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스트리트저널 칼럼 페이지 캡처
미국과 중국의 이른바 ‘미디어 전쟁’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관영언론을 콕 짚어 제재를 가했고, 이에 질세라 중국은 미국 기자들을 추방했다. 무역전쟁, 화웨이, 홍콩 시위 등 각 현안에서 으르렁대던 양국이 이번엔 언론 매체를 볼모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중 상대국 언론 옥죄기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9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미국은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3명에 대한 중국의 추방조치를 규탄한다”며 “사실을 보도하고 의견을 표출하는 자유 언론에 대해 성숙하고 책임있는 국가는 이해한다. 올바른 대응은 반대 논거를 제시하는 것이지, 발언을 억제하는 게 아니다”고 비판했다. “미국인들이 누리는 언론의 자유 및 정확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중국인들도 누리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이에 중국 겅솽(耿爽)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온라인 정례 브리핑에서 “WSJ는 중국을 모욕하는 칼럼을 싣고, 공공연히 인종차별적 제목을 달았다”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를 거부하는 것이 미국이 말하는 언론 자유냐. WSJ가 다른 사람을 모욕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모욕을 당한 사람도 반격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라고 했다.
앞서 중국 당국은 ‘중국은 진짜 아시아의 환자’라는 표현이 담긴 WSJ의 지난 3일자 칼럼을 문제삼아 WSJ 기자 3명의 기자증을 취소하고 추방했다. 겅 대변인은 “인종 차별적 의견과 악의적으로 중국을 먹칠하는 매체”라고 비판했다. 미 국제정치 학자 월터 러셀 미드는 칼럼에서 “(코로나19 대응에서)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대내외적으로 중국 공산당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고 썼다. 제목은 ‘유럽의 환자’란 용어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유럽 열강에 밀려 쇠망길에 오른 오스만 제국을 가리켜 ‘유럽의 환자’라 불렀고, 1960~70년대 영국, 1990년대엔 독일이, 그다음엔 프랑스가 각각 경제위기로 ‘유럽의 환자’로 불렸다.
이 표현은 중국을 조롱하고 인종차별적인 제목이라며 중국인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WSJ 발행인이자 다우존스 최고경영자(CEO)인 윌리엄 루이스는 19일 중국 외교부의 기자 추방 결정에 실망을 표하면서도 “확실히 중국인들에게 놀라움과 우려를 촉발시켰다”면서 유감을 표했다.
중국 당국의 조치는 미 국무부가 신화통신·CGTN 등 5개 중국 국영언론사를 ‘외국 사절단’으로 지정하고 직원과 자산 등을 보고하도록 규제한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나왔다. 미국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정부의 메시지 전달 및 해외에서의 언론 영향력 확대를 위해 언론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보고 이같은 조치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겅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은 언론의 자유를 표방하면서 중국 언론의 미국 내 정상적인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미국과 중국의 최신 전쟁터 : 미디어
미국·중국 모두 상대국 언론에 대한 ‘전례 없는’ 강한 조치를 취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9일 “미디어가 중국과 미국의 치열한 경쟁에 휘말리고 있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양국의 끝나지 않는 긴장관계가 언론 규제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미중관계 전문가인 샹루 연구원은 “양국 관계가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직면했다”면서 “미국은 여러 문제에서 중국의 협조를 필요로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난 문제들을 만들려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과 중국은 지난달 15일 ‘1단계 무역협상 합의문’에 서명해 18개월간 지속된 무역전쟁 휴전을 선언했지만, 이후에도 서로에 대한 압박의 고삐를 놓지 않고 있다. 당장 코로나19 발병·대응을 두고도 마찰이 빚어졌다. 지난 3일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자국민 철수와 중국인 입국 제한조치를 한 것을 두고 중국은 “공포심을 조성하고 확산시킨다”고 반발했다. 공화당 톰 코튼 상원의원은 최근 의회 청문회에서 “코로나19는 체르노빌보다 더 심각한 세계 최대의 문제”라고 했고, 추이텐카이(崔天凱) 미 주재 중국대사는 지난 9일 CBS 인터뷰에서 “의심과 루머를 일으키고 퍼뜨리는 건 아주 위험하다”고 맞받았다.

화웨이 로고|로이터연합뉴스
또 미국 검찰이 지난 13일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해 대북 제재 위반 등 16개 혐의로 추가기소했다. 코로나19로 중국 내 공장 가동률이 급감하는 등 흔들리는 화웨이를 이 참에 몰아붙여 고사시키려는 의도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중국에서는 미국이 자국이 어려움에 부닥칠 때 도움의 손을 내밀기는커녕 중국을 더욱 곤경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미 국무부가 중국 언론 규제 조치를 발표한 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매우 힘든 상황에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면서 칭찬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중국에 강경·화해 엇갈린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면서 “어떤 입장이든 미·중 관계는 예측불가능해져서 전염병 대응에 전 세계가 단합해야 한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뿌리 깊은 갈등은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