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회의 이후 첫 공식 메시지
문 대통령 신년사 구상엔 거부감
북한이 지난 11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의 명의로 발표한 담화는 올 1월1일 전원회의 결정서 공개 이후 처음으로 내놓은 공식 대외 메시지다. 북한은 이를 통해 대미·대남 전략을 더욱 선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대화의 문을 닫지는 않겠지만 미국이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 한 미국과의 협상에서 양보는 없다는 뜻을 재확인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신년사에서 밝힌 대북 구상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북한은 담화에서 “(북·미 대화가 다시 이뤄지려면) 미국이 우리가 제시한 요구사항들을 전적으로 수긍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에서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제시한 제재완화,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첨단무기 한반도 반입 금지 등 3가지 요구를 재차 언급하며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허들을 높인 기존 입장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 대미 협상 장기화에 대비 재차 강조, 청와대 ‘북·미 대화 견인 구상’ 난관
북한이 대화 재개를 위한 요구의 수위를 높인 것은 협상에서 미국이 드러낸 태도에 대한 불신 때문으로 보인다. 김 고문 담화에서도 “미국과의 대화탁에서 1년 반이 넘게 속히우고 시간을 잃었다”는 표현이 나온다. 미국이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합의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해놓고 ‘비핵화’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했다는 비난이다. 또한 “유엔 제재와 나라의 중핵적 핵시설(영변 핵시설)을 통째로 바꾸자고 제안했던 베트남에서와 같은 협상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음으로써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협상의 틀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은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여전히 ‘좋은 감정’을 갖고 있음을 말하면서도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 개인적인 감정’이라고 선을 그었다. 담화는 특히 “(김 위원장이) 그런 사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국사를 론하지는 않으실 것”이라고 밝히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립서비스’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북한은 전원회의 결정서를 통해 보여준 ‘대미 협상 장기화에 대한 대비’도 재차 강조했다. 북한은 이날 담화에서 “우리는 미국이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며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미국이 대화 재개를 위한 전제조건 요구를 지금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있을 뿐 아니라 탄핵 국면과 중동 정세 등으로 북한과 전향적인 합의를 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 상황을 지켜보면서 장기전을 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담화에 군사적 도발을 예고하는 위협적인 언사가 없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이날 담화는 올해 김 위원장의 신년사가 생략된 상황에서 나온 첫 번째 대남 메시지이자, 문 대통령의 신년사 이후 북한의 첫 공식 반응이다.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제안한 김 위원장 답방, 접경지 협력과 체육교류, 비무장지대 세계문화유산 공동 등재 등의 남북 협력 등에 대한 분명한 거부 표시인 셈이다. 신년사 당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KBS 인터뷰에서 “언급한 그런 조치들은 미국과의 협의하에 이뤄져야 한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데 이어 북한도 ‘설레발’ ‘본전도 못 챙기는 바보신세’ 등과 같은 조롱으로 거부감을 나타내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북·미 대화 견인’을 표방한 청와대의 구상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