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속 공황구매?…사람들은 왜 씨앗을 살까

김향미 기자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의 한 원예가게에서 한 시민이 코로나19로 집에 머물 때 가꿀 식물들을 사고 있다. 리치몬드|AP연합뉴스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의 한 원예가게에서 한 시민이 코로나19로 집에 머물 때 가꿀 식물들을 사고 있다. 리치몬드|AP연합뉴스

미국 뉴욕타임스의 기후담당 기자인 켄드라 피에르 루이스는 최근 재택근무에 들어가며 옥수수를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오래 집안에 머무는 동안,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가 한 종자회사에 전화했을 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지금 화장지를 팔고 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19로 전 세계 곳곳에서 식료품부터 화장지까지 사재기를 뜻하는 이른바 ‘공황 구매’(panic buying)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과 영국·호주 등지에선 식물 종자와 채소 모종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피에르 루이스 기자가 지난 28일(현지시간) 보도한 뉴욕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수경재배 원예회사인 뉴트리타워의 설립자인 브라이스 나겔스는 “지난 2주간 기록적으로 주문이 많았다”며 “상추, 허브, 가지, 토마토 등 품종도 다양했다”고 전했다. 30㎡ 규모의 수경재배 상품은 텃밭이 아닌 실내에서 작물을 키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주로 학교에 교육용으로 공급했던 상품인데, 최근엔 가정에서 주문량이 늘었다고 나겔스는 전했다. 유기농 종자를 판매하는 조니스 셀렉티드 씨드스의 최고경영자인 그레첸 크루시먼은 “지난 13일부터 주문량이 폭발했고 그 주간에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나 많았다”고 했다. 지난 13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에 대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날이다.

영국 왕립원예협회에 따르면 영국에서도 최근 채소를 재배하는 인구가 늘었다. 식물 종자 판매회사인 저스트씨드의 필 존스는 “당근, 상추, 콩, 토마토 등의 주문량이 크게 늘었다”며 “채식과 아이들 교육을 위한 활동을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호주 ABC방송도 지난 24일 “격리기간에 무언가 바쁘게 할 활동을 찾고 있는 소비자들이 자급자족 텃밭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호주의 온라인 종자 판매 회사인 씨드프레크는 지난주 판매량이 20배 증가했다. 이 회사 소유주인 린다 코크번은 “호주 전역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며 “시금치, 콩, 무, 상추 가릴 것 없이 모든 야채를 사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한 슈퍼마켓 과일·채소 선반이 대부분 비어 있다. 런던|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한 슈퍼마켓 과일·채소 선반이 대부분 비어 있다. 런던|로이터연합뉴스

식물 재배는 명상이나 달리기처럼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공황 구매의 하나의 사례지만, 더 복합적인 요인도 작동했다. 어떤 이는 식량 안보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누군가는 먹거리 자립을 선언했다. 경기침체 시대에 나타나는 일종의 신호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에선 코로나19에 따라 식량 확보에 어려움을 실감하자 1·2차 세계대전 당시 ‘승리의 텃밭’ 활동이 재소환됐다. 전시 상황에서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해 텃밭을 가꾸자는 운동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약 2000만개 텃밭에서 전국 채소 공급량의 40%를 생산했다. 이 운동은 유물이 됐지만 코로나19 국면에서 비슷한 운동이 재개됐다. 지역 네트워크 운동가인 네이트 클라인만은 정치적 색깔을 빼고 새로운 협동조합 형식의 텃밭가꾸기 조직을 결정했는데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의사를 밝혀왔다. 영국 BBC도 28일 “빈 슈퍼마켓 진열대는 소비자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던 식량 안보에 의문을 갖게 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승리의 정원’ 활동을 홍보하는 포스터

미국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승리의 정원’ 활동을 홍보하는 포스터

영국 콘월에 살고 있는 부부 찰스 호스킨(38)과 무스 브래그(40)는 3주간 자택에 격리되면서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호스킨은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식물 재배를 시작했다”며 “샐러드를 쉽게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 대형 종자 회사인 버피의 최고경영자인 제이미 마티코는 “지난 한달 새 매출이 급상승했다”며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사람들이 직접 채소를 키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비영리단체인 네이티브씨드서치의 노아 슐라거는 “미국에서 1930년대 후반 대공황을 기억하는 노인들은 ‘지금은 (대공황 때처럼) 우리가 먹을 식량을 키워야 할 때’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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