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씨, 사람들의 쉼 없는 욕망에 화가 나셨군요”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45년부터 2년간 월든 호숫가에서 보낸 기록을 담은 <월든>은 대자연에 대한 예찬과 문명사회 비판적 성찰로 회자되며 수많은 이들의 ‘인생의 책’으로 사랑받고 있다. 사진은 2017년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 <월든>(Walden: Life in The Woods)의 한 장면.
하버드대 재학 시절부터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사색을 즐겨 했던 소로는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위해 숲으로 향한다. 월든 호숫가 숲속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새벽 5시에 일어나 정오까지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글을 쓰고 산책을 하는 시간을 보냈다. 수행자의 삶을 마치고 2년 만에 세상에 나온 그를 먼저 맞은 건 제어 불가능한 소음과 넘치는 사람들의 욕망이었다.
소로 = 잠을 못 자서 왔어요. 숲에서 도시로 이사한 뒤로는 도통 잠이 안 오네요. 그래서 그런지 신경질도 너무 많이 나고요. 수면제라도 먹어야 하나요?
김 박사 = 잠은 가장 강력한 휴식의 수단인데, 적절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니 짜증이 나시는 게 당연해요. 그뿐만 아니라 감정, 사고, 행동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요. 인지기능도 떨어져서 만성적인 불면증은 치매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수면제 남용도 치매를 일으킬 수 있어요. 그러니 잠을 못 잔다고 수면제를 남용하시면 안돼요. 원인을 알고 치료를 하셔야지요. 그런데 숲에서 사셨다고요?
소로 = 네. 2년2개월 정도 있었네요. 월든이란 숲인데요, 정말 아름다운 호숫가에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김 박사 = 듣기만 해도 아름다운 곳인 듯합니다. 2년 전이면 서른 살이셨네요. 한창 활동 많을 시기인데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셨어요?
소로 = 제가 유난히 생각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왜 사람들은 성공적이라고 칭송하는 삶이 한 가지뿐이라고 믿을까요? 다른 좋은 삶들을 희생하면서 하나의 삶만을 과대평가해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다양한 삶을 시도해보고 싶었어요. 근원적인 질문, 즉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도 얻고 싶었고요.
소음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조용한 호숫가서 2년을 살았으니 소음이 거슬리는 건 당연합니다”
김 박사 = 숲을 떠나 도시로 오고 나니, 어떤 것이 제일 신경이 쓰이던가요?
소로 = 일단 소음이오. 숲속에서는 낮에 새소리가 들리죠. 산들바람 소리도 좋고요. 빗소리도 흥겨워요. 처마 밑에 앉아서 떨어지는 비를 보며 들으며, 좋아하는 책이라도 읽을 때면 천국이 따로 없죠. 이런 소리들을 소음이라고 부르지는 않잖아요. 밤에는 너무 조용해요. 가끔 들짐승 소리도 들리긴 하지만요.
김 박사 = 그렇게 조용한 곳에 있다가 도시에 왔으니 거슬릴 만하죠. 사실 도시에 사는 우리들은 소음에 민감하지 않죠. 살아남기 위해 청각이 적응하는 거잖아요. 인간이 다른 어떤 생물보다도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은 아마도 ‘적응’ 덕택일 겁니다. 하지만 정도를 벗어나는 소음은 폭력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층간소음 문제로 신문에 나는 일도 있잖아요.
소로 = 적응의 힘은 알겠지만, 방향이 잘못되면 오히려 인류에 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선조의 적응에 비하면, 자연을 지배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우린 결국 파멸할 겁니다. 의복이든 집이든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은 인생을 허비하기 제일 쉬운 짓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요?
김 박사 = 사람들이 들으면 혼란스럽겠네요. 요즘 주택 문제로 대한민국이 너무 시끄럽거든요. 좋은 의도의 대책들이 결국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쉴 새 없이 바뀌는 정부 대책으로 인해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한 사람들도 있고요. 집이 둥지가 아니라 부동산으로 바뀌면서 참 많은 박탈감을 안겨주는 것 같습니다. 피곤한 몸을 누일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이 있고 없고는 심리적으로 엄청난 차이를 부르거든요. 삶의 질이 바뀌죠. 그래서 공간심리학 또는 신경건축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내 공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소로 =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런데 내 몸 하나 누이는데, 그렇게 넓은 면적이 필요할까요? 요즘은 더 큰 집을 원한다지만, 신혼부부들이 선호한다는 소위 30평형 아파트도 너무 커요. 월든 숲의 제 집은 불과 폭 3m, 길이 4.5m, 높이 2.4m입니다. 비록 13.5㎡의 협소주택이지만, 생활을 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어요.
