직자 65명의 집값을 조사했더니 2년10개월 만에 평균 3억2000만원 올랐다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불로소득주도 성장만 나타나고 있다”는 비아냥을 들을 만하다. 뒤늦게 주테크에 편승하려다 물의를 빚자 하차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사례도 있다. 그는 집값 차익을 기부하겠다고 했는데, 올해 4월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한다. 출마하지 않고 불로소득만 기부하는 건 불가능했을까.

부동산정책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로 지명됐던 고위공직자마저 주택 세 채를 보유한 사실이 드러나 낙마했다. 집으로 재산을 불릴 꾀만 짜낸 공직자가 수두룩하다. 오히려 정보나 권력을 자신의 주테크에 동원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경향신문의 지난해 창간기획 시리즈 ‘임대주택의 배신’ 취재과정에서 주택 관련 통계는 고사하고, 개념조차 정리하지 못한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 정책 당국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니 제대로 된 분석이 나올 리 없었다. 대책도 땜질처방에 그쳤다.

그 결과는 ‘자고 나면 1억원 껑충’ ‘평당 1억원 시대’를 초래했다. 극소수 부자의 다른 세상 이야기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보통사람을 허탈감과 상대적 박탈감 속에 밀어넣었다. 집값과 관련해 정부를 믿을 수 없게 됐다. 집을 투기대상으로 여기고 집값을 끌어올린 이들의 책임이 크지만, 이를 방치하고 편승까지 한 정책 담당자들의 죄 역시 중하다.

새해가 밝았으니 일단 그들의 죄를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하자. 지난 연말에 대대적인 사면이 이뤄졌으니 부동산 정책 책임자들도 사면하자는 것이다. 역대 최고 강도라고 평가받은 ‘12·16 부동산대책’도 시행 중이다. 이제부터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눈 부릅뜨고 지켜보자. 청와대 고위공직자 중 다주택자는 한 채만 남기고 다 팔 것을 권유받았다. 공직사회 전반으로 확산할 것을 기대하고 있는데, 두고 볼 일이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부동산 전문가 사이에서도 올해 집값 상승과 하락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12·16 대책 약효가 몇 개월 후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돼 부동자금이 집으로 흘러들 여지도 크다. 게다가 투기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정부 대책을 뛰어넘는 꼼수를 찾아내 집값을 끌어올려왔다. 이는 그동안 집값 상승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정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집값 상승을 막아야 한다. “필요시 언제든지 추가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공시가격을 현실화하고, 보유세율을 추가로 올리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소득층 불로소득에는 과세를 강화하는 게 경제정의에 부합한다. 그래도 집값을 잡지 못한다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안한 ‘부동산 국민공유제’도 고려해보자. 보유세 강화와 임대료 규제 등 불로소득을 환수해 토지와 집을 싼값에 공급하고,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반환점을 돌아 4년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의 집값 잡기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동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내년 이후는 강력하게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를 믿은 서민에게 집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집값 잡지 못하고 변죽만 울린 정부로 남을 텐가.

  • AD
  • AD
  • AD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