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추궁·언론보도에 위축”
재판부 ‘유 법정 증언’ 신뢰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53·사진)에게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재판장 박남천)가 지난 13일 무죄를 선고한 배경 중 하나는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일부를 증거로 쓸 수 없다는 판단이다.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에는 유 전 연구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 박채윤씨 소송 관련 정보가 담긴 ‘사안요약’ 문건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요청에 따라 재판연구관에게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진술이 담겨 있다. 유 전 연구관은 재판에 와서는 이 진술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했다.
형사소송법은 특별히 신빙할 만한 상태에서 진술했다고 확인되면 피의자신문조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증거능력)고 규정한다. 재판부는 조사 과정에 변호인이 참여했고 휴식 시간이 보장됐다고 인정했다. 유 전 연구관이 조서를 읽고 서명한 뒤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같은 사실만으로는 유 전 연구관 진술이 공판중심주의 내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에 대한 예외로 평가할 수 있는 정도로 허위개입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큰 관심과 언론 보도, 검사의 집요한 추궁 등을 들었다. 재판부는 “(유 전 연구관이) 다수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와 비난성 보도 및 공개소환 등으로 심리적으로 매우 위축된 상태에서 오도될 수 있는 정보들에 영향을 받고, 암시적이고 반복적인 질문에 유도돼 사실과 다르게 진술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집중 추궁하자 즉석에서 일일이 적절하게 반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결국 검사 질문에 포함된 전제사실에 부합하는 듯한 진술을 해줌으로써 조사에서 벗어나려고 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의사실 공표와 공개소환 등 검찰 수사가 ‘총체적 위법’이라 공소 자체를 기각해야 한다는 유 전 연구관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판단하는 데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 검찰 피의자신문조서를 진술 신빙성 차원이 아니라 증거능력 차원에서 배척한 것은 이례적이다. 검찰은 법관 출신으로 형사사법 절차에 해박한 유 전 연구관이 변호인을 대동한 상태에서 내놓은 진술이 압박에 의한 것이라는 재판부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