김 박사 = 불과 4평 남짓한 공간이네요. 혹시 꼭 갖고 싶은 ‘꿈의 집’ 같은 거 없으세요? 저는 언젠가는 자연 속에 아름답고 기능적인 집을 갖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만….
소로 = 박사님, 절대 안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왜 늘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하고, 적은 것에 만족하는 법은 배우려 하지 않을까요? 남들처럼 크고 좋은 집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집이 내게 필요한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굳이 큰 집은 필요 없습니다. 아름다운 집이오? 거북의 등껍질이 거북의 뜻과는 아무 관계 없듯이, 대부분 사람들의 사고와 감정은 자신이 사는 집의 건축 디자인과는 아무 관련 없죠. 원하는 것을 짓지 않고, 지어진 건축물에 스스로의 삶을 억지로 맞추는 것은 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김 박사 = 충분히 이해합니다. 주인에게 맞는 집을 지어야만 진정한 보금자리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주변 환경도 스스로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소로 = 당연하죠. 저는 생태주의적 측면으로 많이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어울려야 하죠. 자연의 섭리를 따라 살며 당연히 자연을 손상시키는 것은 막아야겠지요. 인류가 아무리 발전을 해도, 먹고사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문제는 모든 것을 필요 이상으로 원한다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김 박사 = 저도 산티아고 순례의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이 있어요. 당시에는 지금 입은 옷 그리고 내일 입을 옷, 2가지만 있어도 살아갈 수 있었어요. 집 또한 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의 침대 하나면 충분하고요. 먹는 것 역시 소박한 순례자 메뉴면 더할 나위 없었고요. 순례자 메뉴에서 물 대신 주는 와인으로도 충분히 사치를 누릴 수 있었으니까요.
생존 외의 물건은 사치잖아요
“그건 저도 동의하는 바이지만… 인간이 집과 밥만으로 살 순 없죠”
소로 = 맞아요. 우리에겐 생존이 우선입니다. 지금 가진 것으로 생존이 가능하다면 나머지는 사치에 지나지 않지요. 그렇게 생각을 바꾸면, 요즘 시절이 꼭 지옥만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시대와 물가가 달라져서 단순 비교가 힘들지만, 케임브리지대학의 기숙사 비용이 30달러인 시절에 집을 짓는 데 들었던 자재 비용은 불과 28달러12.5센트에 지나지 않았어요. 지금도 생각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어요. 더구나 제가 농사를 지어보니, 1년간 먹을 식량을 마련하는 데 고작 6주만 노동을 하면 되더라고요. 욕심 많은 인간이 먹지도 않을 곡식을 창고에 쌓아두거나, 시장에 내다팔아서 사치품을 사려고 하니 힘들지요. 비싼 가방이나 차를 위해 노예로 사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김 박사 = 그런데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을까요? 혹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닐까요? 말씀하셨듯이 시대착오적인 것은 아닐는지요.
소로 = 반드시 저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젊었고, 온화한 기후였고, 물가가 쌌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숲속의 생활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비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SNS가 유행인 시절이었다면, 어쩌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죠. 너무 비교가 많이 되니까요. 시간만 나면 열어보는 SNS에서, 누구는 해외여행을 하고, 명품을 사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지요.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를 받고 불필요한 열등감을 갖게 만들죠.
김 박사 = 100% 동감입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할 수도 있지요. 소로씨가 월든의 삶을 책으로 써내신 것은 대중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 위한 의도였잖아요. 많은 사람에게 좀 더 알리는 목적이라면, SNS가 제일 효과적이었을 거예요. 아마 더 많은 사람이 응원해주고 힘을 보태주었을 겁니다. 요즘 유행하는 실시간 방송을 했다면 반향이 엄청 났을 거 같은데요. 지금도 세계적인 인플루언서시지만, SNS를 활용하실 수 있었다면 전 세계적으로 생태보전운동이나 미니멀리즘 트렌드를 이끄셨을 거라 확신합니다.
소로 = 그럴 수도 있겠네요. 만약 단순한 재미로 살아보는 것이 아니고, 진심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숲의 생활을 동경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더할 나위 없이 큰 힘이 되겠지요.
김 박사 = 반면 SNS를 보시면 많이 놀라실 거 같습니다. ‘먹스타그램’과 같이 예쁘고 흔치 않고 귀한 음식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아마 신세계를 보실 겁니다.
