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환경에서의 외계행성
지구에서 2040광년 떨어진 우주에서 발견된 백색왜성 ‘WDJ0914+1914’와 그 주위를 도는 외계행성의 상상도. 백색왜성이 자신보다 4배 큰 외계행성의 대기 등 천체 성분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외계행성은 이 과정에서 수소·산소·황 같은 성분의 혜성 꼬리 같은 자취를 남기는데 보리스 간시크 박사 연구팀에 포착되면서 존재가 입증됐다. 유럽남부천문대(ESO) 제공
별은 100억년 정도 수명을 다하고 나면 다음 단계의 일생으로 들어간다. 격렬한 해체 과정을 거쳐 백색왜성·중성자별·블랙홀 등으로 변신, 다시 일생을 영위한다
중성자별 ‘펄사’ 주위에서 발견된 외계행성들은 별이 죽어가는 격변의 순간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높다. 백색왜성이나 블랙홀이 되는 과정에서도 살아남은 행성이 있을까
백색왜성 주위를 10일에 한 바퀴씩 돌고 있는 해왕성만 한 외계행성이 지난해 처음으로 포착됐다. 이 발견은 극한 환경 속에서도 행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태양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태양은 수성·금성 공전궤도를 삼키고 지구나 화성도 위협할 것이다. 해왕성 정도 거리에 있는 거대 기체행성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태양계 밖 다른 행성계에 속한 행성을 외계행성이라고 한다. 2020년 1월 현재 4160개의 외계행성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확인 절차를 밟고 있는 외계행성의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외계행성이 발견되기 전에는 태양계가 우주에서 유일하게 행성을 갖고 있는 시스템으로 군림해왔다. 태양계 내 행성의 분포와 특성을 바탕으로 태양계 형성과 진화에 대한 이론을 확립했었다. 이렇게 정립된 태양계 형성 이론은 곧 우주 전체의 행성계, 또는 항성계 형성 이론으로 비약해 적용하곤 했다. 다른 관측적 대안이 없었다.
외계행성이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태양계 밖에 존재하는 행성들의 특성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태양계 내 행성들과 비교도 가능해졌다. 한 행성계에서 여러 개의 외계행성이 발견되면서 태양계 내 행성의 분포와 비교할 수도 있게 되었다. 현재 복수의 외계행성을 지니고 있는 행성계 수는 676개에 이르고 있다. 여전히 통계적으로 접근하기에는 관측 자료의 수가 부족하지만 경향성을 살펴보기에는 충분한 수의 외계행성이 확보되었다. 초기 관측에서는 외계행성을 찾는 방법이 크고 무거운 행성을 찾는 데 유리하다든지 공전주기가 짧은 외계행성을 발견하는 데 유리하다든지 하는 선택효과를 피할 수 없었다. 관측 기기의 성능이 향상되고 관측 분석 방법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더 넓은 범위에서 외계행성을 탐색할 수 있게 되었다. 발견된 외계행성의 수가 늘어나면서 관측의 사각지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외계행성의 분포와 특성은 다소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관측에서의 선택효과를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뜨거운 목성’이라고 불리는 외계 거대기체행성의 발견이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속한 별 주위에 가깝게 위치하면서 아주 짧은 공전주기를 갖는 거대기체행성이 흔하게 발견되었다. 태양계로 치자면 수성 궤도 정도에 목성보다 큰 기체행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태양계 내 행성의 분포와 특성을 바탕으로 정립한 기존 행성계 형성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그렇게 별에 가까운 곳에 그렇게 큰 행성이 그렇게 빨리 돌면서도 파괴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야만 할 것이다. 태양계 내에 존재하지 않는 천체이므로 태양계 관측 결과를 기반으로 한 기존 행성계 형성 이론에서는 다룰 필요가 없는 분야였다.
