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였던 거리일수록 텅 비고 가게에는 사람이 없다.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많겠으나, 불황으로 위험에 처한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코로나19가 자연재난이냐 사회재난이냐는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경제재난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어려움에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불안정과 불평등의 시대에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기회와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기본소득은 필요한 제도다.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기본소득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확신하지 못했던 것은, 국가와 사회가 그것을 지급할 능력이 있는가? 그 제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에서 ‘재난’기본소득은 진지하게 고려해 볼 만한 선택지다. 특정 산업과 계층이 아니라 사실상 모든 사람이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코로나19가 끝나도 사람들이 나와서 쓸 돈이 없을 지경이다.
김상조 정책실장은 이번 추경에 “이른바 한국형 기본소득제라는 개념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취약계층 580만명에게 2조6000억원의 자금을 풀어 지역사랑상품권’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소득제의 취지를 우리 현실에서 가장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길’인가?
이것은 아무리 잘 봐도 ‘선별적 피해 구제’에 불과하다. 수혜 대상은 전 국민의 10% 정도이고, 노인 일자리 쿠폰이나 고효율 가전 구매금액 환급 등이 포함된다. 평상시에도 하던 공공근로의 확대나 특별소비세 인하 같은 것을 ‘기본소득제의 취지를 실행한 것’이라고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추경의 나머지 부분도 특례보증 확대나 의료기관 손실 보상처럼 ‘기본소득’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지금의 상황을 비상한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그 대응도 비상한 것이어야 한다. 이 추경은 전혀 ‘비상’하지 않다. 코로나19가 사회와 경제에 미친 충격이 메르스 정도라면, 메르스 추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추경으로도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이 과연 그런 상황인가? 대통령은 공무원들에게 상상력을 발휘하자고 했는데, 기획재정부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하지만 국회가 손댈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
재난‘기본소득’이라면, 그 대상은 국민 모두이거나 적어도 다수여야 한다. 일단 모든 국민에게 100만원씩 주자. 모두에게 줄 필요는 없다고? 맞다. 코로나19에 별 지장이 없던 사람, 오히려 이익을 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무상급식의 강을 건넌 바 있다. 당시 우리는 이건희의 손자에게도 무상급식은 제공되어야 한다고 합의했다. 그것이 모두에게 더 큰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2년 전 아동수당을 소득 상위 10%에게 주지 말자는 주장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상위 10%에게 90억원을 주지 않기 위해 드는 행정비용이 1000억원이라는 답을 얻었고 논란은 잠잠해졌다.
그래도 소득이 충분한 사람들에게까지 재난기본소득을 주는 것은 정의롭지 않은 것 같다. 동의한다. 방법이 있다. 우리는 매년 모든 소득에 대해 종합소득세 신고도 하고 연말정산도 한다. 이 제도를 이용해 소득 최상위자들에게는 전액을, 그 아래로는 적절히 구간을 정해 일정 부분을 돌려받으면 된다. 중위소득 이하는 어차피 현재처럼 세금으로 반납할 부분이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마지막으로 반박할 것이다. 그럼 ‘조삼모사’가 아니냐고. 맞다. 조삼모사다. 지금이 바로 조삼모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려울 때 미리 당겨쓰고, 나중에 천천히 갚는 것이다. 경제활성화 효과를 생각하면, 오히려 남는 장사가 될 것이다.
50년 전 우리는 의료보험이 없었다. 40년 전 우리는 국민연금이 없었다. 30년 전 우리는 고용보험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들 없이 살 수 없다. 이것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