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제대로 아비 노릇을 하는 것 같다. 왕년의 아비들은 ‘실물’을 손에 들고 들어옴으로써 가장다웠다. 통닭이든, 귤이나 군고구마 봉지든. 심지어 월급도 누렇고 큰 봉투에 담아 가지고 왔다. 보너스를 받는 달에 봉투는 두 배쯤 두꺼웠다. 더 옛날로 가자면, 사냥감을 가지고 가족이 기다리는 동굴로 돌아오던 원시인을 상상해도 되겠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모바일로 들어가면서 그런 분위기는 사라졌다. 아버지가 묻혀온 바깥 공기 냄새와 함께 뒤섞이던 통닭의 고소한 기름 냄새도, 이제는 ‘띵동’ 하는 초인종 소리와 결합되어서 청각으로만 남게 된 듯하다. 아버지는 신용카드를 내미는 일조차 이제 하지 않아도 된다. 사전결제 기능이 있으니까. 버튼 하나를 꾹 누름으로써 그 수고가 해결되었다. 대신 노릇을 하게 된 건 그놈의 마스크 때문이다. 마스크를 구해오마! 이 아비가!
아비들은, 아니 부모들은 거리를 헤맨다. 새벽부터 마트에 줄을 서서 마스크 5장을 산다. 만세! 길가의 약국이든 소매점이든 혹시나 마스크가 있는지부터 살핀다. 스마트폰을 보다가 광고문구에 혹해 들어갔다가 ‘품절’ 내지는 ‘외국에서 배송예정일 4월5일’ 따위의 문구를 보고 분노한다. 마스크를 3000원에 주문해놓고 너무 좋아서 기다리다가 여지없이 ‘품절로 구매 취소합니당’ 하는 안내문자를 받고 치를 떤다. 이 새끼야, 그게 왜 구매 취소야, 판매 취소지. 건드리면 아빠들은 터지기 직전이다. 겨우 천 마스크를 사서(이건 왜 또 비싸졌는가) 한 장은 두렵고, 두 장을 겹쳐 쓴다. 어떤 이가 ‘정전기필터를 사서 잘라 붙이면 효과가 좋다’고 하여 그놈의 필터를 사들이려고 해봐야 그것도 품절이거나 이미 웃돈이 붙어 있는 걸 보고 절망한다.
어느 의사가 “마스크를 재활용해도 된다”는 글에 감격하여 열심히 SNS에 퍼나르고,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위로받는다. 오 신이시여, 진정 마스크를 재활용해도 되나이까. 감사드립니다. 어떤 전문가는 마스크는 환자나 의심환자가 쓰는 것이지 다른 이는 쓸 필요도 없다고 일침을 주시는데, 당최 내가 의심환자인지 아닌지 알 도리가 없다. 게다가 무증상도 있다지 않은가. 이 대혼란에 코로나19가 아니라, 두려움과 의심과 절망에 우리는 조금씩 이미 죽어간다.
소설 <더 로드>는 핵전쟁이 벌어진 이후 지구에 생존한 인간의 분투기를 다룬다.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주인공 아비는 자식을 데리고 목숨을 건 이동을 시작한다. 그 아비의 마음을 내가 느낄 줄이야. 그래, 나는 죽더라도 너만은 살아다오. 젠장. 우리 삶이 이미 심리적으로는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었다. 영화는 두 시간이면 끝이라도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