소로 = 알죠, 가끔 걱정이 들어요. 숲 생활에서 얻은 지혜 중 하나가, 인간은 그렇게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효모를 넣지 않은 옥수수빵만으로도 2년 넘게 건강하게 지냈다고요. 자연을 잘 살펴보세요. 애벌레나 구더기는 게걸스럽게 먹습니다. 하지만 나비가 되고 파리로 변하고 나면, 한두 방울의 물이나 설탕물로도 하루를 잘 지낼 수 있어요. 많이 먹는 사람들은 자신이 아직 유충 단계에 있음을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고요!
김 박사 = 저도 일부 동의하고 있어서 재미는 있지만, 위험한 비유네요. 흥분을 좀 가라앉히시면 어떨까요?
소로 = 아, 오해하지는 마세요. 대식가들을 폄하한다기보다는 그리스와 로마를 멸망시킨 것은 칼이 아니고 산해진미였음을 잊지 말라는 것이지요. 건강을 해칠 정도로 적게 먹으라는 뜻은 아닙니다만, 적게 먹으면 그만큼 적게 일해도 되고요. 쓰레기나 이산화탄소 배출도 줄 테니, 환경에도 도움이 되죠.
김 박사 = 자급자족의 소박한 삶으로 역설적인 풍요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인간이 결코 밥과 집으로만 살 수는 없잖아요. 정말 행복하게 살려면 좋은 인간관계가 필요합니다. 소로씨는 내내 홀로 지내셨죠?
소로 = 네, 고독만큼 좋은 친구는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제가 은둔형 인간은 아닙니다. 사교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죠. 집에 의자가 3개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두 번째는 우정을 위한 것이고, 세 번째는 사교를 위한 것이죠. 어느 누구도 혼자서만은 살 수 없습니다. 자연도 마찬가지죠. 산과 호수가 어우러져야 완벽한 풍광을 빚는 것처럼요. 하지만 인간들은 가끔 어울림의 행복을 잊는 거 같아요. 혼자서 잘살려고 이웃의 불행을 지나친다면, 곧 자신에게 닥칠 불행에도 대비해야 할 겁니다.
김 박사 = 자연에 대한 동경이 높은 최근의 현상을 보고 있자면, 얼마나 우리가 자연을 못살게 굴었는지 알 거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귀농 또는 귀촌을 꿈꿉니다. 제가 상담하는 분들 중에도 적잖이 시골로 내려가시거든요. 그런데 80~90%가 돌아오세요. 실패하신 거죠.
소로 =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도시가 싫어서 도피나 취미로서의 숲 생활이었으면 저도 쉽게 포기했을 겁니다. 제가 관심을 갖고 영향을 주고 싶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 방법이 자연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에게서 배우고 겸손하고 소박하게 산다면, 정말 적은 돈으로도 승산이 있습니다. 좀 전에 이야기했듯이 이웃과 잘 지내는 것도 중요하고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적지 않거든요.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얘기하다보니 제 말이 너무 길어졌네요, 박사님, 제 불면증은 나아질까요?
제 불면증은 나아질까요
“도시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 우선 수면습관부터 바꿔봅시다”
김 박사 = 대화에 빠지다보니 저 역시 깜빡했네요. 도시의 번잡함과 소음에 적응이 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굳이 약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될 거 같아요. 일단 수면위생을 지켜봅시다. 어떤 이유이든 잠을 못 자면 처음 해야 할 원칙이지요. 숙면에 도움이 되도록 온도와 습도가 맞아야 하고, 어두워야 합니다. 잠을 방해할 수 있는 카페인은 피하세요. 소량의 음주는 수면에 도움이 됩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니면 운동도 괜찮고요. 자기 전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해진 시간에 자고 정해진 시간에 깨야 합니다. 중간에 깨면 ‘자는 척’하세요. 건강한 수면은 밤 10시에서 12시 사이에 시작해서, 6~8시간 정도가 적당합니다. 이렇게 1~2주 시도하시면 웬만한 불면증은 대부분 호전됩니다. 그 뒤에도 수면에 문제가 있다면, 투약에 관해 상의를 해보죠.
![[김진세 박사의 K상담실]숲에서 도시로 이사한 후에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어요](https://img.khan.co.kr/news/2020/01/03/l_2020010401000080200025782.jpg)
정신과 전문의 김진세 박사는 슬럼프 극복을 위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길 위의 카운슬러’로 나섰던 천생 상담가다. 고려제일정신건강의학과 원장으로 20년 이상 진료실에서 상담을 하고, 정신 건강과 관련된 수백편의 글을 써왔다. 저서로 <심리학 초콜릿> <행복을 인터뷰하다> <태도의 힘>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