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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직권남용죄’ 판결, 엄격해졌지만 엄격해진 게 아니다

입력 2020.02.02 22:23

수정 2020.02.0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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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해석 모호하다는 지적 불구 새 기준 없어 ‘판단 회피’ 의혹

조국·사법농단 등 사건 재판에서 판결 둘러싼 공방 이어질 듯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판결의 의미를 두고 법조계에선 해석이 엇갈린다.

형법상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상급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했는지에 더해 하급 공무원이 ‘의무 없는 일’을 했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결 핵심이다. 이날 대법원은 법 해석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은 ‘직권과 남용의 범위’에 관해서는 새로운 기준은 내놓지 않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사법농단 등 사건 재판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을 둘러싸고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 대한 2심 판결을 파기한 이유는 ‘심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2심은 김 전 실장의 블랙리스트 운용이 직권을 남용한 위법한 지시였고, 공무원은 위법·부당한 지시에는 따를 의무가 없기 때문에 곧 김 전 실장이 하급 공무원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주문은 포괄적인 의무가 아니라 구체적인 의무를 어긴 것인지를 상세히 살피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직무수행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원칙이나 기준, 절차 등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동안 ‘하급 공무원이 의무 없는 일을 했는지’ 여부가 직권남용죄 재판에서 큰 공방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로 범죄 성립이 까다로워졌다고 할 수 있다.

한 판사는 “기존 사례와 비교해 법령을 위반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를 검사가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입증 못하면 무죄라는 뜻으로 종전보다 엄격해졌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직권남용죄를 규정한 형법 123조 조문에 이미 명시된 범죄 성립 요건이기도 하다. 대법원도 판결 보도자료에서 “파기환송 취지는 직권남용죄에 대한 법리오해와 그로 인한 심리미진”이라며 “반드시 무죄 취지 파기환송이라고 할 수 없다”며 확장 해석을 제한했다.

이정일 변호사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법령의 추상적인 요건을 계속 엄격하게 적용해 가는 게 맞다”면서도 “하급자는 상급자가 어떤 목적과 의도로 지시하는지 알 수 없고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데,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직무 범위 내 행위라면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소지는 있어 보인다”고 했다.

대법원은 직권과 남용의 범위 등 그동안 모호하다고 지적된 쟁점을 두고 새로운 판단을 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의심도 나온다. 대법원이 직권남용죄 기준을 세우거나 구체적 해석을 하지 않은 채 모호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사법농단 등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들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권한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한 법조계 관계자는 “(사법농단 등) 법원 관련 사건들이 다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법원이 판단을 회피한다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검찰은 이 판결이 조 전 장관과 사법농단 사건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조 전 장관 사건은 감찰권에 대한 권리행사 방해로 기소한 것이기 때문에 이번 대법원 판결과 무관하다”고 했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 중단 지시 혐의를 받는 조 전 장관의 공소장을 보면, 검찰은 조 전 장관이 특별감찰반 관계자의 감찰에 관한 권리행사를 방해했다고 사건을 구성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법농단 사건에 대해 “법원행정처에 재판 개입을 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재판 개입을 내용으로 한 보고서 작성은 의무 없는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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