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가 그림을 그린 <안데르센 메르헨>의 첫 장을 펼치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뭉뚱그려 무시하지 말고 저마다 그 이름으로 불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바로 동화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거지요.”
![[숨]이름 없는 이름들의 힘](https://img.khan.co.kr/news/2020/03/12/l_2020031301001606000137501.jpg)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자리에 앉아 동화책을 읽는다. 지금처럼 불안 속에 일상을 지탱하면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시기에는 상당히 위안이 된다. 한꺼번에 잠적해버린 것 같은 세계의 활력이 어딘가에는 남아있으리라는 든든한 기분이 든다. 동화책에는 고양이와 노루와 공주의 분투가 나온다. 가혹하지만 부딪쳐볼 만한 시련이 있고 우연의 부드러운 도움이 있고 필연적인 보상이 있다. 절망은 침착한 노력으로 채워지고 책 속의 친구들은 바닥에서 벗어난다.
무엇보다 거기에는 이름들이 있다. 라일락 아주머니, 주석으로 만든 병정, 하늘을 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말똥구리는 실명은 아니지만 더없이 당당한 이름이다. 우리는 이들을 하나하나 주인공으로 호명할 수 있다. 현실의 세상도 그런 조용한 이들의 도전과 모험으로 움직이지만 어려운 상황이 종료되고 나면 스르르 잊히는 경우가 많다. 동화는 이것을 찾아내고 기억하며 험난한 과정을 낱낱이 기록한다.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굴뚝청소부는 책 속에서 “정말 나랑 같이 난로를 기어 올라갈 용기가 있어?”라고 묻는다. 너와 내가 무쇠 난로와 연통을 지나면 굴뚝으로 나갈 수 있고, 거기서는 가야 할 곳을 알 수 있을 거라고 독려한다. 행복한 사람만큼이나 슬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노래하는 새 나이팅게일은 “황제 폐하의 정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날아갈 거예요”라고 말한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대유행을 선언했고 국가별 생사의 기록이 주식시세표처럼 그래프로 발표된다. 사람들은 확진자 번호로 불리는 낯선 이의 구체적 동선이 담긴 긴급재난문자를 읽으며 아침을 시작한다. ‘타지역 거주 확진자 발생, 해당 지역 방역 완료, 관내 경유 확인, 마스크 수량이 제한적입니다’ 같은 경고문구가 날아온다. 그 사이에서 가쁜 호흡을 이어가고 있을, 동화라면 꼭 붙들었을 이름들을 떠올린다. 바이러스보다는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민원을 더 걱정해야 했던 콜센터의 목소리들, “문 앞에 택배 놓고 갑니다”라고 ‘딩동’ 소리를 남기며 우리들의 숨이 되어주고 있는 택배기사님들, 학교에 가고 싶다고 스마트폰 창에 상태 메시지를 올리는 어린이를 생각한다. 뚝 떨어진 요양시설에서 오래 외롭게 편찮으셨던 할머니와 할아버지, 봉사자의 도시락을 기다리는 중증장애인 여러분은 오늘을 무사히 보내고 있을까. 유학을 준비하며 공부하던 책을 덮고 병원으로 되돌아간 간호사의 이름을 읽는다. 인적 없는 거리에서 이웃을 기다리며 가게 문을 열고 소포로 보낼 몇 권의 책을 포장하는 책방 직원의 두 손을 그려본다. 극도의 긴장까지 목숨 걸고 돌봐야 하는 의료기관과 공공기관의 공기는 상상으로도 가늠이 잘 되지 않지만 그곳에 그들이 있다.
안데르센의 동화 <라일락 아주머니>에서 할아버지는 독한 감기에 걸린 증손자를 위해 주전자에 찻물을 끓이면서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는 “그리고, 그리고, 그래요”로 나지막하게 이어지다가 끝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동화 덕분에 부러진 나뭇가지에 물을 주었더니 초록색 눈이 나오고 다시 커다란 나무로 자라난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이름 없는 이름들의 힘으로 이곳에도 라일락의 봄이, 건강한 계절이 곧 올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