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원생이던 2010년 즈음에, 학과의 남자 후배 몇이 도움을 얻으러 온 일이 있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 무언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들에게 “괜찮으면 언제 술 한잔 같이해요”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나에게 “네 선배, 같이 커피 한 잔 마셔요”하고 답했다. 단호하고도 세련된 방식의 거절이었다. 나는 그들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아, 내가 뭔가 실수를 했나, 대학원생이 학부생을 괜히 부담스럽게 했나’하고 몹시 외로워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나에게 “우리 커피 언제 마실까요?”하고 찾아왔다. 나중에 그들에게 물어보니 그들 역시 나와 친해지고 싶었다고 했다. 다만 1980년대생인 나와 1990년대생인 그들의 언어가 달랐던 것이다. 술과 커피, 이 알코올과 카페인 음료가 가진 서로의 거리만큼 그들과 나 사이는 멀었다.
83년생인 나는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 주로 술자리에서 만났고, 이름, 나이, 고향, 학교 등을 직설적으로 서로 묻고 답하는 데 익숙했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서열을 정리하고 친해질 구실도 찾는 것이다. 도저히 맞는 게 없으면 혈액형이나 별자리나 좋아하는 숫자까지 맞추어 가다가 어느 순간 비슷한 게 나오면 그제서야 ‘아이고, 우리는 이렇게 가까운 사람이었군요, 좀 더 친해질 수 있겠습니다’하고 비로소 편한 마음으로 술을 마시곤 했다.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그런 삶을 살지 않은 80년대생들도 많겠지만, 나에게는 그러한 만남들이 익숙했다.
함께 관계를 지속하고 모임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 90년대생이라는 새로운 세대는 느슨한 연결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이러한 방식의 느슨함이 우리 사회를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요즘은 어렵게 쌓아 올린 합의들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듯하다.
나는 바이러스 방역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에 대한 정보가 한동안 과잉상태에 있었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하면 그의 성별, 나이, 동선, 지역, 종교 등이 제공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두 탐정이 되어 정보를 꿰맞추면서 그의 사생활을 재구성해 나간다.
내가 가입한 동네 주민들의 단톡방에서도 확진자의 동선을 공유하면서 여러 말들이 오고갔다. 주로 방역과는 무관한 타인의 사생활들이었다. 사실 어디와 어디가 확진자가 다녀간 곳이니 유의해 달라, 라는 정보만 전달되면 충분한 것이다. 타인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일상을 혐오하거나 동정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그때 누군가가 그가 특정 주유소에 일주일 동안 세 번이나 들른 것을 보고 “저기가 기름 맛집인가 봅니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저기가 직영이라 싸서 저도 자주 들릅니다”하고 말했고, 몇몇이 그 주유소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저 순댓국집이 저만 아는 맛집인데 저분도 가셨네요. 아, 유명해지면 어쩌죠?”하고 말했다. 오래간만에 즐거운 분위기였던 것 같다. 이 정도의 느슨함으로 그에 접근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시국을 조금 더 즐겁게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코로나19가 아니라 그 어떠한 사회적 위기를 맞이하더라도 서로를 향한 느슨함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팽팽하게 잡아당기거나 완전히 놓아버리는 것보다 오히려 힘든 일이다. 증오하고 혐오할 대상을 찾아나서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도 이 시국 이후에도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타인을 살피는 느슨한 연결의 감각을 회복해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