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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들으러 간다’ 관람객 불러 모으는 미술관 도슨트…김찬용·정우철

보고 느끼는 것 넘어, 예술을 더 즐길 수 있게…우리는 ‘프로’다

이름 석 자로 관람객을 불러모으는 도슨트계의 스타 김찬용씨(왼쪽)와 정우철씨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툴루즈 로트렉전’ 현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이름 석 자로 관람객을 불러모으는 도슨트계의 스타 김찬용씨(왼쪽)와 정우철씨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툴루즈 로트렉전’ 현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도슨트(docent). 일정한 교육을 받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 혹은 일을 의미한다. 국내에는 1995년 도입됐는데 주로 무보수, 재능기부의 형태로 운영돼왔다.

보수적이고 견고한 미술 시장에서 이름 석 자로 관람객을 불러 모으는 도슨트계의 스타가 등장했다. 도슨트를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게 한 김찬용씨(37)와 최근 혜성처럼 등장한 정우철씨(31)다. 미술전공자로 유쾌한 해설이 강점인 김씨와 영화전공자로 스토리텔링이 남다른 정씨는 회차당 평균 100여명의 관람객(코로나19 확산 이전 주말 기준)을 몰고 다니며 미술관 관람객 동원에 일조하고 있다. 지난달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도슨트계의 양대 산맥을 만났다.

- “다이슨 청소기만큼 흡입력이 있는 시간.” “자서전 하나를 씹어 먹은 기분.” 두 분의 도슨트를 들은 관람객들의 후기였어요. 어떤 피드백이 기억에 남나요.

김찬용 = 저는 칭찬보다는 비판이나 비평을 주로 찾아봐요. 그게 저를 더 발전시키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사람이다 보니 자괴감이 들 때도 있지만요(웃음).

- 관람객 중 ‘나의 해설을 듣기 위해 오는 사람들’을 꼽는다면 얼마나 될까요.

정우철 = 음, 70%?(웃음) 기억에 남는 분들이 꽤 되는데 악수를 청하며 수고했다고 현금을 주신 분도 있고, 매표소에 제 앞으로 홍삼꿀단지를 맡기고 가신 분도 있었어요.

- 전시보다 도슨트가 돋보이는 상황이 부담스럽진 않나요.

김찬용 = 운 좋게 다른 도슨트보다 먼저 관심을 받았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남성 도슨트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요.

정우철 = 간혹 저희의 설명이나 도슨트를 듣는 분들 때문에 전시 관람에 방해가 된다는 분도 있어요. 늘 딜레마예요. 다만 저는 사람들이 제 도슨트를 듣고 나서 ‘어, 괜찮네’ 이런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도슨트도 들을 수 있도록요.

- 실제로 불편해하는 분들을 마주한 경험도 있나요.

김찬용 =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한 ‘고갱’전은 53만명이 관람한 흥행 전시였어요. 하루는 도슨트를 진행하는데 한 어르신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삿대질까지 하면서 혼을 내시더라고요. 모름지기 예술은 직접 보고 느껴야 하는데 무식한 것들이 이렇게 설명 듣는다면서 화를 내셨죠. 정중히 사과를 드렸지만 제 선에서 해결되지 않아 결국 스태프의 도움을 받았어요. 저 역시 관람객들이 너무 많은 도슨트는 지양하는 편이에요. 좁은 공간에 관람객이 늘어나면 작품의 컨디션에도 영향을 끼치거든요.

- 도슨트가 어떤 직업인지 쉽게 설명해준다면요.

김찬용 = 큐레이터는 전시 전반을 관리하는 사람, 도슨트는 전시를 더 즐길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사람이에요. 종종 영화에 비유하는데요. 전시장 안에서 도슨트는 작품과 작가, 전시 기획자의 의도가 잘 드러나게 하는 조연이어야 해요. 돋보이지 않는다고 그것이 직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프로의 감각과 의식으로 의상, 언어, 안내에 필요한 지식 등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어요.

