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 6년째 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다시는 세월호같은 참사가 반복돼서는 안된다는 생각만으로 ‘이제 그만 잊으라’는 비수같은 말들을 견디며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가 제21대 총선을 앞둔 지난달 30일 차기 국회에 요구한 ‘약속운동 5대과제’를 통해 세월호 6주기 상황을 돌아봤다.
진도 팽목항에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인 노란 리본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서성일기자
■봉인된 ‘세월호 7시간’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서는 여전히 뚜렷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2017년 5월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참사 당일 청와대에서 생산한 문건을 모두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해 국가기록원에 ‘봉인’했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거나 대통령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기록물’은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최장 30년간 비공개된다.
대통령기록물을 공개할 수 없다면 문건의 ‘목록’만이라도 공개하라는 취지의 정보공개청구소송이 제기됐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송기호 변호사는 대통령국가기록관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지만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대통령지정기록물상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공개 청구를 거부한 것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소송은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황 권한대행의 기록물 이관 조치가 ‘국민 알권리 침해’라는 헌법소원에 대해서도 지난 1월 각하 결정이 내려졌다. 헌법재판소는 “기록물을 이관하는 행위는 국가기관 사이의 내부적·절차적 행위”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유가족들은 이제 국회가 책임을 다할 때라고 본다. 대통령기록물법 제17조는 국회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있을 경우 대통령 기록물을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세월호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5대 과제를 공개하며 “세월호 관련 대통령기록물은 박근혜 정부의 구조·구난 직무수행의 적정성을 검증할 중요한 자료”라며 “국회 결의로 기록물 공개를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시민들이 지난해 10월31일 서울 중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구조수색 적정성 조사내용’ 발표회에 참석해 세월호 참사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창길 기자
■진상규명, 시간과의 싸움
2018년 출범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활동기한은 올해 12월10일까지다. 박근혜 정부때 꾸려진 1기 특조위는 당시 정부·여당의 방해로 별다른 성과없이 끝이 났고, 2기 특조위로 불리는 사참위가 참사원인을 비롯한 진상규명의 공을 넘겨받았다. 사참위는 고 임경빈군 헬기 이송 지연 의혹이나 해경의 폐쇄회로(CC)TV 조작 의혹을 새롭게 제기하며 검찰 재수사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사고 당시 정치인과 공무원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나 직권남용죄 공소시효는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검찰 내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은 지난 2월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책임자인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을 비롯한 전현직 해경간부 11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사참위 진상규명 특별법의 조사기간 1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현직 공무원인 조사대상자들이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대면 조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체들은 2기 특조위가 세월호참사와 함께 가습기살균제참사도 같이 조사하고 있는 점을 들어 120명에 불과한 조사인력 보강도 요구하고 있다.
고 김초원 교사 아버지 김성욱씨와 전국기간제교사노조 등이 4월 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간제 교사를 차별하는 경기도 교육청에 대해 대법원은 제대로 된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잠수사와 기간제교사도 피해자로
세월호참사 수습을 자원했던 김관홍 민간잠수사가 2016년 세상을 떠났다. 민간 잠수사들은 기존 세월호피해지원법 상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부의 의료나 심리치료 지원에서 소외돼있었다. 김 잠수사 역시 참사 이후 극심한 생활고와 트라우마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세월호 승선자와 가족에 한정된 피해지원법상 피해자 범위를 민간잠수사와 자원봉사자, 참사 당시 단원고 재학생과 교직원까지 넓히는 ‘김관홍법’이 발의됐다. 하지만 이 법은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반대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2년째 계류중이다.
기간제 교사 유가족들도 법정 싸움을 진행중이다. 고 김초원·이지혜 교사는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경기도교육청의 맞춤형 복지제도 대상에서 배제돼 사망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김 교사 유족은 2017년 4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을 상대로 25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으나 1·2심 모두 패소했다. 재판부는 기간제 교사가 국가 공무원인지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없다는 이유로 ‘기간제 교사 배제는 차별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김 교사 유족의 상고로 대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다. 유족은 대법원에 제출한 탄원 서명서에서 “이 소송은 고 김초원 선생님, 한 명에 관한 것이 아니다. 모든 기간제 교사의 지위와 차별에 관한 소송”이라며 “인권의 최후 보루인 대법원이 이 소송의 의미를 살피고 교육 당국의 막무가내식 차별 행위에 제동을 걸어주길 간절히 원한다”고 썼다.
세월호참사 유족과 가습기살균제 피해, 산업재해 등 피해자와 가족들이 1일 국회 소통관에서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와 각 정당에 생명안전 과제를 제안하고, 지속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국민안전권’ 법제화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운동도 벌이고 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등 다른 재난·참사피해 유가족들과 뜻을 모았다. 생명안전기본법은 ‘재난으로부터 안전할 권리(안전권)’를 모든 사람의 기본권으로 법률에 반영하고, 재난 및 중대안전사고 발생 시 국가 책임을 명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재 재난 시 국가 역할을 포괄하는 기본법은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인 2004년 만들어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기본법)이다. 하지만 재난 시 행정당국의 업무분담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탓에 피해자의 권리 보호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생명안전기본법에는 중대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설치하고 각종 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개별 사고에 대응하기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을 막자는 취지다. 이밖에 재난 및 중대안전사고에 과실이 있는 쪽이 고의적 불법행위를 한 것이 명확한 경우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지난 3월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6주기 추모의 달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 전면 재수사,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고 있다. 기자회견에 앞서 유가족들이 아이들을 생각하며 묵념을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혐오표현 처벌규정 마련
“지겹다.” “돈이 그렇게 좋으냐.” 매년 4월만 되면 세월호참사 피해자를 향해 반인륜적 혐오표현들이 쏟아진다. 6주기인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차명진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자는 방송토론회에서 세월호 혐오발언을 했다. 세월호참사를 ‘해상 교통사고’라고 빗댄 보수 유튜버들도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참위가 최근 펴낸 연구용역 보고서 ‘재난피해자 명예훼손 등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을 보면 2014년 이후 5년동안 형사입건돼 수사로 이어진 혐오표현은 총 210건이다. 유가족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오히려 혐오표현을 생산하고 확산하는 주체가 됐다. 청와대가 보수단체들을 동원해 세월호 반대집회를 개최하고, 옛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세월호 유가족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부정적인 여론 형성에 이용하려 한 정황도 수사기록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을 처벌할 법률적 근거는 마땅치 않다. 국가기관의 불법사찰행위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세월호 유가족이지만, 사찰행위를 처벌하려면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형법 제123조)등을 적용해야한다. 이는 피해당사자가 아니라 공무원을 피해자로 보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
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혐오모독 언행이 반복돼 피해자에게 심각한 상처를 주고 있으나 이에 대한 처벌이 경미하다”며 정보수집기관의 민감정보처리 제한규정을 위반하는 경우 처벌규정을 명시하는 개인정보보호법 등 개정을 요구했다.