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위생과 청결은 근대교육의 산물이었다. 갑오개혁 이후 한성사범학교에서 가르친 ‘체육’의 핵심은 스포츠가 아니라 위생과 청결이었다. 이후 100여년이 흐른 지금, 온 국민은 다시 최선을 다해 손 씻기를 배우고 있다.
![[정동칼럼]코로나 시대 ‘뉴노멀’을 학습하다](https://img.khan.co.kr/news/2020/03/10/l_2020031101001248100110571.jpg)
국경차단을 최소화하고, 시민권을 제한하지 않는 우리의 방역시스템은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빨리 학습하며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왔다. ‘드라이브 스루’와 같은 혁신모형도 선보였다. 그래도 한국의 대처방식에 대한 세계의 반응은 이중적이다. 한편에서 칭찬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문을 걸어 잠근다.
두렵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바로 이 놈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에서 온다. 마리아 반 케르크호베 세계보건기구(WHO) 신종질병팀장은 “우리는 여전히 이 바이러스에 대해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 변이속도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 눈에 보이는 증상들 이면에 숨어 있는 우리의 무지와 상상, 공포와 두려움이 오히려 우리를 마비시키는 최대의 적이다. 예배로 인해 확진자가 나온 광주 어느 교회의 목사는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예배를 드렸겠나.” 우스갯소리로 하나님의 종도 모르는 일을 대통령이라고 어찌 알았겠나. 바이러스가 이렇게도 영악하고 교활할 수 있다는 걸 계산에 넣지 못했다. 게다가 한국 특유의 거대 종교단체들이 바이러스를 실어나르는 매개체였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상황이었고, 우리는 거기에 대한 지식이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배워나가면 된다. 과장하여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결코 학습하는 자의 자세가 아니다. 고정관념은 버려야 한다. 증거 없는 추측이나 억측도 피해야 한다.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되, 비관하지 말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학습에는 늘 실패가 따를 수밖에 없고, 차선책을 적용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매일 최전선에서 사투하는 의료진과 공포를 참아내며 현재를 견뎌내는 대구·경북 및 전국의 모든 국민들은 모두 새로운 학습을 하고 있다. 생존과 극복을 위한 학습이다. 학습을 통해 우리는 매일 더 강해진다. 이제 차분히 새로운 적응방식을 익혀나가야 한다.
인류 문명이 지금껏 생존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학습이다. 학습은 전대미문의 상황을 마주했을 때, 원래 가진 지혜나 지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넘어서게 해준다. 아무도 몰랐던 상황이고, 아무도 몰랐던 해법이었지만, 인류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놀라운 학습의 순발력을 통해 그 위기를 탈출해왔다. 한국인은 빠른 학습력을 가진 시민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에 코로나19를 완전히 박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놈은 올해를 버틸 것이고, 신종플루처럼 토박이로 자리 잡을 공산이 크다. 겨울마다 이런 양상이 되풀이될 수 있고, 이를 대항하는 우리의 생활방식도 새로운 표준에 적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뉴노멀’, 즉 새로운 생활표준은 이미 시작되었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든가, 혼밥을 해도 쑥스럽지 않다는 등. 혹은 클라우드 라이프의 확장, 비대면 생활패턴의 증가, 집단주의의 쇠퇴, 재택근무와 원격교육의 일상화 등등.
교육 분야에서 뉴노멀 가운데 하나는 원격교육이다. 대학마다 허겁지겁 온라인 화상강의를 준비 중이지만 어색하고 서투르다. 비록 IT강국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원격교육은 철저히 교실집합수업에 대한 보조적 수단으로만 사용되었다. 제작비 또한 터무니없이 비쌌다. 이제 뉴노멀로서의 새로운 원격교육의 표준을 찾을 필요가 있다. 얼마든지 저렴하게 제작하고 공유하며 교육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 정규대학에서도 원격강좌로만 학위를 주는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데 거부감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산업 4.0시대에 남들은 미네르바 대학 같은 교육기관도 만들어서 가르치는데 우리는 너무 수구적이다.
어쨌든 코로나19 사태는 지나갈 거다. 그리고 비슷한 상황은 언제든지 또 찾아올 거다. 메르스사태를 겪으며 만들어놓은 표준 덕분에 지금 이만큼이라도 버틸 수 있었다. 온 나라의 교육이 원격교육에 의존하는 이 초유의 사태를 하나의 기회로 삼아보자. 온라인교육은 지금보다 훨씬 더 친근해야 하고, 값이 싸야 하고, 일상학습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어색하던 손 씻기가 버릇이 된 것처럼, 이제 화상 스트리밍강의, 동영상 제작, 플립러닝, 온라인학습공동체 등도 그저 노트북을 열고 인터넷을 검색하는 것 같은 우리의 일상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렇게 교육의 새 표준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