‘믿고 들으러 간다’ 관람객 불러 모으는 미술관 도슨트…김찬용·정우철

13년째 올 블랙 정장 고수하는 ‘김찬용’
“작품과 작가, 전시 기획자의 의도 잘 드러나게 하는 조연… 돋보이지 않는다고 직업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죠”

- 서로의 도슨트를 보면서 빼앗아 오고 싶은 기술이 있었나요.

김찬용 = 제가 먼저 말해도 될까요?(웃음) 사람들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능력요. 스토리텔링, 외모, 목소리 모든 것이 완벽하잖아요. 시작은 정우철이란 사람에 대한 관심이었지만, 이를 전시까지 이어지게 하는 능력치가 정말 뛰어난 것 같아요.

정우철 = 고백건대 최근까진 (김찬용의 도슨트를) 피해 다녔어요. 저만의 스타일, 저만의 색이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제 모습을 마주하면 오히려 그 모습을 따라 하게 될까봐 두려웠거든요. 마침내 찬용 선생님의 도슨트를 듣게 됐을 땐, 우와 시작부터 끝까지 완벽했어요. 그 문장에서 어떻게 저런 단어 선택을 했을까, 감탄만 했지요.

- ‘직업인’ 도슨트가 된 과정이 궁금해요.

정우철 = 저는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교육용 영상 제작사에 취업했어요. 그러다 이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 의문을 품고 바로 사표를 썼죠. 덕분에 방황의 시간이 길어졌어요. 대사 하나 없는 엑스트라부터 택배, 막노동까지 닥치는 대로 했죠. 그 끝에 하게 된 일이 바로 전시 스태프였어요. 사실 도슨트라는 용어조차 몰랐어요. 우연히 도슨트가 일하는 과정을 보고는 ‘아, 이거다’ 했죠.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렸어요. 그러다 도슨트로 예정된 분이 연락이 닿지 않는 일이 발생했어요. 그렇게 운명적인 사건이 제 앞에 벌어진 거죠.

‘믿고 들으러 간다’ 관람객 불러 모으는 미술관 도슨트…김찬용·정우철

영화 전공 살린 스토리텔링 ‘정우철’
“시나리오 쓰듯 인물에 집중해 쉽고 친근한 설명 준비… 5년 뒤엔 한국 도슨트 하면 떠오르는 한 명 되고 싶어요”

- 영화 같은 캐스팅이네요. 비전공자라 힘든 점은 없나요.

정우철 = 미술사나 관련 지식이 아무래도 전공자들에 비해 얕은 편이에요. 그래서 저는 인물에 집중하는데, 시나리오를 쓰듯 스토리텔링에 주력해요. 또 어머니의 영향도 많이 받아요. 가끔씩 개인전을 열어온 무명의 화가신데 도슨트에 관심을 갖고 난 뒤 보니 집안 곳곳이 저를 위한 환경이었더라고요. 책장에는 미술책이 있고, 오래된 전시 팸플릿도 가득하고.

- 김찬용 도슨트는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미술을 준비하고 순수 미술을 전공했는데, 이 길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김찬용 = 막상 대학에 오고 보니, 천재가 너무 많은 거예요. 냉정하게 나는 이 분야에서 오래 머물기엔 부족함이 많다고 인지했죠. 그럼에도 미술계를 떠나고 싶진 않아서 전시 스태프로 일을 했는데, 그때 제 오지랖이 발동하기 시작했죠. 관람객에게 슬쩍 다가가 ‘알려드릴까요?’라고 물으면 절반은 응해요. 젊음의 패기까지 더해진 상황이었으니 그저 흥이 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본 당시 예술의전당 미술부 부장님 눈에 띄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 도슨트계의 원조격이라는 부담감이 있을 듯한데요.

김찬용 = 제 선택이 저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예를 들어 ‘그 정도의 보수도 감사하다’고 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10년차 김찬용도 이만큼 받는데’라는 기준이 되는 거예요. 제 말 한마디가 도슨트를 대표하는 상황이 되는 것을 경험한 뒤로는 목소리를 높이곤 해요. 그로 인해 ‘머리 좀 컸다고 사람이 변했네’ 하는 오해도 종종 받아요.

- 그동안 일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을 꼽는다면요.

김찬용 = 지난해 한 여행사의 기획으로 영국 테이트모던미술관에서 도슨트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뭉클하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죠, 나 진짜 용 됐다(웃음).