지구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큰 이른바 ‘슈퍼지구’가 흔하게 존재한다는 것도 외계행성 관측을 통해 알게 됐다. 지구형 행성이 드문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행성계 형성 과정에서 흔하게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외계생명체를 탐색하는 우주생물학자들에게는 무척이나 좋은 소식이었다. 지구와 물리적인 환경 조건이 비슷한 외계행성이 흔할 정도로 많다면 그중 일부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외계생명체의 존재도 우주 공간에서는 보편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중 또 일부만 진화를 해 지적생명체가 되었다면 지구인과 같은 지적생명체의 존재를 한껏 기대해도 될 것이다. 외계행성 연구 초점이 행성계 형성과 함께 외계생명체 탐색에도 맞춰져 있는 이유다.
갈색왜성 상상도. 보통 별처럼 뜨겁지 않아 상대적으로 어둡고 적외선을 주로 방출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태양 같은 주계열성 별 이외에 더 작고 어두운 갈색왜성이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고 큰 별 주변에서도 외계행성들이 발견되고 있다. 한 행성계에서 여러 개의 외계행성이 발견된 경우에는 그 분포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불안정해 존재할 수 없을 것 같던 행성계 내 위치에서도 외계행성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별로부터 떨어진 거리를 한쪽 축으로 잡고 다른 쪽 축은 별의 크기, 또는 질량 정도로 잡은 그래프를 생각해보자. 그곳에 지금까지 발견된 외계행성들을 점으로 찍어보면 밀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프 전체 면을 대략 다 채우는 것 같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위치에서 외계행성이 발견되고 있다는 말이다. 태양계 하나만 연구해 행성계 형성 이론을 세워야만 했던 시절은 지났다. 태양계를 포괄하는 더 넓은 의미에서의 행성계 형성 이론을 만드는 초석이 다져졌다고 할 것이다.
별은 일생을 살고 나면 다음 단계의 일생으로 들어간다. 태양 같은 별들은 100억년 정도의 수명을 다하고 주계열성으로서의 삶을 마감하게 된다. 태양 같은 별이 죽을 때 안쪽 부분은 수축해 작고 뜨거운 백색왜성이 된다. 바깥쪽 부분은 행성상 성운이 되었다가 시간이 더 많이 지나면 흩어져 버린다. 태양보다 조금 더 무거운 별들은 중심부가 더 격렬하게 수축해 중성자별을 만든다. 더 무거운 별은 초신성 폭발을 겪으면서 가운데 부분에 항성형 블랙홀을 만든다. 별이 일생을 살고 죽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한 단계의 일생을 살고 난 후 다음 단계에서 백색왜성, 중성자별, 블랙홀 같은 모습으로 변신해 다시 일생을 영위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전 단계에서 만들어졌던 행성들은 모두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대학이 공개한 적색왜성(오른쪽)과 그 주위를 공전하는 GJ1214b 행성(왼쪽)의 삽화. 과학자들은 2010년 지구에서 42광년 떨어진 GJ1214b 행성에 대기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별이 일생을 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은 격렬한 해체의 과정이다. 보통 그 단계에서 별들은 적색거성이나 질량이 더 클 경우 초적색거성 단계를 거친다. 수명을 다하기 직전인 이 단계 별들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는 맥동 현상을 보인다. 태양이 적색거성 단계에 이르면 커졌을 때의 크기가 지구 공전궤도나 화성 공전궤도를 침범할 수도 있다. 별이 이 단계에 이르면 그 별 주위를 돌던 행성에 살고 있던 생명체는 더 이상 생존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극심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생명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행성 자체도 존재하지 못하고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행성계 형성 시기에 별과 같이 만들어졌던 행성들의 운명은 어떨 것인가. 재미있는 것은 최초로 발견된 외계행성들이 태양 같은 별 주위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992년 확인된 최초의 외계행성들은 PSR B1257+12라는 이름의 펄사 주위를 돌고 있었다. 펄사는 빠르게 회전하는 중성자별을 일컫는 말이다. 별이 한 단계의 일생을 마감하고 다음 단계의 삶을 살아가는데 그 단계에서 행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단계에서 행성이 형성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단계가 형성될 때 행성이 새롭게 형성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천문학자들 생각이다. 이 펄사 주위에서 발견된 외계행성들은 이전 단계에서 형성된 후 별이 죽어가는 격변의 순간 속에서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높다. 백색왜성이나 블랙홀 주위에도 행성이 있을까. 다시 질문을 던지면 백색왜성이나 블랙홀이 되는 격변의 과정에도 살아남은 행성이 있을까.
