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을 강조하는 텔레그램 사이트 메인 사진/ 텔레그램 홈페이지
“철통보안 걱정마세요! 최대한의 보안이 필요하다면 텔레그램의 비밀대화 기능을 이용해 보세요.”
텔레그램 사이트의 공식 홍보 문구입니다. 창시자인 두로프 형제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텔레그램은 그만큼 ‘사생활 보호’와 ‘보안성’을 자신있게 내세웁니다. 비밀 대화를 이용하면 메시지가 암호화됩니다. 대화 참여자만 대화를 볼 수 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마저도 삭제됩니다.
한국에서 텔레그램이 각광받기 시작한 건 2014년입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었다”고 국무회의에서 발언하자 검찰이 바로 ‘사이버 허위 사실 유포 전담 수사팀’을 신설했습니다. 대화 내용을 사찰 당할까 우려한 이용자들은 카카오톡을 대체할 메신저로 텔레그램을 찾았습니다. 텔레그램은 각 정부의 수사 협조 요청에 쉽게 응하지 않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2014년 한국에서 ‘텔레그램 사이버 망명’이 대규모로 일어났습니다. 2019년 홍콩민주화운동에서도 텔레그램이 활용됐습니다.
‘범죄의 온상’이란 오명도 있습니다. 텔레그램은 ISIS의 테러 범죄, 아동 성착취물 유포, 마약이나 총기 거래 등에도 이용됐습니다. 2017년 인도 남부 케랄라주에서는 텔레그램을 통해 아동 성착취물을 유포한 남성이 체포됐습니다. 지난 10월 싱가포르에서는 ‘SG 나시르막’이라는 불법 촬영물을 유통한 단체방이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도 각종 범죄에 연루됐습니다. 지난해 ‘버닝썬 사건’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불법 약물 ‘물뽕(GHB)’ 거래도 텔레그램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졌습니다.
‘물뽕’(GHB) 판매중인 SNS 게시물 갈무리
그리고 ‘n번방’이 있습니다. 경찰이 텔레그램 본사 연락처도 파악하지 못한 채 공식 이메일로 협조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이 직접 텔레그램 압박에 나섰습니다. 이른바 ‘n번방 텔레그램 탈퇴 총공(총공격)’. 지난 25일과 29일 오후 9시 텔레그램을 동시 탈퇴하며 탈퇴 이유를 ‘n번방’으로 밝힌 온라인운동입니다. 시민들은 이와 함께 CNN, 뉴욕타임스 등 해외 유력 언론사에 n번방 사건을 제보하고 세계 최대 청원 사이트 ‘체인지(change.org)’에 청원하는 등 국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습니다.
관련기사 : “n번방 수사에 협조”…누리꾼들 텔레그램 탈퇴 캠페인
해외에 서버를 뒀다고 플랫폼이 항상 ‘범죄의 소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때 ‘텀블러’는 각종 불법촬영물과 성인 콘텐츠가 난무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였습니다. 텀블러 역시 서버가 해외에 기반을 둔 외국기업인데다 성인 콘텐츠에 너그러운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2018년 애플이 앱스토어에서 텀블러를 추방하자 입장을 바꿨습니다. 텀블러는 인공지능(AI) 등을 이용해 모든 성인용 콘텐츠를 제외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이후에야 앱스토어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개발자 및 최고경영자(CEO) @durov 인스타그램
텔레그램 역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2017년, 텔레그램이 테러의 근거지라며 “테러그램(Terrorgram)”이라는 비난이 빗발치자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가 “10월 한 달간 테러와 연계된 8500여 개 채널을 차단했다”며 “어떤 형태로든 폭력을 선전하는 것은 텔레그램 안에서 금지된다”고 밝혔습니다. 2018년 애플 스토어에서 퇴출되자 아동학대 신고 채널인 ‘Stop Child Abuse’를 신설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도 테러 감시를 위한 채널 ‘ISIS Watch’도 운영합니다. 그러나 게시물 삭제 요청 통로에 불과하고, 범죄자 추적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소라넷, 웹하드카르텔, 웰컴투비디오 그리고 텔레그램 n번방을 지나 불법촬영물 유통업자들은 ‘디스코드(Discord)’와 ‘위커(Wickr)’ 등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불법행위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단속, 유통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여성 3678명을 상대로 진행한 ‘서울 여성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 실태 및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 50.2%가 ‘피해 감시 모니터링 및 단속’을, 35.2%가 ‘유통 플랫폼 규제를 요구했습니다.
반면 플랫폼을 규제하거나 모니터링 의무를 강화하면 이용자들의 개인정보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제2의 n번방’을 막으면서도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지킬 방법은 무엇일지 묘안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