정우철 = 전 제 이름을 알리게 된 ‘베르나르 뷔페’전을 준비하는 과정요. 그전까지 고작 3번의 전시 경험이 전부였던 터라 걱정을 많이 했어요.

-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 정보 수집이 힘들었다고 들었어요. 오직 뷔페를 이해하기 위해 일본까지 다녀왔다죠.

정우철 = 절박함이 앞섰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백수라 가능한 여유였죠(웃음). 관람객들을 마주할 때까지 확신이 없었거든요. 도슨트 시작한 지 2주일 지났나. 제 이야기를 듣던 한 관람객이 펑펑 우시는 거예요. 작가의 인생이 마치 자신의 지인같이 느껴져 짠하다면서요. 그때 내 방식이 틀리지 않았구나, 안도했어요.

-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는 주로 어떻게 얻나요.

정우철 =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자료를 바탕으로 그 작가와 관련된 책을 최소 5권 이상 읽어요. 그래야 이야기가 풍부해지거든요. 저는 쉽고 친근하게 설명하자는 걸 모토로 어머니를 첫 번째 관람객으로 모십니다.

김찬용 = 기본 자료에 논문을 찾아봐요. 논문이 없으면 해외 기사나 다큐멘터리를 참고하고요. 몇 달 전부터 자료를 찾아보는 경우도 있지만 아트페어 VIP행사처럼 단기간에 섭외되는 건들은 사나흘 정도에 준비하기도 해요.

- 치밀한 준비를 해도 피할 수 없는 실수도 있었겠죠.

김찬용 = 초반에 많이 했죠. 한번은 중년 남성이 어떤 작품을 유심히 보고 계시더라고요. 자신감으로 어깨 뽕이 이만큼 들어가 있을 때라(웃음)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설명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해당 작품의 작가인 강익중 선생님이셨던 거예요. 그때의 창피함이란.

정우철 = 저는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실수가 잦아요. 가끔씩 작품 간 동선이 조금 길다 싶은 날은 준비한 말을 많이 잊어버린 날이에요(웃음).

- 드러나지 않은 노력들도 많을 텐데요. 나는 도슨트를 위해 이것까지 해봤다, 하는 것이 있나요.

김찬용 = 나름 원칙이라면 원칙인데 저는 도슨트가 작품보다 돋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13년간 올 블랙의 정장만 입었어요.

정우철 = 목 관리를 위해 목캔디를 정말 많이 먹고요. 외모는 그냥 깔끔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하나 신경 쓰는 것이 있다면 구두인데, 의외로 작품 설명을 듣다가 발을 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웃음).

- 나도 모르게 직업병이 발휘되는 순간은 없나요.

정우철 = 친구들과 식당에 갔는데, 제가 음식 설명을 도슨트처럼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의도치 않게 ‘설명체’가 나올 때가 있어요.

김찬용 = 다른 전시를 보러 갔을 때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있어요. 기획자는 왜 이리 작품을 위험하게 설치했을까, 텍스트의 오탈자는 아무도 보지 못한 걸까, 같은 생각을 하면서 ‘나는 지금 왜 이러고 있나’ 하죠(웃음).

- 애증의 작품이나 전시도 있겠죠.

정우철 =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전요. 평소 아이들을 참 좋아했는데, 그 아이들이 많으면 무서울 수도 있구나, 라는 경험을 했어요(웃음).

김찬용 = ‘앤서니 브라운’전요.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단체 관람이 너무 많아서 두 도슨트가 입구와 출구에서 각각 시작해 중간에서 만나 교차해 지나가는 진풍경까지 벌어졌어요. 전시를 즐기기엔 부족했죠.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일장일단이 있어요(웃음).

- 5년 뒤 어떤 삶을 살고 있을 까요.

정우철 = 우리나라 도슨트 하면 떠오르는 누군가 중 한 명이 되고 싶어요.

김찬용 = 10년 전에 이 질문을 받으면 월 200만원만 벌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다행히 지금 그 액수는 넘겼지만(웃음). 좀 더 책임감 있는 도슨트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그때에도 즐겁게 이 일을 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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