2019년 12월4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흥미로운 논문이 한 편 발표되었다. 보리스 간시크(Boris Gansicke) 박사 연구팀이 발표한 ‘Accretion of a giant planet onto a white dwarf star’라는 논문이 바로 그것이다. 뜨거운 백색왜성 주위에서 거대기체행성을 발견했다는 내용이다. 백색왜성 WDJ0914+1914는 슬로언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Sloan Digital Sky Survey) 프로젝트를 통해 확인되었다. 해왕성만 한 외계행성이 자신보다 4배나 작은 이 백색왜성 주위를 10일에 한 바퀴씩 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 외계행성은 수소, 산소, 황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진 혜성 꼬리 같은 자취를 남겼는데 연구팀에 포착됐다. 그동안 백색왜성으로 빨려 들어가는 천체 성분들이 관측되면서 이 별 주위에 행성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되곤 했었다. 실제 백색왜성 주위에서 행성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색왜성은 지구 같은 행성 정도의 크기를 갖는 작은 천체다. 하지만 표면 온도는 2만8000도에 달해 주변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해왕성이나 천왕성 같은 거대기체천체가 백색왜성 WDJ0914+1914의 영향으로 혜성 꼬리와 같은 형태로 수소, 산소, 황 같은 성분을 분출해내는 모습이 이번에 포착된 것이다. 백색왜성 주위에는 더 많은 행성이 존재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뜨거운 별에 의해 분출되는 성분이 없다면 찾아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차세대 외계행성 탐사 망원경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지구로부터 6500광년 떨어진 게 성운. NASA 제공
이번 발견이 흥미로운 것은 극한 환경 속에서도 행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별이 일생을 마치고 다음 단계인 백색왜성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그 전에 만들어졌던 행성이 살아남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의 미래를 먼저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태양은 45억년 정도 후면 적색거성 단계에 접어들 것이다.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할 텐데 그 크기가 수성이나 금성의 공전궤도는 너끈히 삼킬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 지구나 화성의 공전궤도도 위협할 것이다. 태양계 안쪽 암석질 행성들은 이 과정에서 생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반면 천왕성이나 해왕성 정도 거리에 있는 거대기체행성들은 이 과정을 견디고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이번에 발견된 백색왜성 주위를 도는 행성의 존재가 이 가능성을 강변하고 있다. 지구에 세워진 인류 문명은 그 이전에 없어지겠지만 혹시라도 태양계 내에서 우리를 잇는 다른 문명이 그때까지 살아남는다면 해왕성 정도에 가서 정착한 후 태양의 일생이 마감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백색왜성으로 변신한 태양 주위를 돌면서 또 다른 세상을 즐길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행성계에 속하지 않은 떠돌이 외계행성도 발견되고 있다. 별처럼 스스로 빛을 내지는 못하는 천체를 일컫는 대표적인 말이 행성이다. 지금까지의 외계행성 관측 결과를 보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행성 형성이 가능할 것도 같다. 죽은 별 주위를 도는 행성도 발견되었으니 말이다. 한 시대를 넘어 다음 시대까지 이어서 생존하는 행성도 발견되기 시작했으니 그야말로 행성계의 형성과 행성의 분포 및 특성에 대해 교과서를 전면적으로 다시 써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태양계의 다음 시대에 대한 상상의 지평도 넓어져야 할 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설정처럼 항성블랙홀 주변에서 외계행성이 발견되는 날이 곧 닥칠지도 모를 일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천문 잡지를 애독했고, 고등학교 때 유리알을 갈아서 직접 망원경을 만들었다.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네덜란드 캅테인 천문학연구소 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등을 지냈다. 외계 지성체를 탐색하는 세티(SETI)연구소 한국 책임자이기도 하다. <이명현의 별 헤는 밤> <스페이스> <빅 히스토리 1>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과학책방 ‘갈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