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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휠체어로 여행을 하는 이유요?"

입력 2020.02.23 20:02

수정 2020.02.23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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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타고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하는 여행가 전윤선씨가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유진 인턴PD

휠체어를 타고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하는 여행가 전윤선씨가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유진 인턴PD

“휠체어로 여행을 하는 이유요? 일상은 물론 여행지에서도 수시로 차별을 경험하지만 차별로 인한 모욕감보다는 여행을 갔다는 성취감이 더 크기 때문이죠.”

전동 휠체어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사람이 있다. 여행가 전윤선씨(53)다. 장애가 여행에 장벽이 되기도 하지만, 가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윤선씨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점을 몸소 증명해 왔다. 23일 경향신문 유튜브 채널 <이런 경향>은 윤선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윤선씨는 서른 즈음에 희귀난치 진행성 질환인 근육병으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던 윤선씨는 20대 중반부터 걷는 게 조금씩 힘들어졌고, 사람들과 살짝만 부딪혀도 넘어져 일어나질 못했다고 했다. “(장애 판정을 받고) 좌절감이 엄청났어요.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결혼해서 아이도 있었거든요. 병원에선 5년 정도밖에 못 산다며 치료 방법이 없으니 맛있는 음식 챙겨 먹으며 남은 생을 살라고 했죠. 사실상 사형선고를 내린 셈이었어요.”

의사의 진단을 듣고 윤선씨는 그길로 택시를 타고 한강 다리로 갔다. 강물에 뛰어들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이미 병이 진행된 상태라 높은 난간을 뛰어넘을 힘이 없었다. ‘죽는 것도 맘대로 안된다’는 생각에 윤선씨는 다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장애 판정을 받고 6년쯤 되던 해 윤선씨는 가족에게 ‘인도’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등산과 캠핑을 즐겨 하고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하며 살았는데 갑자기 할 수 있는 것은 차창 밖을 내다보는 게 전부였어요. 진짜 여행을 결심할 수 밖에 없었어요.” 윤선씨는 가족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친구들과 두 달 동안 인도로 공정여행을 떠났다.

인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오물이 가득한 거리와 불편한 화장실을 마주하고 하루 만에 여행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거리에서 장애인들을 보았다. “거리에 장애인들이 너무 많은데 저처럼 휠체어를 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다리를 못 쓰는 사람은 그냥 앉아서 기어 다녔고, 굴러다니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동안 병에 걸려서 힘들다고 했던 것들이 투정처럼 느껴져 그때부터 여행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장애 판정 후 처음으로 떠난 ‘인도’ 여행지에서 전윤선씨가 카메라를 향해 밝게 웃고 있다. 전윤선씨 제공

장애 판정 후 처음으로 떠난 ‘인도’ 여행지에서 전윤선씨가 카메라를 향해 밝게 웃고 있다. 전윤선씨 제공

인도 여행을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여행가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첫 목적지는 정동진. 혼자 여행을 떠났다. 경기도 안양에서 출발해 청량리역까지는 지하철로 이동하고, 기차를 탈 때는 승무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정동진에 도착해 일출을 바라보며 “내가 드디어 왔구나. 벌거 아니네”라며 여행에 자신감이 붙었다. 정작 윤선씨를 절망하게 한 건 장애로 인한 불편함이 아닌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밥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 주인이 휠체어를 타고 온 윤선씨를 보고는 천 원짜리 한 장을 주며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두 발로 걸어갔을 때는 손님 대접을 받았는데 휠체어를 타니까 걸인 취급을 하는 거예요. 그때 알았죠. 이게 (장애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라는 걸요.”

모욕감에도 불구하고 윤선씨가 여행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휠체어를 타고 혼자 정동진에 왔다는 성취감이 더 컸다”고 했다. 전국의 명소는 물론 아시아, 호주, 미국, 유럽 등 세계 곳곳을 누볐다. 여행기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공유했다. 2015년에는 그간 다녀온 국내외 여행지를 소개하는 여행 에세이 <익숙한 풍경 낯선이야기>를 출간했다.

윤선씨에게 관광 ‘약자’를 위한 여행지 추천을 부탁했다. 그는 장애인들이 여행하기 가장 편한 여행지로 ‘부산’을 꼽았다. “부산은 KTX가 수시로 다니고, 주요 관광지인 해운대까지 연계되는 지하철 노선과 저상버스, 콜택시 등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다양해요. 해운대에는 휠체어 이용자도 불편함 없이 이동할 수 있는 ‘배리어 프리(Barrier-free)’ 객실을 갖춘 호텔이 많아 단체 여행이 가능합니다.” 윤선씨는 또 “제주도는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가고싶은 여행지로 꼽힌다”며 “과거에는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차량이 없어 트럭을 부르기도 했지만 지금은 휠체어 4대를 태울 수 있는 콜택시도 있고 장애인전문여행사도 있어서 여행하는데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개별여행이 처음이라면 ‘열린 관광지’를 추천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각 지자체와 함께 만드는 ‘열린 관광지’는 장애인, 노인, 영·유아 동반 가족, 외국인 등 모든 관광객들이 제약 없이 관광 활동을 할 수 있는 무장애 관광지를 말한다. 장애인 화장실과 장애인 주차장, 휴게공간 등이 조성돼 있고 픽토그램, 시설 종합 촉지도(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로 만든 지도) 등이 쉬운 관광을 돕는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여행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윤선씨는 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비영리단체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이기도 한 윤선씨가 관광진흥법 개정 및 장애인문화체육관광진흥법 제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법이 바뀌면 사람들의 태도와 인식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로 인해 가장 불편한 점은 사람들의 태도와 인식이에요. 예를 들어 장애인들끼리만 식당에 가면 인상부터 쓴다든지, 예약을 하고 식당에 가도 장애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죠. 저희에게 물어봐도 되는데 굳이 비장애인 동반인을 찾기도 하고요.”

여행을 하고싶지만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두려워 문을 나서지 못하는 이들에게 윤선씨는 말한다. “세상은 여행할 곳이 많아요. 문 밖으로 나와야 세상이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있으니 일단 나오세요.”

세계 곳곳을 바람처럼 여행하는 윤선씨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윤선씨는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은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라며 “휠체어를 탄 여행가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우연이든 필연이든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선씨의 이야기는 영상에서도 만날 수 있다.

전윤선씨는 날씨가 좋으면 사무실이 있는 여의도에서 선유도 공원까지 산책을 나온다. 최유진 인턴PD

전윤선씨는 날씨가 좋으면 사무실이 있는 여의도에서 선유도 공원까지 산책을 나온다. 최유진 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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