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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정부’ 성공의 조건

입력 2020.04.09 20:56

수정 2020.04.0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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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땅을 파서 지폐를 묻을지언정 손을 놓고 있어선 안된다. 사업가가 돈을 파내려고 노동자를 고용하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소비가 늘 것이니 말이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을 풀어야 한다고 주창하면서 위기 탈출에 기여했던 경제학자 케인스의 말이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위기를 맞아 각국 정부들은 케인스의 말을 따르듯 개입을 강화하고 있다. 미적대지 말고 최대한 빨리 많은 돈을 풀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충고이기도 하다. 마치 국가가 코로나19 재앙에서 시민을 건져줄 구세주가 된 것 같다. 시민들은 위기 앞에서 정부에 기댈 수밖에 없고 한국처럼 중앙집권적 전통이 강한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 대신 큰 정부 시대가 도래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이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편집국에서]‘큰 정부’ 성공의 조건

‘건전 재정의 전통’을 중시하는 예산 공무원들을 보자. ‘곳간 지킴이’로 불리는 이들은 오랫동안 정치권의 무분별한 예산 증액 요구, 지역구 챙기기에 저항하며 재정건전성을 지켜냈고 한국경제가 국제신용평가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요인이 됐다. 국가 재정은 고대 로마 시절부터 황제의 보물상자에 비유됐다. 그만큼 정부가 세금을 걷고 쓰는 활동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재정건전성이란 도그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적기에 코로나19 위기를 넘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 논의과정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급 범위를 소득 하위 50%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재정건전성 집착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경제는 지금 예산공무원들이 마지노선으로 삼아온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 40%의 틀을 고수하긴 어려운 처지다. 지난해 36.5%였던 국가채무 비중은 올해 코로나19 대응에 따른 추경편성 등으로 40%를 넘을 게 확실시된다. 그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이 2018년 기준 109%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양호하다. 예산 공무원들은 앞으로 재정정책과 재정건전성의 의미 등을 두고 새로운 프레임이 대두될 것에 적극 대비해야 한다.

지난해 8월 국회에 제출된 기재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2019~2023)을 보면 국가채무비율은 2020년 39.8%, 2021년 42.1%로 40%를 돌파하는 걸로 돼 있지만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나라 살림이 거덜 나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지속 가능한 재정을 위해선 지출구조조정, 비과세 감면 정비, 탈루소득 과세강화 등 세입기반 확충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는 큰 정부의 핵심은 결국 증세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우며 공무원이든 정치인이든 시민들에게 증세를 요구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란 점이다. 오연천 울산대총장이 <국가재정의 정치경제학>에서 언급했듯이 시민들은 민간이 하기 어려운 일을 정부가 수행해 주길 바라지만 증세 요구에는 누구나 멈칫하기 마련이다. 특히 요즘 같은 선거철이라면 정치인의 입에서 증세 얘기가 나오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여당에서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확대를 주장하면서도 종합부동산세 완화라는 모순된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증세를 위한 진솔하고 정직한 논의에 시동을 걸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인구 고령화 등으로 복지지출은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증세의 방안은 다양하겠지만 소득재분배 효과가 높은 소득·상속·법인세와 재산 관련 세목이 증세의 주축이 될 수밖에 없고 이는 부유층의 조세저항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증세는 대기업을 포함해 경제적 여유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요구하며 여유계층 내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하는 것이 공동체의 번영으로 귀결된다는 믿음이 형성되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큰 정부가 자동적으로 좋은 정부가 되는 건 아니다. 현 정부는 적극 재정을 통한 경제성장과 세수증대라는 선순환 구축을 목표로 해 왔고 이 때문에 케인스식 해법에 기울어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내심 큰 정부를 지향한 것인데, 체질적으로 큰 정부에 반대하는 쪽으로부터 정부 효율성과 민간의 자율을 억압한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소득주도성장 추진과정에서 노출됐듯이 취지는 바람직하나 정책이 정교하지 못하다는 질책도 받았다. 심장만 뛰고 모세혈관이 막힌 정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자칫 잘못하면 큰 정부가 후일 한국경제 위기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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