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흔들리는 이란

김향미 기자
<b>생필품 가득 담고</b>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란 전체가 비상이 걸린 가운데 3일(현지시간) 수도 테헤란의 팔라디움 쇼핑센터에서 마스크를 쓴 두 남녀가 휴지 등 생필품을 가득 담은 쇼핑카트를 밀고 있다. 테헤란 | AP연합뉴스

생필품 가득 담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란 전체가 비상이 걸린 가운데 3일(현지시간) 수도 테헤란의 팔라디움 쇼핑센터에서 마스크를 쓴 두 남녀가 휴지 등 생필품을 가득 담은 쇼핑카트를 밀고 있다. 테헤란 | AP연합뉴스

확진 3천여명·사망 92명
의원 등 고위층 감염 증가
미 제재 여파 의약품 부족
마스크 가격도 15배 폭등

대예배 취소·방역 총력에도
“총선 땐 쉬쉬…대처 늦어”
정부 향한 국민 불신 팽배

이란이 코로나19로 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19가 빠른 속도로 퍼지자 당국은 ‘전시’에 준하는 대응에 나섰지만 의약품과 의료장비가 부족한 데다, 정부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불신에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수면 밑에서 반정부 여론이 들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등 서방과의 불편한 관계는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도드라졌다.

이란 보건부는 4일(현지시간) 코로나19 확진자가 2922명, 사망자가 92명이라고 밝혔다. 중국을 제외하고 사망자가 가장 많다. 지난달 19일 첫 확진·사망자가 발생한 뒤 2주 만에 확진자는 3000명, 사망자는 100명에 육박했다. 특히 ‘고위층 감염’이 늘고 있다. 이란 의원 290명 중 23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보건부 차관과 부통령 등 고위 공직자 10여명이 감염됐고, 최고지도자의 자문 역할을 하는 국정조정위원회의 모하마드 미르모하마디 위원이 2일 코로나19에 감염돼 사망했다.

이슬람 신정일치 체제인 이란이 지난주 23개 도시에서 금요 대예배를 취소한 것은 이란 지도부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중국은 이란에 특별기를 보내 자국민을 철수시켰다.

사태가 이렇다보니 이란 정부는 코로나19와 말 그대로 ‘전쟁 중’이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전날 국영방송을 통해 의료진이 ‘지하드’(이슬람을 지키는 성전)를 치르고 있다고 했다.

정예부대인 혁명수비대는 지난 1일 특별본부를 설립하고 방역을 주도하고 있다. 3일부터는 혁명수비대 하위조직 민병대 바시즈 30만을 동원해 집집마다 돌며 의심 환자를 찾아내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이란 의료시설은 선진국 수준에 가깝지만 미국 제재로 의약품 및 검진키트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스크 값은 10~15배까지 치솟았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병했을 때 마스크를 지원한 것을 두고 “앞날을 못 본 자만”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란은 지난 2일에야 세계보건기구(WHO) 등으로부터 의료·위생용품, 검사 장비를 지원받았다.

이란 당국은 감염확산을 막기 위해 극단적 조치를 하고 있다. 사법부는 마스크 사재기 등 방역 방해자에 대해 최고 교수형까지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수감자 감염설’이 돌자, 죄수 5만4000명을 보석금을 받고 일시적으로 석방하기로 했다. 평상시라면 지극히 비정상적으로 비칠 조치들이다.

민심은 차갑다. 이란에선 지난해 11월 휘발유 구매 보조금 삭감 조치로 반정부 시위가 크게 일어났고, 올해 1월 미국과 전쟁 위기 국면에서 우크라이나 여객기 오인 격추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진 상태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란 내에선 지난달 21일 총선 전부터 코로나19가 발병했지만 총선 투표율 때문에 당국이 쉬쉬하다가 대처에 늦었다는 비판이 텔레그램을 통해 퍼지고 있다”면서 “이란인들은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못하고,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란인들은 연이은 악재에 집단적으로 우울증,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한다”고도 했다.

다만 반정부 시위 단속으로 악명 높은 바시즈의 등장에 뉴욕타임스는 “이란 당국의 ‘모순적 조치’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국민을 위한 조치이지만, 반대로 국민을 탄압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란은 “코로나19 사망자가 이란에서 210명에 달한다”는 BBC 페르시아어 방송에 반발하면서 “서방이 가짜뉴스로 이란을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미국은 이란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겠다고 했지만, 이란은 미국의 저의를 의심하며 도움을 거절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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